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의지로 보고 배우기만 할 테니 모든 행함은 오롯이 기적에 맡기겠다 나는 내 의지론 그 무엇도 행할 수 없다는 걸 알므로
댓글 37
기적에 맡기겠다니 너무 수동적인 어휘 아닌가 싶은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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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드는 기적심은 내가 만드는 것이니
지각하는 영역에 한하여 나는 가장 자발적이나, 그 표적을 행하는 것은 마치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의 말씀과 같이 의식 밖의 일이라고 성경에도 나와있음
CBD(gak2030)2021-04-0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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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 곧 행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은 이해하고 있는데, 기적에 맡기겠다면서 기적심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건 '기적심'이 어떻게 기적을 만드는지 설명되지 않으면 모순처럼 들리네.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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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내가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무지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잖아 내가 배움이 짧다보니 의견이 궁금하네 - dc App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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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적심은 바른 마음의 상태이며, 바른 마음의 상태란, 곧 기적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것을 온전히 받을 용의가 있는 상태를 암시함 그러한 기적심으로부터 기적을 만들어 내는 그 기적이란 내 안의 '신성을 알아차림' 이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나의 의지 안에서는 그 기적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임
CBD(gak2030)2021-04-0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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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미암음'은 곧 시간이 실재하지 않기로써 '나'와 내가 분리되지 않음을 뜻한다 의식은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기적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잠재된 상태에서 발현이 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기적은 시간의 개념을 폐지하여 기적을 주는 자와 '받는 나'가 완전히 동등한 관계에 기초하며 그것이 기적의 행위를 높은 자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까닭임
CBD(gak2030)2021-04-0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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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의 정의를 뭘로 놓고 있어?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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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현실적 작용이라 보고, 애초에 현실적 작용의 인과를 인간이 전부 파악할 수 없으니 기적이라 부르는 것 같고 대충 의식적 작용과 현실적 작용을 분리하는 의미에서 말한 것 같네.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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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런 기적은 나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며 통상적인 시간법칙에 지배받는 수평세계에서 기적없이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오르려면 시간법칙에 위배되는 패러다임이 있어야 하며 바로 그것을 기적이라 함
CBD(gak2030)2021-04-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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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행위는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적 작용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인데.(말 그대로 불온전한 정신을 가정했을 때) 그렇다면 행위의 의미조차도 일반적 어휘가 아니라 새로 의미를 밝혀야 하는 부분이지 않나 싶어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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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정의는 뭐야?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 작용이랑은 다른 느낌인데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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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쉽게 말해 우리의 몸으로는 그 기나긴 시간을 살아갈 수 없으므로
CBD(gak2030)2021-04-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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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르고자 하는 높은 곳이란 어떤 것이야?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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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인간적 본성에 그 본성 자체를 제외한 초월적인 것은 없다고 보아서 인간이 본성이 아니라 더 높은 무언가를 위해 산다는 게 잘 이해가 - dc App
ㅁㅇ(clairinside)2021-04-0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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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나에겐 아직 어렵지만.. 의심없는 믿음을 전제한 기적의 행위가 불온전한 마음 상태에서 전개될 순 없으나 기적은 사실상 사랑의 결핍됨(잘못)을 속죄로 채워짐을 위해 '완성의 상태를 확언'함에서 사람에게 공헌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므로 믿음을 위해 기적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기적이 수단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CBD(gak2030)2021-04-0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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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기적의 중재가 필요한가, 사람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내가 더 알기 위해 읽어볼 만한 저서가 있을까?
ㅁㅇ(clairinside)2021-04-0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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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이 곧 가장 낮은 곳이고 나아갈수록 되돌아감만 있을 뿐
CBD(gak2030)2021-04-0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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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적수업 저서에 나와있는 말들을 선별해서 한 거라 '기적수업' 이 책이 이해하는 데 보다 더 도움될 거야
CBD(gak2030)2021-04-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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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것이 가장 낮아지는 변화의 이치가 있을 뿐 나아감과 되돌아감의 구별을 없애버리면 망망해지는 것 아닌가,
ㅁㅇ(clairinside)2021-04-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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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얼까
CBD(gak2030)2021-04-0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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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책이네.. 하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 내가 아직 도량이 좁은 탓이겠지. 고맙다
ㅁㅇ(clairinside)2021-04-0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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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아직 자신 있게 내 생각이다 랄 만한 것은 없고, 굳이 꺼내자면 욕망 추구일까 이것조차도 번역된 단어라 의미가 희미하게 다가가고 내가 다시 정의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겠지만, 어쨋든 이런 본성을 대하는 태도는 인위를 본성보다 앞세우지 말 것.
ㅁㅇ(clairinside)2021-04-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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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이라기보다는 본질.
ㅁㅇ(clairinside)2021-04-0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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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차이지 우리의 짧은 인생을 선형적 측면에서 보면 비극, 희극이 다 들어있고 비선형적으로 보면 그저 대순환이듯 가까이서 보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국엔 원점으로 되돌아감이지 사계절과 음양오행의 수렴과 발산의 원리처럼
CBD(gak2030)2021-04-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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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을 생각할 때에 극에 달하여 치솟은 것이 허물어지고 극에 달하여 허물어진 것이 다시 치솟는 것은 이치이지만 , 하나의 대순환은 결국 괴력난신과 같이 인간에게는 그저 깊은 허무인 것이 아닐까.
ㅁㅇ(clairinside)2021-04-0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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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순수한 탐구심에서 물어보는거야
ㅁㅇ(clairinside)2021-04-0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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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질이 욕망을 추구함, 인위보다 본성을 앞서지 말 것 도교적인 관점인 걸까? 무위자연의 본질을 함의하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
CBD(gak2030)2021-04-0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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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도교보다는 노자적 출신인 말의 성분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지점이네
ㅁㅇ(clairinside)2021-04-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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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욕망을 추구함에서 노자를 떠올린 것은 나도 같은 부분이야 그것은 스피노자에서 가져온 성분이고, 개인적으로도 노자와 스피노자는 깊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난로서도
ㅁㅇ(clairinside)2021-04-0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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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네가 만약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가정해볼까? 그리고 1년이 지났고 너는 약 267일 전 4월 26일오후 7시경, 네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고 기뻐함을 느낀 그 당시를 기억할까?
CBD(gak2030)2021-04-0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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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엮어서 만물의 여러가지 동일성인 브라흐마를 성찰할 것을 강조하는 우파니샤드 철학도 결국 종교라는 족쇄에 묶여서 선악을 나누는 인위적 분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지네
ㅁㅇ(clairinside)2021-04-0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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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치킨을 먹은 것이 소중한 감정의 순간이 아닌데도 그것을 기억하려 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인위라는 생각이 들어
ㅁㅇ(clairinside)2021-04-0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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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거야 사람은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을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듯이 그러한 개별적인 감상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가장 허무한 것들이기도 하지 내가 아직 스피노자, 우파니샤드 사상을 잘 몰라서 조만간 한 번 읽어봐야겠다
CBD(gak2030)2021-04-0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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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하는 나 자신은 오늘에 있고,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지혜롭지만 나를 아는 것은 명하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사소함을 지키지 못하면 '나' 또한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망각이 곧 허무인 것은 아니라고,
기적에 맡기겠다니 너무 수동적인 어휘 아닌가 싶은 - dc App
기적을 만드는 기적심은 내가 만드는 것이니 지각하는 영역에 한하여 나는 가장 자발적이나, 그 표적을 행하는 것은 마치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의 말씀과 같이 의식 밖의 일이라고 성경에도 나와있음
앎이 곧 행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은 이해하고 있는데, 기적에 맡기겠다면서 기적심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건 '기적심'이 어떻게 기적을 만드는지 설명되지 않으면 모순처럼 들리네. - dc App
이를테면 내가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무지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잖아 내가 배움이 짧다보니 의견이 궁금하네 - dc App - dc App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적심은 바른 마음의 상태이며, 바른 마음의 상태란, 곧 기적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것을 온전히 받을 용의가 있는 상태를 암시함 그러한 기적심으로부터 기적을 만들어 내는 그 기적이란 내 안의 '신성을 알아차림' 이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나의 의지 안에서는 그 기적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임
'나로 말미암음'은 곧 시간이 실재하지 않기로써 '나'와 내가 분리되지 않음을 뜻한다 의식은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기적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잠재된 상태에서 발현이 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기적은 시간의 개념을 폐지하여 기적을 주는 자와 '받는 나'가 완전히 동등한 관계에 기초하며 그것이 기적의 행위를 높은 자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까닭임
신성의 정의를 뭘로 놓고 있어? - dc App
기적을 현실적 작용이라 보고, 애초에 현실적 작용의 인과를 인간이 전부 파악할 수 없으니 기적이라 부르는 것 같고 대충 의식적 작용과 현실적 작용을 분리하는 의미에서 말한 것 같네. - dc App
그러므로 그런 기적은 나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며 통상적인 시간법칙에 지배받는 수평세계에서 기적없이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오르려면 시간법칙에 위배되는 패러다임이 있어야 하며 바로 그것을 기적이라 함
하지만 행위는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적 작용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인데.(말 그대로 불온전한 정신을 가정했을 때) 그렇다면 행위의 의미조차도 일반적 어휘가 아니라 새로 의미를 밝혀야 하는 부분이지 않나 싶어 - dc App
기적의 정의는 뭐야?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 작용이랑은 다른 느낌인데 - dc App
그렇지 쉽게 말해 우리의 몸으로는 그 기나긴 시간을 살아갈 수 없으므로
네가 오르고자 하는 높은 곳이란 어떤 것이야? - dc App
나로서는 인간적 본성에 그 본성 자체를 제외한 초월적인 것은 없다고 보아서 인간이 본성이 아니라 더 높은 무언가를 위해 산다는 게 잘 이해가 - dc App
흠.. 나에겐 아직 어렵지만.. 의심없는 믿음을 전제한 기적의 행위가 불온전한 마음 상태에서 전개될 순 없으나 기적은 사실상 사랑의 결핍됨(잘못)을 속죄로 채워짐을 위해 '완성의 상태를 확언'함에서 사람에게 공헌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므로 믿음을 위해 기적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기적이 수단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흐으음..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기적의 중재가 필요한가, 사람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내가 더 알기 위해 읽어볼 만한 저서가 있을까?
높은 곳이 곧 가장 낮은 곳이고 나아갈수록 되돌아감만 있을 뿐
내가 기적수업 저서에 나와있는 말들을 선별해서 한 거라 '기적수업' 이 책이 이해하는 데 보다 더 도움될 거야
가장 높은 것이 가장 낮아지는 변화의 이치가 있을 뿐 나아감과 되돌아감의 구별을 없애버리면 망망해지는 것 아닌가,
네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얼까
역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책이네.. 하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 내가 아직 도량이 좁은 탓이겠지. 고맙다
인간의 본성.. 아직 자신 있게 내 생각이다 랄 만한 것은 없고, 굳이 꺼내자면 욕망 추구일까 이것조차도 번역된 단어라 의미가 희미하게 다가가고 내가 다시 정의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겠지만, 어쨋든 이런 본성을 대하는 태도는 인위를 본성보다 앞세우지 말 것.
본성이라기보다는 본질.
관점의 차이지 우리의 짧은 인생을 선형적 측면에서 보면 비극, 희극이 다 들어있고 비선형적으로 보면 그저 대순환이듯 가까이서 보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국엔 원점으로 되돌아감이지 사계절과 음양오행의 수렴과 발산의 원리처럼
실용을 생각할 때에 극에 달하여 치솟은 것이 허물어지고 극에 달하여 허물어진 것이 다시 치솟는 것은 이치이지만 , 하나의 대순환은 결국 괴력난신과 같이 인간에게는 그저 깊은 허무인 것이 아닐까.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순수한 탐구심에서 물어보는거야
우리의 본질이 욕망을 추구함, 인위보다 본성을 앞서지 말 것 도교적인 관점인 걸까? 무위자연의 본질을 함의하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도교보다는 노자적 출신인 말의 성분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지점이네
그리고 욕망을 추구함에서 노자를 떠올린 것은 나도 같은 부분이야 그것은 스피노자에서 가져온 성분이고, 개인적으로도 노자와 스피노자는 깊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난로서도
단순히 네가 만약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가정해볼까? 그리고 1년이 지났고 너는 약 267일 전 4월 26일오후 7시경, 네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고 기뻐함을 느낀 그 당시를 기억할까?
한번 더 엮어서 만물의 여러가지 동일성인 브라흐마를 성찰할 것을 강조하는 우파니샤드 철학도 결국 종교라는 족쇄에 묶여서 선악을 나누는 인위적 분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지네
굳이 치킨을 먹은 것이 소중한 감정의 순간이 아닌데도 그것을 기억하려 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인위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거야 사람은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을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듯이 그러한 개별적인 감상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가장 허무한 것들이기도 하지 내가 아직 스피노자, 우파니샤드 사상을 잘 몰라서 조만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지켜야 하는 나 자신은 오늘에 있고,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지혜롭지만 나를 아는 것은 명하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사소함을 지키지 못하면 '나' 또한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망각이 곧 허무인 것은 아니라고,
나도 흄까지는 읽어야 일단락이라도 하지 싶은데 책 고르는 직관이 따르지 않네
나는 정신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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