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동양철학을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님. 특히나 동양사람이 서양철학을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 심지어 그냥 서양사람이라도 동양철학을 함부로 무시하는 경우는 절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님. 당연히 경우에 따라 이런저런 극단적인 입장들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전혀 무시하는 경향이 없음.

오히려 일반적인 서양사람의 경우 동양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 같은게 있는 경우도 많아서 동양의 문화나 철학 이러면 마치 티베트의 사원이나 고승을 떠올리는 듯한 그런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하기도 함.


그리고 글 내용에서는 동양철학이 상형문자라 추상적인 개념을 담을 수 있겠느냐는 말도 있고, 리플을 보니 동양철학은 뜬구름을 잡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 둘은 일견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겠지. 전자는 "추상적인 것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얘긴데 후자는 "너무 추상적이다"라는 얘긴거잖아.
그래서 한번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대비를 정리해보았음.(참고: 이것 역시 하나의 이론이자 해석일 뿐, 완벽하다거나 정확한 것은 아님. 다만 일반적인 견해와 해석을 반영하고 있음.)

서양철학을 동양철학과 대비시켜 생각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플라톤을 보는 것인데, 이건 "플라톤 이후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음. 이건 플라톤이 그만큼 위대한 철학자라는 단순한 존경의 표시라기보다는, 플라톤의 철학사적 의미를 표현한거라고 봐야 더 정확할텐데 플라톤의 철학의 중요한 양상 중 하나를 좀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올라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고 할 수 있음.
땅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땅에 존재하는 인간으로부터 철학적 사유와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이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플라톤이 순수한 실존이라고 보았던 이성과 이데아의 세계를 가리키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이러한 순수한 이성과 이데아 등으로 다시 땅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일들을 다루고자 했다는 것을 말한다.
첫번째는 플라톤의 저서 중 소크라테스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는 초기의 저서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두번째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포함한 그의 형이상학 체계에, 세번째는 이제 플라톤의 유명한 정치론과 같은 보다 어떤 현실세계에 가까운 이론들에서 발현된다고 볼 수 있지.
어찌보면 이것이 서양의 철학사의 요체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음. 서양 철학의 시발점은 익히 알듯이 탈레스라고들 하는데, 탈레스의 가장 위대한 점이자 그 시사점은 그가 던진 질문 그 자체야. 바로 "만물의 근원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지. 즉 서양 철학의 시발점 자체는 굉장히 추상적이라고 볼 수 있음."만물의 근원" 또는 "우주의 이치"와도 같은 추상적인 것에 대해 먼저 의문을 갖게 되고, 그런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다시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자 하고 또 현실에 적용코자 하는 것이지.
반면, 동양 철학의 시초는 어땠을까? 흔히 동양철학의 시작은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로 보고 있지. 공자, 맹자, 노자, 묵자 등등 그런 사상가들을 가리키는 것임.
이들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탈레스 같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먹고 살 걱정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대도 아니었을 뿐더러, 탈레스나 그런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마 귀족이었을거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한가하게 하늘 쳐다보면서 몽상이나 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을거라는데서 추측하는거지. 실제로 그리스 사람들은 당시 세계의 다른 어떤 문화권보다도 여유가 있었고 문화를 사랑하며 여가를 즐겼던지라 진리에 대한 탐구 자체를 여가로 즐길 정도의 사람들이었음. (그러니까 그때는 철학 및 독서가 여가생활)
반면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중국은 기존 정권이었던 주나라의 제후들이 각각 제후국으로 난립하면서 크고 작은 전쟁이 엄청나게 많았고 민생은 말도 못하게 피폐했고 사람들은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었지. 공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춘추시대라서 전국시대보다는 아주 약간 나았는데 그 공자도 생전에 전쟁을 100차례도 넘게 목격했다고 함. 그 정도이니 할말 다 한거지.
이런 환경에서 시작된 제자백가들의 사상은 무슨 우주의 원리가 어쩌니 만물의 근원이 뭐니 그딴 질문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마 당시 제자백가가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과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 호기심 자체를 알량하고 안이하다 여겼을지 모른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철저하게 사회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근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떤 존재론이나 관념론에서 출발하곤 하는 서양의 형이상학과는 달리, 동양철학은 철저하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인간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사상을 짧게 요약할 때 인의예지를 얘기하지? 사실 여기서 근본이 되는 개념은 "인"인데, 인은 어떤 내적인 면을 가리키는거고, 공자의 유가사상의 외형은 바로 "예"였다. 공자의 예라는건 결국 "주례"라 해서, "주나라의 예"를 가리키는건데, 즉 기존 정권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했던거지. 신하는 왕에게 복종해야 하므로 제후는 주나라의 군주에게 복종하고 그 체계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도리라고 본거야. 결국 유가는 그런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서 나왔고 또 사상 자체도 사회정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된다.
묵자를 보아도 이런 제자백가의 배경과 성향은 명백히 드러나는데, 묵자는 또 공자와는 달리 어떤 그런 틀에 박힌 예라던가 어떤 계급적/차등적 정치사회 시스템을 부정하고, "겸애"라는 사상을 주장했는데, 이건 쉽게 말하자면 어떤 "인류애" 같은거야. 모든 사람을 다 평등하게 사랑하자는거지. 이건 기독교가 나중에 말하게 되는 네 이웃을 네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즉 묵자는 모두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이런 전쟁과 혼란이 사라지고 모두가 모두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게 된다고 본거야. 굉장히 심하게 이상주의적이라 볼 수 있지만 어쨌든 그것이 묵자의 정치사회론이었던거지.
도가는 그럼 어떤가? 도가는 정치사회가 아니라 좀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얘기 아닌가? 이건 앞의 플라톤에 대한 설명과 대비시켜보자. 플라톤은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고 했지? 도가는 굳이 따지자면, 하늘에서 시작해 땅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도가에서 말하는 하늘이란 "도" 혹은 "무위" 혹은 "무위자연"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 혹은 인간 사회와 인간 세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그러한 인간적인 것에서 다시금 도, 무위를 지향해간다는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도를 무슨 주술적이나 신비적인 면으로 해석하는 경우나 무슨 기인들이 참선 수련하고 이런걸로 여기는 것은 다소 왜곡되었다고 본다. 또 반면 가끔 이걸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떤 극단적 부정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도가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면, 아까 말한 "땅으로 내려왔"을 때의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노자 역시 "소국과민"이라는 정치론을 주장하지. 따라서 도가가 무슨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도 타령만 하고 있는거라는 인식은 사실 노자를 너무 단편적으로 곡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국과민"은 이제 노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정치 형태인데,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굉장히 어떤 소규모의 소극적 국가를 이상적이라고 본 것임. 이는 국가가 커질 수록 그 지도자는 자꾸 지배 계층의 욕망만 채우려고 되게 때문이라고 본거야. 즉 나라 자체가 작아져 군대도 무기도 갑옷도 필요 없는 그런 소박한 형태로 돌아가서, 사람들은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지. 즉 아까 말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인거야. 흔히 노장사상으로 묶어 얘기하는 장자는 사회정치보다는 다소 인식론적인 면이 있었지만, 노자의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이었다는 것 뿐이지 장자 역시 현실적인 어떤 가르침과 맞닿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서양은 현실적/합리적이고 동양은 추상적/관념적이라는 생각이 왜 잘못된 대비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또 그럼 서양은 추상적이고, 동양은 현실적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말했듯 플라톤에게도 하늘도 땅도 있고, 유가나 도가에서도 하늘과 땅이 다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순서나 구조에 있어, 그 근원이 어디고 그 지향점이 어디인지, 어디에 가치를 두고 또 궁극적 목표가 어디인지 하는데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결국에 가면 완전히 추상적이기만 한 철학도, 완전히 현실적이기만 한 철학도 없게 된다. 관념적인 것은 결국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현실 역시 관념적인 것으로 늘 표현되기 때문임.

철학 갤러리 201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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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퍼옴. 이거 디시 철학갤 출처인가?
도대체 7년간 철학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