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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이란 무엇인가?: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원제: What Is Life?: Five Great Ideas in Biology)
저자: 폴 너스 (Paul Nurse)
출판: 까치, 2021 (원판: David Fickling Books, 2020)


생화학자 폴 너스의 생물학 대중과학서. 제목 그대로,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이 질문은 생물학의 핵심적인 질문의 하나이며, 생물학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대단히 흥미로운 물음이다. 소위 말하는 빅 퀘스천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세포-유전자-진화-화학-정보라는 5가지 역사적 단계/관점에 걸쳐 생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 정원에서 보았던 작은 나비에 관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어린 저자는 자신과 다른 작은 무언가가 목적과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을 보고 생명의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그 경이는 생물학 연구로 이어진다. 이러한 저자의 자서전이 약간 섞여 있다.

위의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결론은 다음과 같다.

다음의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는 살아 있으며, 생명체이다.
1.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하는 능력이 있다.
2. 물리적 개체이다.
3. 화학적, 물리적, 정보적 기계이다.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썼다는 감상이다. 노벨생리학상 수상자의 책이라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그닥 열심히 쓴 책 같지는 않다. 아마 생물학을 어느 정도 알거나, 이전에 이에 관련해서 배워 본 적이 있다면 과학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어렴풋이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 통찰은 어떤가? 이 역시 참신하다거나 깊다고 하기 어렵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학(생명이라는 현상의 탐구가 오직 생물학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적인 접근법에 머무르고 있다. 그것마저도 생태학이나 사회생물학같은 생물학의 또 다른 중요한 분야들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위에서 제시된 정의, 혹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저자가 어떻게 이끌어 냈는가를 보면, 생명에 대한 한 사람의 고찰이라기보다는 생명에 대한 한 생물학자(그것도 미시생물학자)의 고찰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에 그걸 기대했다면 괜찮은 책일 수도 있겠다.전체적으로, 너무 평이하다. 틀린 내용은 없지만, 너무 안전한 이야기만 했다는 느낌이다. 약간 지루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슈뢰딩거의 같은 제목의 책을 의식했다고 밝힌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라는 책은 과학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의 하나다. 하지만 생물학자인 저자는 그러한 중요한 책과 좋은 제목을 물리학자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에 부채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너스 자신도 슈뢰딩거와 마찬가지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그럴 책을 쓸 때에 어떤 비슷한 사회적 권위는 있다고 하겠다. 하여, 그 부채는 상환되었을까? 과연 이 책은 슈뢰딩거의 1944년의 고전을 대체하여, 향후 80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한가지 말하자면, 슈뢰딩거의 책은 생물학계의 주류를 고전적인 필드 생물학에서 연구실 생물학으로 바꿔 놓았다(혹은 최소한 그러한 당시의 새로운 흐름에 편승했다). 하지만 폴 너스의 책은 그러한 연구실 생물학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한번 가볍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쉬운 책이다.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고, 저자도 쉽게 썼다.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