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도덕경 독후감
도덕경을 읽게 된 배경은 이전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던 경전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중간중간 읽어 보라고 언급 하신 책이기도 해서 읽고 부족하지만 이렇게 독후감을 쓰게 됩니다.
부족한 점 많지만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도덕경 그리고 도덕경이 나오게 된 배경은
봉건 제후들이 군웅할거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럽던 춘추말기의 상황이 도덕경에 보이는 초탈한 정치절학 또는 처세철학을 낳았다는 것. 춘추시대 242년 동안 망한 나라가 52국 왕을 죽인 자가 36이라고 합니다.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 세상이 도살장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귀족과 지식은이 몰락했으며, 그들 중에는 세상을 고쳐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사회를 비판하는 무리로 전락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자연 속에 은둔하여 모든 것이 無에서 나와 無로 돌아간다는 내면의 깨달음을 키워나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덕경은 이런 시대 정신의 산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집멸도 중 고
도덕경 18장, 38장의 내용이 이를 뒷받침 하는 것 같습니다.
18장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子.國家昏亂, 有忠臣
인간이 자연스러운 道에서 떠나면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상대적인 규범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간이 지혜를 짜내기 시작하면 위선과 가식이 생겨난다.
가족사이에 화목이 깨지면 효도다 사랑이다 하는 인위적인 규범이 생기기 시작한다.
충신이란 것도 나라가 어지럽게 되니 있게 된 것이다.
38장
上德不德,是以有德.下德不失德,是以無德.上德無德,而無以爲,下德爲之,而有以爲.
上仁爲之, 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 而莫之應,則攘臂而扔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
夫禮者,忠信之薄,而亂之首. 前識者,道之華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不居其薄; 處其實,不居其華。故去彼取此.
자연스럽게 道를 따르는 사람은 고귀한 품성을 지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고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실로 고귀하다. 道에 따라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고귀한 품성을 지니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로 고귀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道를 따르는 사람[上德]은 아무것도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를 써서 道에 따라 살아보려는 사람[下德]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최고로 어진 사람[上仁]은 어진 행동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억지로 애쓰지는 않는다. 아주 올바른 사람[上義]은 올바르게 산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의식적으로 애쓴다. 예절이 아주 바른 사람[上禮]은 사회적인 윤리 규범을 잘 지킨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처럼 살 것을 강요한다.
道에서 떠나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귀한 품성[德]을 강조한다. 고귀한 품성이 메마르면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랑[仁]에 호소한다. 인간적인 사랑이 메마르면 사람들은 올바른 양심[義]에 호소한다. 올바른 양심마저 사라지면 사회적인 윤리 규범[禮]이 강조된다.
사회적인 윤리 규범은 공정함과 신실함이 사라졌을 때 강조된다. 그러므로 윤리 규범이 강조되면 이미 사회적인 혼란이 심각한 지경에 달했다는 증거다. 무엇을 좀 앞질러서 아는 것도 겉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일지 모르나,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는 겉치레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겉치레 행위에서 모든 어리석음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道를 체득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본성인 궁극적인 실재에 마음을 둔다. 아무리 화려해도 껍데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알맹이에만 관심을 둔다. 道를 체득해 환해진 사람은 이렇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를 안다.
이 방대한 글을 보면서 다시 느낀건 몇천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습을 노자님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럽다 보니, 우리가 만들어내고 실체시 한 것이 지나쳐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실체시한것에 메달리게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부터의 글은 제가 보면서 크게 감명 받은 구절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5장.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어떤 것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道를 체득한 사람도 그렇다. 모든 사람을 담담하게 대한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 같다. 속이 비어있으면서도 생성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많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생명력이 빨리 소진한다. 그러니, 비어있는 근원에 머물로 고요히 침묵하도록 하라.
개인적 의견 그리고 연기적 관점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참 와 닿았던 것이 방편으로써 사용한 방법에 매달려 본질을 파악 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 한 것 같습니다.
노자님의 해학적이고 센스 있는 여러 명구가 있으나 너무 많아 마지막 한 장만 하고 이만 마칠까 합니다.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清,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候王得一以然天下貞. 其致之. 天無以清, 將恐裂; 地無以寧,將恐發; 神無以靈,將恐歇; 谷無以盈,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候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其.
是以候王自謂, 孤, 寡, 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故致數輿無輿.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예부터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진정한 자기 자신의 된 것들이 있었다 하늘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맑게 되었다. 땅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안정되었다.
하늘 기운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신령한 힘을 갖게 되었다. 골짜기는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뭇 생명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뭇 만물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활기 넘치는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道를 체득한 제후와 임금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게 되었다.
이모두가 자신의 본성에 머물음으로써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된 것들이다.
본성을 거스르는 자의 운명은 멸망이다. 하늘이 만약 맑지 못하면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땅이 만약 튼튼하지 못하면 무너져 뒤집힐 것이다. 하늘기운이 만약 신령하지 못하면 힘을 잃고 흩어져 버릴 것이다. 골짜기가 만약 활기 넘치는 생명력을 잃는다면 시들어 죽어 버릴 것이다.
제후와 임금이 만약 고결함을 잃는다면 넘어져 몰락하게 될 것이다.
높은 것이 낮은 것을 토대로 서 있듯이, 위대한 것은 평범한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옛날 임금은 자신을 칭할 때
‘고’(孤, 외로운 존재)
‘과’(寡, 가치 없는 존재)
‘불곡’(不穀, 궁핍한 존재)이라고 불렀다.
이것이야말로 근본이 특별하지 않다는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진정한 명예를 얻으려고 애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히려 치욕을 당한다.
그러니 보석처럼 귀하게 대접받길 바라지 말고, 굴러다니는 돌처럼 여겨지기를 원해라.
우리의 참 본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 해보며 본성을 거르는자를 경계하며 우리가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지적 하는 명구라고 생각하여 마지막에 올립니다.
일전에는 깨달음이 크고 아름답고 무언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공부하였지만 이제는 ‘존재의 실상을 명확히 파악하자’ 건강한 삶을 그리고 더 나아가 힘들어도 힘든 이세상을 버티기 위해 라고 인식이 바뀌었으며 도덕경을 통해 그 신념이 확고 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궁금 하였던 의문도 도덕경을 통해 명확하게 풀어 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편안한 주말 오후 보내십시오.
심오하고 좋다 ㅊㅊ - •˚
ㄴ 심오하다 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글 개추~~^^
와우 이런 건 개추야..
도덕경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점점 혼탁해져가고 있다고 느껴서인지 본문에 적힌 글귀들 모두 마음에 깊이 와닿네요. 정성스럽게 남겨주신 글 덕분에 잘 읽고 잘 음미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