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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 누구보다 완고하고 까칠하며 거친 사내가 있다. 이 사내는 신물나는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치이고 무시당한 나머지 혐오스러운 세상 아래에서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는 방법을 미처 익히지 못한 남자이며, 유일하게 애정을 주고받았던 아내의 곁으로 떠나길 그 누구보다 간절히 소망한 남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이 모나디 모난, ‘오베’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늘그막에 생판 모르는 타인과 애정을 주고받는 법을 차츰 배워가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매우 선형적인 작품이다.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교훈적인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듯 했다. 만약 오베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서술되었다는 최소한의 특이점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보다 선형적인 작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선형적이고 평이했다. 괴팍하지만 매력 있는 영감님의 억센 완고함과 고집이 어느 계기로 인해 헝클어지고 끝내는 해소된다는, 애니메이션 등 여러 매체에서 다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은 사실 이 소설이 참신한 개성으로 어필하는 소설이 아님을 강하게 보증하는 요소이다.
이 소설의 최대 매력이자 최대 강점은 단연코 독자가 오베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다분히 권선징악적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권선징악은 갈등을 해결해 오베라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다는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국한된다. 애써 모른척하고 넘길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마저도 웃어넘기지 않고, 낯선 것을 의심하고 헐뜯으며 자신의 자산인 근면함과 정직함을 심해보일정도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오베는 교차 서술된 그의 안타까운 과거와 차츰 유하게 변하는 그의 성향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조심스레 권유했다. 그가 까칠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만년의 나이에 마주한 유의미한 변화는 그에게 인간성을 부여했다.
오베는 어떤 의미로는 틀리지 않았고 어떤 의미로는 틀린 삶을 살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성실함을 매개로 맨땅에 연거푸 헤딩한 끝에 얻은, 일평생 그의 든든한 자산이 되어준 완고함과 타협하지 않는 자세는 결국 틀리지 않았고, 이웃 주민들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섣부른 낙인은 그의 나쁜 버릇이었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오베는 그의 장점을 고고히 고수한 채로 단점을 차츰 고쳐나가는 것에 성공해 그의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하다못해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다 죽을 수 있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댈 줄 알아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모나고, 까칠하고, 다혈질인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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