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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선생님께선 일제 강점기 시대 인물을 주제로 작품과 생애를 조사해오라는 수행평가를 내주셨다.
제비 뽑기로 각자 맡을 시인을 골랐는데 제비를 뽑고 난 뒤에 이름을 보니 아뿔싸! 하필 뽑아도 이상을 뽑았었다.
당시에 이상을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만 이상의 유명한 작품이 난해하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발표 당일이 되었을 때 결과는 처참했다. 대표 작품을 보니 이해되기는커녕 오리무중에 빠졌고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상을 뽑았나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이런 작품을 쓴 이상이 미웠고 이상을 제비뽑기 안에 넣은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도서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들려는 찰나 옆에 이상 전집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싶어서 이상 전집 단편 소설을 빌렸지만 읽다 보니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었다.
그렇게 또다시 몇 달이 지났다.
이상이란 존재를 잊고 살 무렵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해서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니
저자가 이상이라고 써져있길래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기억하던 이상의 작품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는 심정으로 이상 전집 시와 수필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시는 옛날과 똑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엄청 많았지만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 「거울」이란 시는 난해했던 다른 시와 다르게 읽기도 편했고 해설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괜찮았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시는 「이런 시」였는데 멋지다고 생각하는 구절 뒤에 써진
"어떤돌이 내얼골을 물끄러미 치여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드라"
이 구절이 앞 구절과 대비되는 느낌이라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그 뒤에는 이상의 수필을 읽었는데 여기서 이상을 향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순간 오감도를 쓴 동인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문장이 바뀐 걸 체감할 정도였으며
이상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인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여러 글들이 있었지만 수필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동생 옥희 보아라」 글이었다.
특히 끝부분에 옥희를 생각하는 마음과 이상이 쓴 문장은 이상의 글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상의 글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이 글을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여태까지는 난해함 때문에 이상이 싫었고 이상이 미웠는데 이번 계기로 이상을 다시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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