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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학문이 안 그러겠냐마는 역사는 알면 알수록 쉽지 않은 학문이다. 역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은 무엇일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누락과 왜곡을 최소화시켜 현대인들에게 제시한다는 관념이 아마 이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이 가치관의 올바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정의는 너무나도 모호해 구체화하고 실제 사례에 적용시키는 일은 지극히 힘들다.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은 제목 그대로 저 방향성을 지켜나가야 할 역사가들을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고충들을 줄지어 나열한 책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학문인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상당히 긴밀하게 작용하는 학문 중 하나다. 과거 사건을 최대한 올바르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생활상을 아우르는 배경 상식은 물론, 현재 시점의 생활상과 가치관 또한 막힘없이 이해하는 폭넓은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당연 과거의 사람이 아닌 우리는 현재의 가치관으로만 과거를 평가할 수 없으며, 대상의 기원은 현재의 현상을 올바르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과거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과거 시대의 전반적인 것에 통달해야 하고, 오늘날 선보이기 위해서현재 시대에 통달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배경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한 문헌이 오늘날까지 전달된 경로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족적을 놓치지 않고 충실히 좇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오늘날 전해지는 사료들은 대부분 출처와 경로가 항상 명확히 드러난 문헌보다 오랜 기간 동안 수면 아래 잠긴 적이 있는 문헌이 훨씬 많다.

 

 

 사실 명확한 출처를 알 수 없더라도 오늘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준 문헌들은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에 오늘날까지 무사히 보존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존재이긴 하다. 현재 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과거 문헌과 유물의 양이 그 당시의 생활상을 낱낱이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시대가 넘쳐나는 까닭이다. 특정 시대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사료지만 여러 사정으로 세간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존재하고, 아예 전쟁이나 관리 소홀 등의 이유로 세상에서 소실된 경우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이러한 사료의 소실과 비공개는 오늘날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쉽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이다. 이쯤 되면 사료의 작성자와 배경이 오늘날까지 명확하고 완벽하게 전해지는 케이스가 이따금씩 튀어나와준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특정 시대에 해당하는 사료가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료의 진실성과 중립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더라도 사람마다의 관점과 처한 상황이 상이해 서로 정반대의 결론을 확신하는 문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고, 문헌의 작성자는 A라고 생각하는 사안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나 명예를 고려하거나,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B라는 결론을 써내려간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만약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었다면 기존에 연구된 자료들과 비교해 얼마나 믿을만한사료인지를 견주는 과정이 무조건 필요하다. 이따금씩은, 기존에 옳다고 여겨지던 가정과 학설이 기존에 정립된 논지를 산산조각 내는 증거의 발견 때문에 정반대로 뒤집히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상관없이 엄밀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기존의 사료와 새로 출토된 사료를 견주어야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도 역사가 지속적으로 빚어낼 모호함을 뒤늦게나마 억제하기 위해, 작가인 마르크 블로크는 일상적인 언어와 역사학자들이 쓰는 언어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대의 특정 단어와 현대의 특정 단어가 같은 뿌리와 비슷한 악센트, 표기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쓰임은 상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단어의 쓰임새는 변했지만 발음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정착했기 때문이다. 언어 역시 여타 생물들처럼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 존재다. 기술 발전 등의 이유로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만큼의 사어가 생겨나지만, 이 사어들 모두가 사양길에 들어서지는 않는다. 다른 뜻으로나마 명맥을 유지해 사어로써의 운명을 빗겨간 단어가 늘 있기 마련이고, 이것들은 본의 아니게 역사라는 학문의 진입장벽을 올리는 것에 일조했다. 화학의 경우 화학자들 사이의 약속을 통한 화학기호가 일상 언어와 구분되어 혼동되거나 공연한 난해함의 장벽을 쌓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블로크는 역사도 화학처럼 역사가들 사이에서 약속된 언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위한 변명』은 블로크의 100%가 담기지 못한 책이다. 그가 집필과 독일에 맞선 레지스탕스 활동을 병행하다가 나치에게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블로크가 생전 계획했던역사를 위한 변명』의 목차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제목 그대로 역사를 위한 변명을 더 무수한 관점에서 이어나가려고 했음이 짐작되지만, 전쟁이라는 외적인 요소에 의해 그의 복안은 절반 정도만 현실화되는데 그쳤다. 나는 과거 다른 독후감에서 역사라는 학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학문을 대할 때보다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피력한 적이 있다. 블로크의 주장은 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뒷받침해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사 문외한인 내가 역사학자들의 고충을 너무나도 가볍고 당연하게 여겼다는 블로크의 꾸짖음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내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재고의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가 집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면 어느 정도의 설득력과 흡입력이 이 책에 깃들 수 있었을지 궁금하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