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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명, 「申崇謙의 谷城 城隍神 推仰과 德陽祠 配享」, 『한국사연구』, 126 2004
이 논문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곡성 지역에서 성황신으로 추앙되고, 이어서 덕양사에 배향되는 과정을 분석한 글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숭겸은 곡성 출신이었으나 춘천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따르면 신숭겸은 춘천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저자는 중앙의 관찬 사서보다는 지방의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더욱 신빙성 있는 자료라 판단하고 그를 곡성 출신으로 본다.
저자에 따르면 신숭겸이 곡성 지역의 성황신, 조선 시기에는 덕양사에 배향된 것은 지방 세력의 입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려시기에 곡성은 신라시기에 비해 지역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시간이 흘러 곡성에 감무가 파견되기는 했지만, 이는 지방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향촌지배력이 낮아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따라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을 추앙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고, 향촌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중앙에서 토속 신앙보다는 유교 의례를 장려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곡성에도 미쳐 덕양사에 배향하는 의식이 생긴 것으로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즉, 유교 의례를 통해 민간 신앙을 약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에릭 홉스붐의 『만들어진 전통』이 떠올랐다. 물론 필자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성황신 추앙이라는 전통을 향촌 유력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홉스붐의 저서가 생각났다.
신앙이나 종교는 현실 정치와 세력 다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신앙이나 종교를 도구로 구성원을 결집시키고 지배자의 영향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이들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회, 더 나아가 역사의 모든 분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앙을 연구할 때에도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을 고려해야 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덕양사 배향이 이루어진 것도 지배 이념이었던 성리학을 지방까지 전파시키고 그 외의 신앙을 약화시킴으로써 ‘사상의 일원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이는 삼국 시대에 사회 주요 이념으로 지배층이 불교를 전국에 확산시킨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전통은 필요와 정치적, 사회적 역학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통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술했듯이 전통을 통해 해당 시대의 정치상, 생활상을 알 수 있으며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사상까지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하더라도 현세 사람들은 이를 잘 보존하여 후세에 제대로 전하는 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시대의 관습 역시 후대 사람들에게는 현대 사회를 볼 수 있는 일종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전통도 민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ex : 이충무공 기일에 남도 백성들이 흰 옷을 입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본문처럼 사회 지도층이 필요에 의해 권장한 것도 있지. 양자를 어떻게 구별하고 계승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후대인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함. 좋은 글 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