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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2004). [기획특집] 여순사건과 이승만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 공세. 역사연

구(14)

여순사건은 이승만 정부의 첫 정치적 위기였다. 따라서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진압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봉기군에 대한 잔혹한 진압작전이 행해졌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이를 전 국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정권의 정통성 확보가 중요했던 이승만 정부는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많은 언론이 봉기군의 잔혹성에 초점을 맞추어 여순사건을 보도했다. 해당 신문들의 보도에서는 진압의 잔혹성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고, 따라서 대중들은 악마로 표현된 빨갱이의 모습만을 봤다. 


한국전쟁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수, 순천 지역에 파견을 간 기자들은 정부의 반공담론에 맞춰 개인적 성향까지 버리고 철저히 빨갱이들의 잔혹성을 연일 보도했다. 


이는 사진의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은 당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매체였지만,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사진기자들은 진압군으로 인해 황폐화된 도시보다는, 봉기군에 의해 살해된 사람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버렸다.


이는 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철저히 정부의 반공담론에만 맞춰 상황을 묘사해 대중들에게 보여줬고, 그 과정에서 진압군에 의한 피해자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 결과, 이승만 정부는 반공 의제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권력에 굴복하여 직업윤리를 잊은 지식인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은 절대선의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여순사건 당시 기자, 문인, 종교인들은 그들의 사명을 무시하고, 권력에 빌붙었고, 스 결과 정권의 정당성은 강화되었지만, 진실은 묻히고 말았다. 


이를 교훈삼아 지식인들은 곡학아세 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