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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모두가 혐오스럽소.
그중에 가장 혐오스러운 건 유대인이오!
그리고 나는 나도 혐오스러워 하오.
나는 계속 혐오를 해야 하오......
한줄요약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어야만 살 수 있기에, 그리고 영원히 증오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움베르트 에코의 작품은 장미의 이름으로 프라하의 묘지가 두 번째다. 확실히 프라하의 묘지가 소재 선정이나 내용으로나 장미의 이름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다. 물론 에코가 장미의 이름 이후로 집필하면서 좀 더 독자를 배려해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만, 세계사라는 소재와 혐오라는 주된 정서의 조화는 읽는 이로 하여금 아주 재미난 흥미거리를 던져준 셈이었다. 적어도 우리와 생판 상관없는 중세 어느 수도원에서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논쟁으로 싸우는 수도사들의 말싸움보단 낫지 않은지?
에코가 주인공더러 (본인피셜) "세계문학상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라고 칭했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 반인륜적 농담을 치려면 굉장히 똑똑해야 된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지성의 상징인 에코는 그 지성을 아낌없이 혐오스런 주인공을 구축하는데 썼다. 주인공 시모니니의 혐오는 처음엔 누구나 "우웩, 왜 저래."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가랑비 옷 젖듯 뒤로 갈수록 그의 혐오에 혹여나 동조하게 되는 마음, 소설이기에 사실로 믿는 그 아이러니함을 겪고 스스로 놀랄 수 있다.
프라하의 묘지는 3개의 화자, 곧 시모니니와 달라 피콜라를 지켜보는 화자와, 시모니니 자신의 회상과, 달라 피콜라의 참견 겸 회상으로 구성돼 이것들이 이리저리 섞이며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를 취하는 건 온전한 시모니니의 시점을 지속적으로 취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독자와 시모니니를 분리시키려는 에코의 구조적인 장치가 아닐까 싶다.
초반부의 진행은 시모니니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며,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기억을 잃어버린 걸 인지한 것으로, 자신의 기억을 천천히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달라 피콜라라는 사내가 또 다른 기록을 남기면서 그의 기억과 기억 속 사건에 대한 정정, 혹은 빈 부분을 자신이 메워주는 식이다. 그런즉 과거에서 현재로 되짚는 과정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고, 그 바깥으로는 시모니니가 자신이 기억 잃은 이유를 찾고 달라 피콜라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부수적인 내용이 껴들어 있다.
단순한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도 문제 없을 흥미로운 내용과 사건의 진행이지만, 이런 바깥 구성을 통해(그리고 끊임없이 이런 바깥 내용이 점차 진행되고 해결되고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줌으로써) 독자는 지속적으로 흥미를 잃지 않고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만약 책장을 어쩔 수 없이 덮는다면 그건 셋 중에 하나다.
세계사를 검색하기 위해 나무위키를 키거나, 책장을 덮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단어 좀 찾아본다고 사전을 뒤지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말 유감스럽게도 에코의 문장과 내용이 부담스러워서 못 읽고 덮은 것이겠다. 바꿔말하면 소화만 할 수 있다면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와 흥미를 붙드는 노련한 책(구성, 구조)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으로선 또 어떤가. 그냥 믿고 보면 된다. 왜냐고? 쓴 사람이 에코니까! "주인공 시모니니 빼면 다 진짜임ㅇㅇ"이라고 에코가 책 뒤편에 첨언했다는 건 그가 진심이라는 뜻이다(...) 바꿔말하면 에코는 19세기에 있었던 혐오, 그중에서도 유대인 혐오의 끝을 달리던 문서의 전락을 다루는데 있어 19세기 사건들을 시모니니라는 축에 훌륭하게 묶어낸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에코라서 가능한 묘기가 아닐련지.
또한 시모니니의 혐오 수준은 가히 범람하는 인터넷의 대홍수 시대 속에서도 요새 최고치를 찍는 혐오의 뺨을 때린다. 뺨뿐이겠는가. 그냥 무릎 꿇고 눈높이 맞추라 그러지. 혐오의 총망라라고 해도 좋을 터다. 심지어 그의 혐오는 단순히 감정적 혐오를 넘어선 행동으로 표출되니 말이다.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시모니니를 보면 19세기 사회 속에 판치는 거짓문서들이 오늘날 SNS에서 판치는 거짓말들과 별 다를 바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이 소설은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을 소개한다고 나오지만, 나는 그것보다 사람들이 거짓을 믿는 이유, 시모니니의 거짓문서가 잘 팔리던 이유를 생각했다. 그건 소설에서도 이미 나온 바가 있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그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증오의 믿음은 생의 가장 활발한 원동력이니, 증오야말로 가장 지속되어야만 하는 감정인 것이다.
사람의 확증편향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할 것도 없다. 19세기에 퍼진 음모론의 절정은 프로토콜로 요약이 되니까. 그리고 그 프로토콜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확증편향과 혐오가 결합할 때 얼마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불러일으키는지 21세기를 봐도 알 수 있다. 문화콘텐츠 검열을 봐라. 그것이야말로 21세기판 시모니니(들)의 활약이 아니겠는지.
시모니니는 혐오를 물려받았고, 그것을 계승했으며, 그 혐오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순간이 바로 '프라하의 묘지'라는 문서를 작성했을 때였다. 그가 진정으로 유대인 혐오자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의미했다. 그는 더 이상 혐오하지 않으면, 증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유일하게 좋아했던 미식조차도 그가 삶의 원동력을 잃었을 때 즐길 수 없게 됐다. 이 이상으로 자명할 순 없다.
그는 혐오하고 증오할 수 있기 위해서 다시 손 놓았던 일을 할 정도였다. 그는 혐오해야만, 증오해야만, 미워해야만, 그리고 그걸 표출해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불구자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에 산적해있는, 수많은 혐오자들도 똑같은 처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시모니니보다 더 비루할 수도 있다. 시모니니는 재능을 살려 돈이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싫어해야 된다는 사실조차 인정할 수 없는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더욱 격렬하게 타인을 비방하고 헐뜯어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불쌍하다.
그들을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시모니니 자신이요, 시모니니를 고용한 정보기관들이다. 그들은 혐오를 부추기고, 확증편향을 심화시키는데 적극적이다. 그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익은 결코 공리적이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용 당하기만 할 뿐, 그 무엇도 없는 것이다.
에코가 바란 건 바로 그 이용 당하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세상을 날카롭게 꿰뚫고 음모론으로부터, 혐오로부터, 그리고 확증편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프라하의 묘지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에코가 "소수의 변태들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어떻게 그런 자들까지 고려한단 말인가? 그런 식이면 창작 자체가 그릇된 것이 되어버린다.
프라하의 묘지야말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읽혀야 되는 소설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리뷰를 혐오의 온상지 중 하나인 디씨에 올리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p.s.여담으로 음식묘사가 정말 기깔나게 맛있게 묘사되는 것도 있고, 음식만 나왔다 하면 재료니 조리법이니 많이 나와서 에코가 다 먹어보거나 만들어보고 쓴 줄 알았다(...) 시모니니의 생리적 욕구가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쏠린 모습, 그건 시모니니의 극단적인 일면을 보여주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가 셰프나 했으면 고든 램지 뺨치는 셰프가 되었을 테고 누구 혐오할 것도 없이 잘 벌어먹고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게 한다(...)
프라하의 묘지 등급표
필력: S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B+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SS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S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A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S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A+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
ㄱㅊ - dc App
뭐가 괜찮다는 거야?
개추라고 - dc App
아ㅋㅋㅋㅋ
등급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진지, 각 등급이 어느 정도의 만족도를 나타내는지 모르겠어요. (A+와 S가 얼마나 차이나는가) 같은게 이해가 안가니.. 등급별로 만족수준을 개략적으로나마 적은 조견표를 올릴때마다 사진첨부해주시면 이해하기 더 좋겠음.
대충 C+이 산술적 평균(50점) 정도, B는 평타~평타 이상, A부턴 장점으로 꼽을 만한 거ㅇㅇ. S는 특화 수준. 어차피 개인 기준이라 세세하게 따져가면서 봐도 의미 없는 거라 "아 대충 이렇구나"고 받아들이면 좋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