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오일순, 사회집단간의 차별의식과 신분관념, ?東方學志? 124, 2004
저자는 해당 논문에서 고려시대의 신분관념과 그로 인한 차별을 다룬다. 왕족들의 국서(國庶)관념, 무관에 대한 문관의 차별의식, 사족들이 서리와 향리에게 가지고 있는 차별의식, 지배층이 상인과 노비에게 가지고 있는 경멸감 등 여러 사례가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신분 및 사회 계급에 의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었다. 고려 역시 이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고려 사회는 통일신라시기에 비해 개방적인 사회였고 따라서 일반적인 지배층뿐만 아니라 피지배신분도 지배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지배층과 신분 상승을 한 새로운 지배층 간의 갈등은 당연했다. 기존 지배층은 새로운 지배층에 대한 멸시와 견제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필자가 이 논문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새로운 지배층은 기존 지배층을 어떻게든 따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무신정권 하의 무신들도 문벌 귀족이 그랬던 것처럼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권력과 위세를 강화하려 했고, 노비나 상인, 서리 출신 관리들은 자신의 출신을 부정하고, 사족 관료들처럼 행동하려 하였다. 즉 이들은 기존 사회를 변혁하려 하기보다는 사회에 동화되려 했다. 물론 만적의 난처럼 체제 변혁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건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존 체제 안에서 지배층의 위치에 오르려 했다.
이는 사회 성격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사회 성원들의 관념이 얼마나 견고한지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사회의 비주류는 주류 세력을 향해 동경과 부러움을 보내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배 세력에 의한 차별과 멸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전근대 사회의 여성에 관한 것이다. 개방적이고 변동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고려 사회에서조차 여성이 관직에 오르는 경우는(필자가 알기로는)없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성리학에 능통한 여성이나 왕실에서 권세를 휘두른 여성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지배 계층의 위치에 오른 여성은 없었다.
전근대 사회의 성 관념은 때로는 신분의식보다 더 강하게 작용했다. 신분의식의 경우, 사회가 혼란기에 접어들면 약해지는 경우가 있었던 반면, 성 관념은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해당 논문에서 여러 차별 사례를 다루면서도 여성 차별에 대해 다루지 않은 것은 지면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신분 의식보다 성 관념이 더 견고했기 때문이다. 즉, 성 관념의 경우 변동 가능성조차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룬 사례 중 가장 최하층의 사례인 노비만 보더라도 비슷한 신분인 이의민이 혼란기를 틈타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 것만 보더라도 여성보다 계층변동의 가능성이 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여성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고려시대사에서도 여성사 연구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전술한 제약들 때문에 고려 여성사 연구가 쉽지만은 않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가들이 고려시대 여성의 모습을 찾아낼 때, 대한민국의 역사학은 한층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각 시대의 여성사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