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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에서 약간 다듬어서 다시 올림.
제목: 우주의 기원 빅뱅 (원제: Big Bang: The most important scientific discovery of all time and why you need to know about it)
저자: 사이먼 싱 (Simon Singh)
출판: 영림카디널, 2006, 2015 (원판: Fourth Estate, 2004)
빅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빅뱅은 시공간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광대한 우주는 먼 옛날 매우 작은 한 점에서의 대폭발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 사건, 사람들은 모두 빅뱅에서부터 이어진 역사 안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빅뱅 이론은 굉장히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론이다. 아마도 빅뱅은 상식에 속할 것이지만, 그러한 "상식"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다. 어떻게 이 거대한 우주가 작은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인가? 애초에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왔는가? 또한 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이는 빅뱅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가만, 그런데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이먼 싱의 책에는 두가지 주인공이 있다. 하나는 빅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학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빅뱅에 대한 몇가지 과학적 사실들을 배울 것을 예상하면서 책을 집어 들지만,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그러한 예상을 뛰어 넘는다. 그는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된다.
책은 빅뱅이 어떻게 다른 경쟁 이론들과의 순탄치 않은 경쟁에서 승리하여 인류 지식사의 금자탑 중 하나가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아득히 먼 옛날 인간이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부터 관찰한 것, 상상한 것, 그리고 실험한 것들에 관한 역사. 고대 문명의 사람들의 우주론부터, 중세의 천동설과 지동설, 근현대의 정상우주론과 빅뱅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왜 변해왔는지.
표: 천동설과 지동설의 과학적 비교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위의 표는 저자가 당시의 관찰사항에서 비롯된 설명의 요청 및 기타 요구기준(Criterion)들에 대해서 천동설(Earth-centred model)과 지동설(Sun-centred model)이라는 대립하는 이론이 각기 얼마나 성공적(Success)인지 비교한 것이다. 저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설명을 이어 가면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 및 발전들에 따라 이러한 비교 도표를 여러번 갱신하여 보여 준다. 이는 다른 과학교양서, 그리고 전공서나 전문적 과학 교육과정에서 볼 수 없는, 이 책만의 매우 뛰어난 강점이다.(전공자들이여, 교양서를 읽어라. 전공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배울 것들이 있다.)
위의 표에서는 천동설은 상식에 부합하며(v), 물체의 낙하(v), 행성의 궤도와 역행 운동(v)까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결과 이론적으로 너무 복잡해 졌다(x). 지동설은 상식에 어긋났고(x)(당시의 상식 기준), 행성궤도의 움직임 등의 몇몇 문제를 당시에는 잘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론으로서 더 단순하고 아름답다(v). 과학의 태동기에 있었던 이 두 이론의 경쟁은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치열했고,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이다. 보통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은 생략하고 그 결과만을 설명하는 책들이 많지만, 러한 이론의 경쟁으로부터 새로운 앎이 태어나고 새로운 상식이 되는 과정의 설명의 중요성을 저자는 간과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 과정을 차근차근 잘 설명하고, 시각적인 도표를 통해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갈등은 비단 천동설과 지동설의 단 한번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항상 있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지식은 긴장과 경쟁 없이 순탄하게 태어나는 법이 없었다. 오늘날의 당연한 상식은 날 때부터 당연했던 것이 아니라 한번은 추측 및 이론이었고, 그 이론은 각자 여러 도전을 받아 가며, 그러한 도전 속에서 최종적으로 살아 남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인정되어 새로운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세의 천동설과 지동설의 갈등은 20세기의 천문학의 대논쟁, 그리고 빅뱅 이론과 정상우주론의 대결에서도 재현된다. 그러한 각각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들 역시 저자는 자세한 설명과 풍부한 해설 그림 자료, 그리고 잘 정리된 표를 통해서 설명해 준다. 특히나 책의 진행(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점점 바뀌어가는 표의 내용이 패러다임 전환을 인상적으로 잘 보여준다.
빅뱅이 상식이 되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빅뱅이 패러다임이 되는 과정은 긴장이 가득한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였고, 저자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뛰어난 이야기 솜씨로 그 드라마를 훌륭하게 표현한다. 저자가 일화 등의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조사해서 이야기로 잘 구성했는지, 이 책은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저자는 빅뱅을 비롯한 여러 이론들이 발전하는 맥락과 역사적 사실들, 그 과정에서 관련된 인물들의 세세한 일화, 그들이 이론에 대해서 쓴 시와 노래 등의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러한 이야기의 예를 하나 보자. 빅뱅(대폭발)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빅뱅을 반대하는 상대 진영에서 비꼬기 위해서 붙인 별명이라는 것까지는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이 언제, 누가, 어디서 정확하게 한 말인지는 이 책을 읽고서야 알 것이다. 1950년 BBC 라디오 방송에 초대된 게스트이자, 빅뱅이론에 반대하는 정상우주론의 지지자인 프레드 호일이 쓴 표현이었다. 그 이전까지 빅뱅이론은 dynamic evolving model(동적 변화 모형)이라는 더 고상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또 다른 예로, 어떻게 수소,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지금처럼 많이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하던 프리츠 후터맨스(Fritz Houtermans)라는 과학자의 이런 일화도 실려 있다.
"그날 저녁, 우리가 논문을 마무리한 뒤에, 나는 예쁜 여자애와 함께 산책을 갔다. 어둠이 깔리고 별들이 하나 둘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하자, '저 별빛들 너무 아름답지 않니?' 하고 그 여자애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을 펴고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저 별들이 왜 빛나는지, 그 이유를 어제부터 알지.'"
그것은 마침내 밤 하늘의 별들이 빛을 내는 이유를 인류가 알게 되는, 1929년의 어느날 밤에 있었던 짧은 막간극이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인간이 세상과 우주를 이해해 온 역사와 그에 따르는 과학적 지식을 어렵지 않게, 흥미로운 소설을 쓰듯이 풀어낸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할로 섀플리, 히버 커티스, 조르주 르메르트, 프레드 호일등의 과학자들이다. 그 중에 끝내 누군가는 패배의 고배를, 누군가는 승리의 축배를 맛봤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승리했고 누가 패배했는지 하는 결과가 아니라, 서로 각자의 이론을 전개하고 대립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것이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과학을 믿을 수 있는 이유이다.
흠을 잡자면, 긴 분량에 비하면 빅뱅에 대한 과학적 지식 그 자체는 약간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것은 이 책이 빅뱅을 패러다임의 변환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인 싱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상세한 물리학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빅뱅을 과학이론이라는 틀에서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이런 책이 어차피 수식이나 상세한 관측/실험 자료를 기대하면서 읽을 책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교양서 기준으로는 빅뱅에 과한 과학적 지식의 전달은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책은 빅뱅이라는 화제를 통해서 과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빅뱅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 과학의 작동구조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 과학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 혹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들이다.
굿굿굿
"행성궤도의 움직임 등의 몇몇 문제를 당시에는 잘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부분은 초기 지동설이 행성 궤도를 원궤도로 설정해서 생긴 오류일듯. 당시 천동설은 주전원까지 써가면서 (당시 관측가능한) 행성의 움직임을 잘 계산했는데,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계산 값이 잘 안맞았음. 물론 케플러가 타원궤도를 들고오면서 문제가 해결되었고, 천동설은 쇠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