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집에 가깝다. 서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책 페이지수도 작고 한 페이지당 글이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2시간이면 다 읽는다. 뭐 분량이 대수겠나. 그리고 한강의 소설들은 길지 않았다. 여운이 길었을 뿐.
한강이란 작가를 좋아하기 힘들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난 레이먼드 카버나, 챈들러 문장의 건조함과 무뚝뚝함을 좋아한다. 한강의 문장들은 그렇지 않다. 자꾸 자기안으로 들어가 언어를 찾아낸다. 그 언어들이 건조할리가 있겠는가. 한강의 문장들은 서늘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좋아하기 힘들다. 한강을 지나치고 싶다. 그러나 그럴수 없다. 무심코 아니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려 지나치더라도 그 자리에 한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와 한강을 읽고야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와 한강을 읽을 일은 없을 듯하다. <흰>의 109페이지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 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강의 안으로 들어가는 그 문장들과는 전혀 딴판인 글이다. 이건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이성의 언어다. 서늘하고, 위로하는 문장들로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이다. 그 감정의 언어들로 누군가가 잘못됐다고 단정짓는 건 온당치 않다. 잘못됐다면 왜 잘못됐는가를 분명히 이야기 해야한다. 감정을 벗어던지고 분명하게 얘기해야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강은 그렇지 않은듯 하다. 그리고 이 글에서 누군가를 탓하는 분노가 느껴진다. 그녀의 얼굴과 이 글을 동시에 떠올리자 불현듯 무서워졌다. 그녀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르니 또 무서워진다.
해당 책을 읽고 싶게도 읽어보고 싶지 않게도 만드는 글이네요
저부분만 빼고는 좋아요 ㅋ
리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