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보다 많이 못 읽은 것 같아서 그닥 유쾌하진 않지만 직장에 치이고 결혼 준비에 신경쓰느라 그랬다고 소소하게 변명해본다.
1. 김동인 저, 문학과지성사《감자》
강점기 말 변절한 대표적인 문인 중 하나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흑화하기 전에는 조선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 관심을 보이는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는 걸 알게 되어 다소 놀랐어.
2. 이준명 저, 푸른역사, 《멕시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
고대부터 현대 멕시코 혁명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을 톺아보는 노작이야. 유인선 선생님의 베트남사 통사책 이후 국내 작가가 제3세계 국가 역사를 이렇게 밀도있게 기술한 책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3. 하야시 후미코, 창비, 《방랑기》
다이쇼 시대 하층민 여성의 빈궁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지만 동어반복 같은 상황이 이어지니 후반부에 가면 질리더라.
4. 구범진 저, 민음사,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만몽한(滿蒙漢) 혼합제국인 동시에 명실상부한 세계제국이기도 한 청제국의 다양한 정체성을 최대한 일반인 눈높이에서 설명하고 있는 책. 그리 두꺼운 볼륨은 아닌데 작가가 이 간단치 않은 문제를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심했다는게 느껴짐.
소싯적에 저자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그땐 지루했던 기억이 나네. 수업 테마가 명청제국과 조선이 교환한 공문을 분석하는 거였거든.
5. 둥핑 저, 글항아리, 《칼과 책》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치양지, 심즉리, 존천리거인욕 등 몇 가지 키워드로만 설명되던 왕수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야. 무장, 관료, 사상가 등 다면적인 정체성을 가졌고 어떤 분야에서건 일가를 이뤘던 그의 삶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단점을 꼽자면 너무 찬사 일변도라 막판 가니 김이 좀 빠지더라.
6. 미하일 불가코프 저, 을유, 《젊은 의사의 수기, 모르핀》
동토가 낳은 또 한 명의 의사 작가, 불가코프의 단편집이야.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기 전에 워밍업 삼아 읽으면 좋을 듯.
7. 피터 프랭코판 저, 책과함께, 《동방의 부름》
1차 십자군 전쟁 발발과 전개 과정에서 비잔틴이 기존 서구 역사학자들의 통념마냥 호구나 바지사장이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책. 시오노 할매의 《십자군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균형잡힌 독서가 가능할 거야.
8. 채만식 저, 문학과지성사, 《태평천하》
"나만 빼고 다 망해라"가 부정적인 반동인물의 천박한 인생철학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범람하고 있는 현 시점, 아니, 인류가 인위적으로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을 발명해내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라도 그 시의성을 잃지 않을 작품.
9. 데이비드 O. 모건, 모노그라프, 《몽골족의 역사》
몽골 울루스에 대한 기존 서구 학자들의 연구를 엿볼 수 있는 책. 훌레구가 건국했고 이집트 맘룩 왕조의 바이바르스에게 패했다고만 알고 있는 일 칸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어. 라시드 앗 딘의 집사도 언젠가 읽어보려고.
10. 찰스 핼퍼린 저, 글항아리,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와 킵차크 한국(주치 울루스 또는 바투 울루스)의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관계를 다룬 책이야. 킵차크 칸국의 관료제와 통치기술, 역참이 러시아 공국들에게 좋든 싫든 많은 영향을 끼쳤고, 훗날 러시아를 통일하는 모스크바 공국이 비잔틴의 후예뿐만이 아니라 킵차크 칸국의 후예로도 자처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됐어. 단순히 몽골의 지배가 남긴 유산이 '타타르의 멍에'로 불리며 치욕스러운 흑역사로 기억되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소리지.
11. 스콧 피츠제럴드 저, 문학동네, 《밤은 부드러워》
인물들 심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 여전히 주인공이 안쓰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12. 이연식 저, 역사비평사, 《조선을 떠나며》
한일관계사에서 좀처럼 주목하기 힘든 재조선 일본인들의 태평양 전쟁 후 일본 귀환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다룬 책이야. 딱딱해 보이는 테마지만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기록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재미있게 썼기 때문에 술술 읽혀. 300p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건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전후 일본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평화이데올로기의 공허함'을 논하는 부분이 백미야.
오... 다음 달에 거장과 마르가리타 보려 했는데 그전에 단편집부터 봐야겠다
사관학교 막 졸업하고 전방 소대에 배치된 쏘가리 처지가 어떤 건지 추체험할 수 있음.
헐 직장에 치이고 결혼준비하는데 정신없어 짬내서 읽는 게 이정도냐
달에 20권씩 읽는 찐 독붕이들에 비하면 읽은 것도 아니쥬
다시 보니 1분기 였구나 ㅎㅎ 그래도 대단
역사랑 문학 좋아하는게 취향이 나랑 비슷하신 듯
평생 붙들고 갈 테마임. 혹시 일본 남북조 시대 다룬 책 추천해주실 수 있음? 일본어 책도 괜찮음.
벌써 1분기 결산할때가 왔네여 ㅠㅠ 바쁜거치곤 잘읽으셨네용 추천드립니다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