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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 , 2012, 반공주의 감성 기획, ‘반공영화’의 딜레마 * - 1950~60년대 ‘반공영화’ 논쟁을 중심으로 -, 동방학지 , 159

반공영화는 1950년대~60년대에 반공주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시키는 수단이었다. 학교에서 한국전쟁 이후 반공교육을 강화했지만, 비교적 딱딱한 수업의 내용에 학생들은 지루해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반공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반공주으를 고취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를 위해 검열 제도를 통한 일종의 관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효과는 확실히 있었지만, 반공영화를 제작하고 검열하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발생하였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반공영화의 성격이었다. 감독은 반공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했지만 상업성과 인물들 간의 휴머니즘 묘사 또한 영화감독으로서 놓칠 수 없는 요소였고, 따라서 정부 기관과 갈등도 많았고, 실제로 국보법 위반으로 감독이 구석되는 사례도 있었다. 


당시는 표현의 자유가 반공이라는 이념 하에 억압되던 시기였음에도 문화예술인들은 어떻게든 반공연화의 테두리 내에서 상업영화적 요소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갈등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남한 사회는 정부만이 이데올로기를 독점하다시피 했고, 따라서 사소한 이유만으로 반역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배경 하에서도 영화예술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종의 영화 특징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즉, 문화는 국가가 임의로 통제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국가권력이 문화를 선전 도구로 이용한다 하더라도 매체 안의 문화적 요소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을 필자는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