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대개 지루하다. 하루는 매일 반복적인 일들로 채워져 있으며,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일 혹은 나쁜일은 365일 내내 벌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쁜일은 거의 예측가능하다.예를들어 공부를 안하고 본 시험성적, 입영, 남친이나 여친이랑 헤어지는 것. 알콜중독 끝에 암에 걸리는 것들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불행에 절망하지만, 대개는 이런 불행이 언젠가는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불행은 학기말 날아오는 성적표일 뿐이다. 성적표는 언젠가는 날아오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요컨대, 삶은 지루하며 뻔하다. 


카버는 삶의 한 순간을 포착했고, <대성당>에 압착해 넣었다. 그러나 뻔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사실 일상의 뻔함과 지루함을 읽을만한 스토리로 변신시키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고 미덕이다. 나는 그저 까먹었을 뿐이었다. 카버가 그걸 다시 가르쳐줬다. 그는 ’어떻게 하면 공부잘함?’ 방법론을 묻는 고등학생을   ‘열심히 하면된다’ 라는 씨알도 안먹힐만한 얘기를 정체모를 무엇인가를 가지고 설득시키고 마는 수능만점자 같다.


<대성당>의 마지막 단편인 <대성당>의 주인공은 와이프가 자신과 오랬동안 일했었던 맹인 노인(로버트)을 초대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와이프는 로버트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10년동안 같이 일했었고 그만큼 교감이 통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로버트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와이프가 사전에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와이프와 로버트가 어느정도 잘맞았다는 얘기가 불쾌했기 때문이다.


1인칭 주인공시점은 주인공의 로버트에 대한 띠꺼움을 세배쯤 증폭시켜준다. 조금씩 계속 비아냥거린다. 로버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비아냥거림을 잘 받아낸다. 둘은 와이프가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사이 TV를 본다.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는 세계 각지의 대성당을 다뤘다. 잊을까봐 하는 말이지만 로버트는 맹인이다.주인공은 로버트에게 TV에서 나오는 영상에 대해 설명한다.

로버트는 말한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짓는다는 것은 알겠어.” 그가 말했다.”물론 저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거야. 한 집안이 대대로 대성당 하나에 매달린다는 것도 알겠어. 이것도 방금 저사람에게 들은 거고. 대성당을 짓는 데 한편생을 바친 사람들이 그 작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 다더군. 그런 식이라면 이보게,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p.305~306)


그리곤 로버트는 주인공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대성당을 그려달라는 거다. 주인공은 두꺼운 종이에 대성당을 그린다. 로버트는 주인공의 손을 잡고선 선의 자취를 따라간다. 그러고선, 로버트는 주인공에게 눈을 감고 그리라고 한다. 눈을 감고 성당을 그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성당 하나를 끝냈다. 로버트는 주인공에게 이제 눈을 뜨라고 얘기했지만, 뜨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p.311)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오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곤, 저 멀리서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조금씩 밀려 들어온다. 로버트의 말이 떠오른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P.309)


<대성당>은 생각지도 못한, 희한한 소설이다. 강력 추천한다.  그리고, 5번째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강력 추천한다. 급작스럽게 밀려들어오는 그 무엇인가에 머리와 가슴이 주체 못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