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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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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경에 발생한 하나의 혁명이 이 책의 주제다. 지난 200년간 세계를 휩쓴 어느 혁명에도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 혁명이다. 19세기 말경에 여러 가지 신기술이 쏟아져 나와 우리가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내면서 인간의 감각 경험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쉽게 간과되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 기술들이 불러온 변화의 혜택을 (더불어 고통도) 받고 있다. 현대인은 감각을 포착하고 증폭시키는 법, 감각을 보존하는 법, 감각을 휴대하고 좋고 내구성 있게 만들어 광범위한 계층과 지역에서 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알아냈다. 수십만 년 전부터도 인류는 이런 변화를 원했을 테지만 이 혁명이 실제로 발생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광범위한 종류의 쾌락을 압축하고 상품화하고 운송할 수 있게 만든 테크놀로지들이 대거 등장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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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인 단절을 하나 가져왔다. 오랫동안 인간의 신체적 욕망은 그 욕망을 충족시킬 기회가 희소하다는 사실에 제약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의 변화는 현대인의 삶에서 이 오랜 길항 관계를 깨뜨렸다. 담배말이 기계, 녹음 기계 등 수많은 신기술들은 만족의 강도만 높여 준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이 훨씬 쉽게, 그리고 끔찍하게 과도한 정도로 충족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명백한 사례가 식품이다. 한 세기 전쯤부터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 설탕 범벅 식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됐고 결국 오늘날 건강과 도덕상의 위기에 봉착했다. 언론은 이 위기의 원인을 식품업계의 무책임함과 좌식 생활의 증가(일터에서도, 여가에서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왔지만, 이 문제는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매우 쉽고 빠르게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변화의 뿌리는 매우 깊다. 1만여 년 전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은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게 됐고, 상류층에는 '비만'이라는 전에 없던 현상도 나타났다. 그런데 19세기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도래하자 훨씬 많은 수의 소비자들이 그러한 과잉을 경험하게 됐다.(소비자 라는 단어는 그때까지 거의 쓰이지 않던 단어다) 산업화된 식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지방, 당분, 염분을 농축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뭉쳐 담는 법을 알게 됐고, 이런 식품을 싸게 제조하는 방법과 멀리 운반하기 좋게 포장하는 법도 알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때는 사치품이었던 먹을거리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흔한 것이 됐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첫번째 사실이다.

오늘날 소비자가 겪는 과잉의 문제를 테크놀로지 혹은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본 기업들의 책임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식품업계만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누구도 억지로 맥도널드에서 먹으라고 강요를 받지는 않는다. 구매 가능한 가격대에서 편리하게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빅맥'과 프랜치프라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공연장에 가는 대신 '아이팟'을 켜기로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이런 선택은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 일까? 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두번째 사실이 있다. 인간은 열량이 높은 먹을거리를 추구하도록 진화해왔다. 먹을 것이 희소하던 선사시대에는 그런 음식들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화의 과정은 인간이 고열량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도록 만들었고, 이런 습성 때문에 인간은 고열량 음식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그런 음식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아예'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의 잃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설탕, 지방, 소금에 사족을 못 쓰는 것은 그런 맛을 추구하는 성향이 오래전 선사시대 인류의 생존에 유용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단맛에 끌리는 이유는 인간이 초식동물, 특히 과일을 먹는 동물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런 동물들의 신경에는 단맛 나는 식물과 과일은 먹어도 되며 영양가도 높다는 정보가 각인되어 있다. 반면 독성 있는 식물은 쓴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감각적 쾌락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실마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때는 귀했던 고칼로리 음식이 산업화로 싸고 풍부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산업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와 자연의 희소성 사이에 존재했던 균형을 끊어내고 무너뜨렸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현대가 오기 전 한참 전에 귀했던 먹을거리들을 열망한다. 그때는 지방과 당분에 대한 열망이 건강에 위협이기는 커녕 생존확률을 높여주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당분(특히 정제된 형태의 설탕)이 너무 흔하고 많아진 오늘날에는 그 열망이 비만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됐다. 동물성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선사시대에는 지방이 귀했다. 사슴, 토끼, 조류 고기에서 지방은 2~4퍼센트밖에 되지 않았고, 따라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 잔뜩 먹어두는 것이 합당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는 쇠고기는 지방을 36퍼센트까지도 포함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획득하는 데 실질적으로 에너지를 전혀 소모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고기를 잔뜩 먹는다.

초코바도 이런 식으로 당근을 몰아냈고 심지어 사과까지 몰아냈다. 제조된 쾌락의 완벽한 사례인 초코바에는 가공하지 않은 과일, 곡물, 야채에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설탕과 훨씬 다양한 (혹은 다양해 보이는) 맛이 응축되어 있다. '스니커즈'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 안의 침팬지가 표현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분과 지방을 최대한 많이 함유한 농축 에너지 꾸러미를 원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초코바는 안에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고 눈길을 끌게끔 포장도 되어 있으며 가격대가 낮고 구하기 쉬워서, 몸에 좋은 정도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게 되기가 쉽다. 즉 이제 생물학적 욕망은 우리에게 유용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침으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됐다. 희소한 세상에서 생겨난 욕망이 풍요로운 세상에서도 우리를 건강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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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는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오기 이전의 세계와 매우 다르다. 포장된 쾌락의 혁명으로 광범위한 영역의 감각적 쾌락이 병에 담기고, 캔에 들어가고, 응축되고, 증류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강화됐다. 이러한 변화가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가 우리의 감각적 세계를 크게 바꾸었으며 우리가 아직 그 영향에 대해 조금밖에 모른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여러 '포장된 쾌락' 가운데 종이담배, 초코바, 청량음료, 녹음기와 레코드, 사진, 영화, 놀이공원 등을 다룬다. 물론 튜브화되고 포장되고 휴대성이 커지고 내구성이 높아진 모든 것을 '포장된 쾌락'이라는 범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포장된 쾌락은 다음과 같은 상호 연관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1. 포장된 쾌락은 감각적 만족을 강화하고, 보존하고, 응축하고, 용기에 담아서 인위적으로 만든 상품이다.

2. 대개 값이 싸고 접하기 쉽다(바로 구할 수 있다). 또 대체로 휴대와 저장이 가능하며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

3. 일반적으로 포장재에 싸여 상표가 붙어 있고 브랜딩 활동을 통해 마케팅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의 형태지만 특정한 공간에 쾌락이 담긴 놀이공원의 경우처럼 '공간'에 브랜드가 붙은 형태도 있다.

4. 꼭 전국적이거나 전세계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기업이 생산한다. 이로써 '개인 소비자'와 '기업 생산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발생한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소비재 중에서도 이런 특성들을 일부(혹은 전부) 갖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의복, 자동차, 책, 시리얼, 코카인, 포르노, 백화점 등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초기에 포장된 쾌락의 핵심적인 특성을 보여주었던 것들, 특히 용기화, 압축, 강화, 동원, 상품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들로만 이 책의 소재를 한정했다. 압축되고 증강되고 포장된 쾌락들을 모조리 담으려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령 포르노나 향수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으며 마약성 물질과 술은 간략하게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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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러한 변모와 관련된 테크놀로지들의 기원을 다룬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할 때면 항상 비판이 따랐다. 비판자들은 과도하게 만족을 느끼는 소비 대중이 통제력을 잃고서 노동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런 우려와는 꽤 달랐다. 최적화된 쾌락때문에 소비자들이 노동을 하고 규율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줄어든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일부가 우려한 신경과 지각의 손상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과자, 음료, 담배 등을 누리는 데 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새로운 필요성에서 새로운 노동 윤리가 생겨났다. 시간이 가면서, 그리고 대체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상업화된 즐거움들은 인간 감각의 두 번째 본성이 됐다. 우리가 먹고, 숨쉬고, 보고, 듣고, 느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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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비주의에 반대하는 비관주의자와 상업화된 쾌락의 보편화를 옹호하는 낙관주의자 사이의 오랜 논쟁을 넘어서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욕망과 희소성 사이의 오랜 길항 관계를 교란하면서 감각에 일으킨 혁명을 대중 소비의 기원으로 보면서,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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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부분은 11페이지에서 35페이지까지 장장 책 분량의 5% 정도인 첫장에서

책의 내용을 함축하는 단락만 대충 옮겨적어온거임




책의 부제가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 이더라

세계가 근대화가 되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히 식품과 음악, 놀이문화 분야에서 '포장된 쾌락'이

근현대 사람들의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 논하는 책임


사실 빅히스토리 계열 책들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지만

항상 그런 책들에서 나오는 고대에서부터~어쩌구저쩌구 하는 서술에 꽤나 지겨워진 상태였는데,

이 책처럼 근대 사회에서 변화된 문화양상을

익숙한 주제의 사물들로 논해보는 책이 되게 신기하고 반갑다고 느낌


근데 원제는 Packaged Pleasure 이더라.

책 내용이나 서문 내용이나

우리말 번역본도 "포장된 즐거움" 정도로 했으면 적절했을 것 같은데

번역출판사가 왜 굳이 '중독'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선택했는 지 모르겠음

자칫하면 책 내용에 대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단어선정일텐데 말이야.

(내가 서문을 읽기 전 제목이랑 표지만 보고 나서는

원작자가 현대인들의 생활상에 대해 꼰대질 하려고 쓴 책인가? 라고 생각했으니까...)


번역 제목 선정은 쫌 아쉽지만, 서문만 읽어봤는데도 한국어판 번역 문장이 꽤나 깔끔하면서 쉽게 이해되는 것 같음.

'되었다'를 일괄적으로 '됐다' 로 써버린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