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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를 읽었다. 첫 문장이 참 인상깊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도 눈여겨볼만 했다.

주인공은 박제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박제와 같이 <날개>의 주인공은 살아있으나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세수도 안 하고, 밥도 안 차려먹고, 빨래도 안 하고, 이불도 안 개는데 심지어 돈도 안 벌어온다. 초반부를 읽다 보면 페미니즘 펀치가 마려워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은  주인공이 '그 분'들이 말하는 핸냄들처럼 놀고먹기만 하는 가부장적인 인물인 것도 아니다. 주인공 이새끼는 소심한건지 사회성이 없어진 히키라서 그런 건지 아내를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의 출처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 밤마다 아내에게 오는 남자 손님들의 정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방에서 쥐 죽은듯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주인공은 자기가 모은 돈을 아내에게 먼저 건네지도 못해서 저금통을 변소에 던져놓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주인공은 아내가 자신에게 몰래 수면제를 먹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주인공은 혹시나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자초지종을 강하게 묻지도 못한다. 하루동안 가출했던 주인공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기 집에서 아내가 몸을 파는 걸 보게 된다. 아내는 챙녀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그냥 기둥서방이었던 것...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아내한테 뚜드려 맞는 주인공은 반격하거나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백화점 옥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날개가 다시 돋기를, 다시 날 수 있기를 부르짖는다. 물론 히키새끼답게 속으로 부르짖지만.

상당히 모호한 소설이다. 결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는데 좀 오래 걸렸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아내한테 빌붙어 살던 자신으로부터 바뀌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주인공이 아내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미 아내에게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위험한 수면제를 먹여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부터 생각하는 주인공, 챙녀인 게 들키자마자 자신을 뚜까 패는 아내의 주먹을 잘못이 없는데도 맞아주는 주인공, 솔직히 이혼할 만한 일들이 겹쳤는데도 방황하다가 결국 아내와 함께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집으로 향하는 것 같은 주인공. 백화점 옥상에 올라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지만 결국 그 거리로 되돌아가는 주인공.

주인공은 날개가 돋기를 부르짖지만 소리 내어 부르짖지도 못했다.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그 사내의 부르짖음이 변화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인공은 앞으로도 그냥 아내한테 맞춰 가면서, 그의 말마따나 절뚝거리면서 남은 여생을 살지 않을까? 주인공의 부르짖음은 변화의 작은 불씨가 아니라 그냥 덩그러니 놓인 부싯돌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부싯돌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걸 쓰지 않으면 불은 붙지 않는다.

한줄평: 오늘부터 나는 챙녀네 밥벌레!

사실 <날개> 말고 <종생기>도 읽긴 했는데 이해를 거의 못했음. 서술도 어렵고 난해한 데다가 생소한 한자어는 진짜 개많이 나오고 문장도 어렵더라. 진짜 <종생기>가 주석 없이 읽어서 그런가 체감상 율리시스보다 어려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