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는 1890년대부터 예술운동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에게 1894년 빈 대학 강당의 천장화 의뢰가 들어왔고, 그는 <철학> <의학> <법학> 세 가지 작품을 1900년대 초 완성시켰다.
하지만 세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제7회 분리파 전시회에서 제일 먼저 공개된 <철학>은 세간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전통 학문을 과감한 성적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발가벗은 인물들이 기둥을 이루고 있고, 배경에는 몽환적인, 사색하는 듯한 길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그려져 있다.
전시회 팸플릿에는 배경인 그녀가 ‘지식’으로 설명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빈 대학의 교수들은 클림트의 작품에 강하게 반발했고, 87명의 교수들이 반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1900년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받는 등 <철학>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논란 속에서 클림트는 제10회 분리파 전시회에서 <의학>을 공개했다. 때부터 <의학>은 그리스 신화 속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를 그렸고, <의학> 맞은편에 위치하기로 되어 있어 역시 벌거벗은 여인들이 기둥을 이루는 등 비슷한 분위기를 띤다.
의학의 목적인 질병 치료보다는 삶과 죽음을 히기에이아가 든 해골과 벌거벗은 여인들로 묘사한 점이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 마지막 작품인 <법학>은 앞의 두 작품과는 약간 다른 평면적 구성을 띠고 있지만 기본적인 화법은 비슷하다.
화려한 배경 뒤에 서 있는 세 여인은 각자 진리·정의·법을 상징한다. 그림의 밑 부분에서 여인에게 고문당하는 노인은 죄인을 상징하며, 이는 법의 심판을 나타낸다.
이 세 작품은 거센 반발에 부딪혀 대학 강당에 걸지 못했다. 자기 작품들이 춘화로 비난받자 이에 클림트는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계약금을 돌려주는 대신 그림들을 회수 받고 다시는 공공 회화를 그리지 않았다.
클림트가 그린 세가지 회화
<철학>
<의학>
<법학>
세줄요약
1. 클림트 한테 대학 천장화 그려달라함
2. 항상 그렇듯 지좆대로 그림. 교수들 빡쳐서 다시 그리라함
3. 클림트: 좆까 걍 가져감
원래부터 고흐랑 투탑으로 최애화간데 위에 썰이랑 회화 보니까 뻑가노 바로 구매한다 ㅆㅂ
그래서 러셀 서양철학사 표지에 클림트 그림을 쓴거였구나...
클림트 유명하지
ㄹㅇ 클림트는 천재임...키스 보고 와 진짜 천재란 이런거구나 뼈저리게 느낌 - dc App
난 유디트 쟝 조아함..
유디트는 김영하 땜에 싫음......원랜 안 싫어했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떠오르면서 기분 찜찜해지더라...... - dc App
ㅇㅈ - dc App
이 책 시리즈 영어판만 나왔었는데 이제 한국어로도 번역되서 나오는구나. 와 좋은 거 알아간다. - dc App
클림트 ㄹㅇ 존나잘그림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