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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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외,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 2020.

 

당선작인 정지아의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 최근 읽은 단편 중 가히 최고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특히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계급의 다정한 공포를 서슴없이 보여줬고 조경란의 가정사정은 가정이라는 태생적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절제하며 슬프게 풀어냈다는 데서 감명 깊었다. 하지만 당선작이 개인적으로 너무 넘사벽이어서 이 작품만 독후감을 남기도록 하겠다.

 

채 오십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 위암 2기를 판정받고도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술독에 빠져 사는 사촌 동생이자 집안의 장손인 기택은 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무작정 찾아온다. ‘는 기택을 대접하기 위해 정씨 집안의 트레이드 마크인 꼬치전(고추전)을 부친다. 집안 어른들은 집안에 새사람이 들어오거나 아이가 전을 먹을 나이가 되면 그들에게 매워서 눈물이 쏙 빠지는고추전을 내왔다. 고추전을 맛나게 먹는 순간 워메, 정씨 씨알이 맞그마이. 씨는 못 속인당께.”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함박웃음을 지었다는 회상한다. 집안 어른들이 정시 씨알을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동안 정씨 씨알이 아닌 어머니는 눈이 벌개지도록 고추전을 부쳐야 했다.

 

소설에서 의 어머니는 기택을 택아 택아 부르며 끔찍이 아낀다. 할 일 없는 겨울철에 뭇 아낙네들이 화투 치며 막걸리를 마실 때도 동치미 국물이나 삼키고 말았던 그가 기택에게 처음으로 소주를 한 잔 받아 마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의 기택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장손을 향한 가부장적 사랑에서 비롯한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택은 짝은어매 젤로 좋아허는 매운탕을 얼릉 대령할랑게.”라며 물고기 등 재료를 갖고 오더니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고 위가 약해 매운 것을 못 먹는 어머니가 매운탕을 먹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는 어머니에게 매운탕을 좋아했냐고 묻는다. ‘의 어머니는 나가 속벵이 도져가꼬 암것도 목 묵고 있는디 택이 쟈가 매운탕을 끓어 왔드라. 쌀뜸물도 못 넹겠는디 매운탕은 넘어가야? 그거 묵고 나가 살았당게. 그거이 원제끄나?”라 답한다.

 

그때는 이십 대의 가 안기부한테 쫒겨 다니느라 어머니가 어떻게 늙어가는지 알지 못했고, 수배 당한 딸 걱정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관심 밖이었던 때였다. ‘는 언젠가 기택이 군대를 전역하고 막일을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전국이 노동조합 건설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였다. ‘가 노동자인 기택이 계급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게 답답해서한소리하자 평생 그런 적 없던 기택이 의 말을 끊어 먹고는 나 밥벌이는 나가 알아서 헐랑게 짝은어매헌티나 쫌 신경 쓰소. 통 잡숫들 못하등마.”라 말한다. 그 길로 병원에 데려가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의 어머니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가 없는 고향에서 기택과 의 어머니는 서로 기대어 그런 시절을 보낸 모양이었다. “짝은어매가 매운 거 못 잡숭게 땡초는 뺐어라라 말하며 정성스레 만든 매운탕을 의 어머니에 들이밀자 의 어머니 역시 그에 보답하듯 근래 이렇게 잘 먹기는 처음이라고 가 평할 정도로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이런 둘의 사이를 단순히 가부장적인 구습에 얽매인 것이 바라보는 게 합당할까.

 

어릴 적부터 공부머리라고는 전혀 없어 방과 후 한 시간씩 남아 국민교욱헌장을 외어도 도통 외질 못했던 기택은 식충이라고 자기 아버지에게 몰매맞기가 일쑤였지만 그래도 힘은 장사라 군대에서 제대한 뒤 건강문제가 생기기 이전까지 성실히 건설현장 노동에 종사해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부양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기택이 지금은 삶을 포기한 채 연신 소주만 들이키고 있는 걸 는 이해하지 못한다. 기택이 잠시 밖에 나간 동안 술 하나를 맘대로 못해? 그게 사람이야?”라고 속상함을 표하는 에게 의 어머니는 사는 거이 다 맘대로 된다디야? 니는 살아봉게 다 니맘대로 되디야? 그랬으먼 니는 이혼을 왜 했냐? 촌구석으로는 왜 기어들어왔냐?”라고 화를 낸다. 그의 발언은 단지 기택을 비호하기 위함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시골 여고에서 처음으로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했지만 이혼과 모교 교수직에 실패하고 결국 고향 인근의 사립 대학에 자리 잡은 에 대해 무슨 일이든 매번 잘했다한마디만 했던 그가 를 향한 속상함을 토한 것이리라.

 

는 기택을 집에 데려다 주면서 술이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 마시냐고 묻는다. 가는 길 내내 계속 함구하다가 끝내 나온 기택의 답은 다음과 같다. “눈을 못 감겄어. 눈만 감으먼 있잖애. 온 시상이 시커먼디, 시커먼 것이 똑 목을 졸르는 것맹키여. 무서서 눈을 못 감겄어. 술을 마시면 나도 모리게 잠을 장게, 무서서, 잘라고 마시는 것이여.”

 

이러한 기택의 답변에 는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섬망 증상일 가능성부터 생각나지만 그와 동시에 기택의 아버지가 한 말 역시 떠올린다. 그는 아홉 살 때 바로 코앞에서 당신 아버지를 포함한 동네 장정 스무 명이 국군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한 뒤로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경기를 일으킨다. 그것을 멈출 유일한 방도이자 경기의 부끄러움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소주였다.

 

그는 항시 허공의 어디쯤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됫병 소주를 종일 천천히 들이켰다.” ‘가 어린 시절 그에게 무엇을 보냐고 묻자 기택의 아버지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 채 보긴 머슬 봐. 사방이 시커먼 허방인디.”라 답한다. ‘가 떠올린 대로 그의 대답은 기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섬망 증상일까. 술을 마셔서 세상이 암흑이 된 것인가. 세상이 암흑이어서 술을 마시게 된 것인가.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허깨비처럼 허청허청 환한 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기택은 에게 이렇게 말한다. “짝은어매헌티 쫌 전해주소. 짝은어매 땜시 이때꺼정 나가 살았네.” ‘는 멀어져가는 기택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점의 빛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기택은 그 한마디로 그렇게 빛이 되었다. ‘의 어머니는 기택 덕분에 살았고 기택은 의 어머니 덕분에 살았다. 고추전을 부쳐야 했던 정씨 씨알이 아닌 사람과 고추전을 먹음으로써 정씨 씨알임을 입증했던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었다. 개인의 인생에 대해, 삶의 복합성에 대해, 제목대로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