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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감상을 쓰며 이런 말을 했었다. "<솔라리스>가 기존 SF의 이 낙관적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대답이라면, (...) 피터 와츠가 쓴 <블라인드 사이트>야말로 영미 SF스러운 대답"이라고, "<솔라리스>가 지적하는 탈인간적인 존재들과 삶의 형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최대한 과학의 케이스 안에 두고,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려고 하면 그것에 대해 강박적으로 학문적 이유를 만들며 인간 외의 것을 인간으로부터 만"드는 그런 글이 바로 <블라인드 사이트>라고. 다시 읽어봐도 그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이 평가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솔라리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속성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아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존재를 다룬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스>와는 달리 인간 중심적인 학문과 사고를 통해 그것을 최대한 해명하고자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그럼 일단 이 소설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가장 뚜렷한 것은 물론 지구의 전방위 '사진'을 찍고 달아난 외계 생명체 로르샤흐다. 우주선 테세우스 호에 탑승한 주인공 일행은 그것과 소통하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이 인간 언어를 배워서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그것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마치 정해진 루틴에 따라 말을 돌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그것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욱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로르샤흐에게 접근한다.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잠입해 내부를 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부 구조는 엄청난 전자기파로 가득하고, 그 내부의 '훼방꾼'이란 이름의 생명체들은 로르샤흐에 비해 특별히 더 이해하기 쉽지도 않다. 그들의 괴상한 신체 구조와 소통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했듯, <블라인드 사이트>는 수수께끼를 그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만 남기고 끝낼 생각이 없는 글이다. 마치 영미 분석철학의 협업 연구들을 보는 것처럼, 주인공 일행은 그것들을 해부하고, 고통 자극을 통한 학습으로 그들의 언어 소통 과정을 학습하려 하며, 이 훼방꾼들의 괴상한 움직임과 로르샤흐의 정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을 연구하고, 그 과정을 독자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 여기에서 제목 <블라인드 사이트>가 핵심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제목 '맹시'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맹시란 사물을 보고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뇌의 일부가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파괴되면 곧잘 일어나는 증상 중 하나로, 우리의 무의식에서는 시각을 통해 관측한 정보를 알고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 무의식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면서도 정작 의식적으로는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활용하지도 못한다. 실제로, 비슷한 현상을 하나 예로 들자면 좌뇌와 우뇌 사이의 연결이 끊긴 환자의 경우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물체를 그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다른쪽 뇌에서는 인지하지 못해 이를 말하지 못하지만, 정작 움직일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의 존재를 아는듯 자연스럽게 그것을 피해 걷는 식이다.
왜 맹시가 이 소설의 제목일까? 그것은 맹시가, 우리의 의식은 사실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좋은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그 맹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맹시 외에도 우리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짧은 시간 간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것은 일종의 맹'각'처럼 작용한다. 추후 밝혀지는 비밀에 따르면 훼방꾼들은 바로 이 인간 의식의 맹점을 계산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소통을 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들이 사실은 서로 신호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다. 만약 인간의 인지로만 상황을 보고 있다면 말이다.
기실, 그것들이 소통을 위해 벽을 두드리고 시각 자극을 바꾸는 순간에 인간 일행들 모두의 눈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우주선 테세우스는 그 흔들림, 그 광학 자극을 전부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 처리에는 어떠한 맹점도 존재하지 않아 그것과 연결된 '흡혈귀'는 훼방꾼들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중점은 흡혈귀가 그들을 이해했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의식으로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사실, 그것은 의식이 상당히 열등한 활동이기 때문에 그렇다. 적어도 <블라인드 사이트>에서의 관점으로는 말이다.
작중 주인공이자 화자인 시리는 늘 이런 말버릇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당신이 XX라고 생각해보라. 그는 어릴 적의 수술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비인간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사람에게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게 되며, 대신 모든 자극들을 분석해 객관적으로 누군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느끼지는 못했고, 늘 그의 기계적 보조 장치에 의존해 이런 행동/반응을 보이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할지를 계산해낼 수만 있었다. 그가 정말로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책의 후반부,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 주인공이 옛 일들을 회상해내며 이 소설을 풀어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물들에게 공감하며, 그/그녀가 했던 일들, 그들의 과거, 그들의 특이한 확장 신체 기능 따위를 완전히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들을 달고 있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게 되는가를 말이다. (아마 네이글의 <박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상당히 염두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블라인드 사이트>는 이 의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야를 그대로 유지한다. 주인공이 결국 얻게 된 공감하는 능력, 의식을 토대로 다른 이를 이해하는 능력은 사실 그리 쓸모가 없다. 그가 지구에 돌아가는 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인류가 큰 희망을 가질 가능성은 없고, 심지어 지구에서는 이미 더 이상 의식을 가지지 않는 흡혈귀들이 인류를 완전히 대체해냈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위에서 살짝 언급하고 넘어간 흡혈귀 이야기를 해보자. 이 생뚱맞은 흡혈귀가 대체 뭐란 말인가?
피터 와츠는 생물학적인 외삽을 통해 흡혈귀라는 인류의 변종을 상상해낸다. 고대 인류 중 하나로, 특이한 돌연변이 탓에 인간을 섭취해야만 하고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수직 정보와 수평 정보를 시각을 통해 동시에 보게 되면(더 쉬운 말로 바꾸면, 십자가 모양을 보게 되면) 발작을 일으키게 되는 종족. 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점은, 흡혈귀는 인간적인 의식을 갖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의식이 동시에 처리할 수 없는 두 상반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 인간은, 비록 무의식적으로는 그 두 정보를 동시에 받을 수 있어도 의식이 이를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결국 한 번에 하나씩만을 활용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흡혈귀보다 열등한 종족이고, 그 열등한 이유는 바로 쓸데 없이 의식 같은 발현을 진화 과정에서 얻어버린 탓이다.
<블라인드 사이트>가 상당히 흥미로운 글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하고 괴상한 우주적 생명체를 의식과 학문을 통해 분석하면서, 결국 그 끝에 우리의 의식은 전 우주에서도 매우 특이한 성질이며 동시에 쓸모도 거의 없어 결국 우리를 도태시키고 마는 성질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자기파괴적인 결론에 이마를 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블라인드 사이트>는 <솔라리스>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도 전혀 다른 방식의 대꾸가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피터 와츠의 글 솜씨가 그리 뛰어나다고는 별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미 이 글을 옛적에 읽었고, 이 설정들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로 책을 읽어보니 전에는 어렴풋이 '다시 읽으면 혼란스럽지 않게 이 글을 읽어낼 수 있겠지' 생각을 했던 것이 딱히 맞는 생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섞어서 회상하며 정보들을 숨기는 건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서술 방식이 너무나 투박하고 우리가 글을 읽으며 상상할 수 있는 구도나 묘사 대신 기술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결국 크게 와닿지는 않는 말들'만'이 너무나 많다. 나는 <블라인드 사이트>가 뛰어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하필 이것을 써야만 했던 사람이 이것을 떠올린 피터 와츠라는 게 참 아쉽다. 예전에 피터 와츠의 다른 단편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참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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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다 수준까지는 아니기는 한데... 좀 이렇게 기교 넘치는 글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
요샌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는데 원래 작가가 아니라 해양생물학자였음. 글재주 떨어지는게 당연하지
야 이 글만 볼때는 이책 엄청 흥미로울 거 같다 역시 이런 주제의 사고실험에는 sf가 최전선이겠구나 좋은 리뷰 감사
흥미로운 것도 맞음 ㅇㅇ 한 번은 꼭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 생각함
케르베로스의 다섯 번째 머리도 보시고 리뷰남겨주시면 안될까요? 절판된 책이지만서도..
불새 ㅋㅋㅋㅋ
읽고 보니 사실 성장소설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