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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이다. 냉전이라는 것이 실제 전쟁처럼 선전포고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다보니 그 설정이 뚜렷할 리가 없고, 사관에 따라 그 시발점으로 콕 집는 사건이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이라고 할 만큼 살벌한 상황이 닥치기 이전부터, 서로에게 어느 정도 유화적이었던 두 세력이 서로를 견디지 못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1945>는 이 지점을 넓은 기간으로 잡아, 2월 얄타 회담부터 2차 세계대전의 종전까지를 서술하며 그 동안 각국의 정상들과 국민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교류 속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천천히 읊어나간다.



얄타 회담 시기에 세계의 세 최강국, 미국, 영국, 그리고 소련의 정상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루즈벨트는 스탈린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처칠은 루즈벨트가 영국과의 오래된 관계보다 소련이라는 새 친구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것에 불만을 가졌으며, 스탈린 역시 루즈벨트와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회담 속에서 스탈린은 루즈벨트가 근본적으로 처칠과 훨씬 가까운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고, 루즈벨트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그리고 회담 결과는 각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애매모호하고 허술한 문장들 밖에 남지 않았다.



폴란드에서 자유선거를 통한 정권을 수립한다는 합의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이 세력들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다. 스탈린은 그 문구를 어디까지나 허울 뿐인 명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는 처칠이 기존 식민지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가하며 자신의 제국을 견고히 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자기들과 가까운 폴란드에서 자기들의 방식을 쓰는 것에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 세력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자의적 해석에 불과했다. 자유선거라는 것이 대체 언제부터 이런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영향력 확장의 장이었단 말인가? 폴란드 국민들 대다수가 절대 지지하지 않는 공산 정권이 명분과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권을 대체하는 것이 정말 자유선거의 결과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뭔가 소련이 자신들이 생각한 함께 할 만한 전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면서도, 미국과 영국은 소련을 밀쳐낼 수 없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민이 죽는 대신 소련의 군인들이 전선을 빼곡히 채워 독일과 일본을 계속 압박하기를 바랬고, 영국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이 전쟁의 규모만큼의 체급을 보여줄 수 없었으니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국이 소련을 밀쳐내려고 하면, 소련은 영국의 제국주의적인 위선이 유지되고 있는 사례를 슬쩍 지적했고, 그럼 미국은 영국의 편을 들어줄 수만은 없었다. 확실히, 루즈벨트가 원했던 수준의 이상주의적 정치는 처칠과도 조금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스탈린만큼 멀었을까?



루즈벨트는 서서히 그 거리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가 원하던 국제 연합이라는 큰 그림은 도저히 현재의 스탈린 식의 정치와는 함께 할 수 없는 반쪼가리 습작에 가까워 보였다. 처칠은 얄타 회담 결과의 이행에 대해 사람들이 표하는 불만을 들으며 문서를 작성하다가, 문득 자신이 하던 생각과 얄타 회담에 대한 변명이 체임벌린이 나치 독일과 뮌헨 협정에 대해 하던 말들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독일의 항복 이후 서로에 대한 불쾌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영미는 소련이 독일로부터의 배상금을 원하면서 독일이 재산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란 수단은 전부 수탈하고 독일 밖에서 사는 독일인들을 억지로 쫓아내 독일로 몰아넣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결국 이 배상금은 전부 미국에서 올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반면, 소련은 자신들의 처참한 경제와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바로 지금 어떻게 해서든 돈을 옭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했다.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독일인들은 자기들보다는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생활 수준의 차이는 이후 베를린에서 다양한 국적의 군인들이 서로 섞이며 점차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게 되는 원인으로 나아갔다. 소련 군인들은 독일에 대해 원한을 품고 공산주의자들에게 오히려 일말의 호감까지 품고 있는 군인들조차 소련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소련 군인들 역시 자신들의 땅이 독일인들에게 얼마나 심하게 파괴당했는지를 생각하며 저들이 어째서 동맹국인 자신들보다 독일인들을 더 배려하고 있는지,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불신감이 커지는 와중에, 영국과 미국의 정상이 교체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소련에게 유화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소련이 발언권을 내지 못하게끔, 이전과는 다르게 일본과의 싸움에서 소련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소련은 물론 이제 와서 발을 뺄 생각이 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급진적으로 일본 점령 지역들을 공격해 뚫고 들어갔다.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고자 미국은 핵폭탄을 날리고 있었다. 이 둘의 경쟁은 이미 독일 점령 시의 '동맹국들 사이의 겨루기' 같은 가벼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력질주에 가까웠다. 이미 이들은 서로를 경쟁 상대 이상의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45>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전체적인 흐름과 유명인들에 대한 클로즈업으로 극적으로 서술해 나간다.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들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면서도, 결국 공감할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전체적인 윤곽에서 어째서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게 되었는가를 어느 정도 중립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이 '냉전 3부작'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좋은 시작인 것 같다. (사실, 발간 순서로 따지자면 오히려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1945>야말로 마지막에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근시일 내에 쿠바 미사일 위기를 서술한 <1962>를 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