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인생에 한번은 짜라투스트라>를 다 읽었다.
공부하다싶이 읽어서 머리도 식힐겸
가벼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갈매기의 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그냥
페이지가 100페이지 조금 넘고 글 중간에 사진이
많아서 읽기로 하고 읽어나갔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주인공 조나단 갈매기가
위버멘쉬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한계를 뛰어넘어
나는 법을 깨우쳤지만
치욕당하고
추방당하고
다시 가르치러 내려오고
가르침을 이해못하는 갈매기들
나는법만을 보고
숭배하기만 바쁜 갈매기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조나단의 가르침을
이어받지 못하지만
플레쳐라는 제자가
조나단에게 가르침을 받고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거친 뒤
조나단처럼 다른 갈매기들을
가르치게 되는 과정이
영원회귀가 생각났다.
이 책은
맹목적 숭배와 가르침 관련해서
불교와 기독교적 색채도 있지만
짜라투스트라의 마지막 인간,
우월한 인간, 시장에서의 치욕과
반복과 가르침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나단은 엄청난 호기심과
의지와 노력끝에
한계를 뛰어넘어 나는 법을
깨우치지만
무리는 그것을 부정하고
치욕을 주고 추방시켜버린다.
하지만 조나단은 고독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이뤄내고
다시 무리로 돌아온다.
가르쳐주기 위해서
짜라투스트라가 조롱을 감수하고
산에서 내려오듯이 말이다.
자신에게 치욕을 준 무리를
가르치는 이유는
조나단이 그 무리를 사랑해서다.
왜 사랑할까 생각해보니
조나단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은 특별하지 않고
오로지 훈련으로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종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과 애정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종에 대한
사랑이 생긴 것이다.
마지막 조나단이
신체적 정신적 성장 뒤에
시간과 공간 왜곡을 통해
나는 법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시간을
직선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짜라투스트라의 말이 생각났다.
조나단은
그 어떤 갈매기에게도
애정과 가능성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곳이 어디건 어느때건
영향이 가 닿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일체감인 것이다.
이진우 해설집으로 좋은
가이드북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갈매기의 꿈을 통해
본격적으로 읽을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더 재밌게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벗어나라. 나를 떠나라. 그때
나는 너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진짜 돌아온 짜라투스트라..신비한 독서경험.
이 글 읽으니 갈매기의 꿈 다시 한 번 읽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