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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개신교 내에서 반공주의가 형성되고, 그것이 분화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개신교 내의 반공주의는 일제시기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제시기에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개신교 사회주의자들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 내에서 반공주의가 정착된 시기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이다. 이후, 한국 개신교는 반공주의를 그 어떤 단체보다 앞서 실행하는 반공의 첨병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면서 개신교 그룹 내에서 반공주의에 대한 계파 분화가 이루어졌다. 냉전 종식과 민주화 이행으로 옅어졌던 반공주의 색채는 최근 다시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었다.

필자는 논문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본래 종교는 정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주류 종교는 정치성을 띄었다. 물론 이것은 전근대 시기 통치자들이 피지배층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종교가 이용된 탓도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도 종교는 종종 정치색을 드러낸다.

이는 현대 개신교계에도 마찬가지이다. 공산주의가 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대 개신교 보수파의 반공 트라우마는 지나치다.

이미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지 최소 20년이 넘었고,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북한의 기형적 정치체제가 문제가 많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개신교계는 70년 전에 형성된 관념을 굳건히 지키며 정치화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이유는 이들에게 반공주의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도그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 반공주의가 정치 이념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선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이들에게 반공주의는 무조건적인 선이다.

종교인도 정치 성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에 잠식당하면 그 종교는 개혁의 대상이 된다. 종교 개혁 직전의 천주교가 그러했으며, 고려 말기의 불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종교는 본래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 독재 항거나 전쟁 반대 등 이념과 성향을 불문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항거하는 활동에서라면 종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종교는 사회 내에서 약자를 보듬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믿음과 안정을 주는 종교 나름의 역할이 있다. 종교가 본분을 잊고 정치화한다면 해당 종교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것이다. 공자의 말처럼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종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

저자의 논문으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공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이는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전광훈 목사 같은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반공주의 개신교 그리고 불교 세력은 극우 정치 세력의 주요 지지층 중 하나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에도 왜 그들이 반공 노선을 더욱 강화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대한민국이 체제 경쟁에서 완벽히 승리한 만큼 반공이라는 낡은 틀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