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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많은 사람들이 미시마의 최고작으로 뽑는지 알거같고 동의함. 가면의 고백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방대하며 그렇기에 난해했음.
미조구치의 내면과 외면은 실제 방화범인 쇼켄보다 미시마와 닮아있음. 닮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빼다박은듯 똑같다는게 정확하겠네. 금각사를 가면의 고백에서 이어진 고백소설로 보는게 적합할듯.
다만 가면의 고백에서는 미시마의 주관적인 ‘미’에 도달하려는데에서 암시됐던 불가능성이 금각사에선 암시에 그치지않고 이에 쐐기를 박음. 미시마는 금각의 구경정에서 거부당하듯 삶으로 내쫓겨졌음. 그의 치부이자 부정하고 싶지만 동시에 경외하던 여성적인 ‘미’에 대한 동경을 거부하고 남성적인 ‘삶’으로 쫓김.
미조구치의 금각사 방화는 유약한 미시마가 운동을 배워 동경하던 남성적인, 소위 헬창 몸매를 가지게 되는거와 대동소이함. 미의 전복과 삶의 부상. 미시마는 가면의 고백에서 드러나듯 자신이 언젠가 이지와 미를 배신하고 육체를 찬미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 그 덧없음 마저도. 그럼에도 거부하지 못함. 미시마에게 삶은 뱃속의 굶주림처럼 불가항력임.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탐미적인 문체도 눈 돌아갈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속에 품고있는 미시마의 심리와 미에 대한 관점. 그에 대항하는 여러 관념들에도 못지않게 매혹됐음. 일문학과 탐미주의, 퇴폐미의 정점을 설국이라 생각했는데 금각사는 설국의 그것보다 훨씬 깊은듯 여겨졌음. 보다 명상적인 서술 방식과 나에게 와닿는 미조구치의 내면 때문에 그런걸수도 있겠지만.
미시마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