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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늘은 책을 늦게 읽기 시작해서 읽기는 다 읽었는데
읽은 부분 생각 정리가 덜 된채로 잠에 듭니다.
내일 아침에 기상해서 마저 정리해야겠어요.
저자는 걱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종교를 추천합니다.
사실 저도 뼛속까지 무언갈 잘 믿지 않는 무신론자임에도
종교인들처럼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신도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종교인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는 말로 퉁쳐버리고
어떤 고난과 역경도 경건히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러웠거든요.
그래서 전 철학이랑 심리학에서 과학신도들을 위한 삶의 "종교"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문 분야든 절대적인 정답이 없으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형태였죠.
제가 땅에 태어난 이래로 성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이성적 학문"은 없었습니다.
얼마전 성경 회독을 위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를 읽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과거 성서 연구의 중심 주제는 "얼마나 정확한가"를 따지는 역사성 위주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걸 따지는 게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가치는 역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비평가들은 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도 삶의 지혜와 목적을 얻어갑니다.
과학이 종교를 밀어낸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결핍된 삶의 목적.
대부분 가족이나 자식, 성공, 돈과 같은 불확실한 존재들에 기댑니다.
짧은 인생을 지냈지만, 종교의 대체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들어 "자기합리화에 빠져도 좋으니 그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주했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믿어야 할지 확신은 서지 않지만,
예수가 말한 2가지를 믿기 위해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1.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2. 이웃과 자신 역시 그만큼 사랑하는 것
마지막으로 제 마음에 확신을 준 이 책의 저자 데일 카네기의 말을 인용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경에 부딪히고 고통받고 나서야 신에게 절박하게 매달린다.
"죽음 앞에서 신을 찾지 않는 자는 없다." 하지만 왜 절박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가?
왜 매일매일 새로운 힘을 얻으려 하지 않는가?
왜 일요일까지 기다리는가?
나는 수년간 주중 오후에 텅 빈 교회에 들르곤 했다.
...
나는 개신교도지만 주중 오후마다 5번가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에 빈번하게 드나들며,
30년 후면 내가 죽겠지만 세상 모든 교회가 가르치는 위대한 영적인 진리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277p
좋은 글 저도 예전에 종교를 가져볼까 많은 고민을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