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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쓴 글이라 만족스럽진 않네.
암튼 하루키 소설 처음 읽은 게 이 작품이었다 ㅎㅎ
무라카미 하루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민음사
무언가를 ‘만든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36살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역을 건설하는 일을 한다. 그는 대학교 신입생 때, 완벽한 조합을 자랑하던 색채가 있는 4명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그룹에서 추방된 후로 5개월간 죽음의 근처에 배회하며 절망적인 삶을 살았고, 특별하지 않은 반환점을 계기로 외적으로나 내면으로나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어 살아왔다. 완전히 잊고 지낸 듯 했지만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던 그 상처로 인해서 그의 삶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애인 사라의 권유로 옛 친구들에게 찾아가 그 당시 자신을 내쫓은 이유에 대해서 묻게 되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든 한 가지 느낌은 ‘기대보다는 별로’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지 않았다. 단순하고 가독성이 좋았다. 어딘가 상징적인 장치를 해 놓은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뚜렷하게 알아낼 수는 없었다. 중후반까지는 재밌게 읽어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맥이 풀리며 허무한 기분이었다.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는 ‘시로가 쓰쿠루를 그룹에서 추방시킨 일’이나 ‘시로가 살해당한 일’에대해서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 나름대로의 ‘해답’을 달아주면서맥이 시원하게 끊겨버린다. 그리고 딱히 흥미롭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 하려던 주제의식이 무엇일까? 소설을 읽고 난 직후에는 아무런 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이랬다더라’가끝인 소설인 것 같진 않다. 노벨상 후보에 거론되는 거장작가로서 분명히 메시지를 담아두었으리라. ‘인간의 고독’을 담으려 했을까?사실 지금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다만 흥미로운 해석으로 나는 다자키 쓰쿠루가 자신이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집착을 하던 ‘철도역’과 동치가 되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쓰쿠루는 늘 네 명의 색채가뚜렷한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은 색채와 개성이 없는 무존재감의 일원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정작 친구들은그룹 내에서 쓰쿠루의 존재감을 크게 느꼈다. 쓰쿠루가 그들을 응집시키는 결속력을 가진 중심 일원이라는것이다. 심지어 구로는 쓰쿠루를 열렬하게 사랑했다. 쓰쿠루가그룹에서 추방된 후에 그것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철도역과 같았던 쓰쿠루의 부재로 친구들의 그룹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었고 각자의 선로에 서서 흩어졌다. 시로는 그룹을 붕괴시키기 위해 희생시킬 대상으로가장 적합한 것이 쓰쿠루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열차를 응집시킬 힘이 있는 철도역을 파괴하는 것이서로 더 이상 결속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다. 이 것은 소설 속에 잠시 언급되는 1995년의 철도역 테러사건과 묘한 일치감을 느끼게 한다. 시로의테러에 의해 쓰쿠루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배회하며 처참히 파괴되었다.
사실 중요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데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대학교 시절에 가깝게 지냈던 하이다이다 하이다 역시 회색이라는 색채를 가진 후배였다. 다만 그의 색채는 흰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회색이다. 농도만 조절하면어둠 속에 스며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하이다가 들려준 하이다 아버지의 기묘한 이야기. 아직 내가 해석을 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반드시 등장한다는성적 클리셰는 독특했다.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반복되는 시로,구로와의정사, 그리고 단 한 번 나타났던 하이다와의 관계. 꿈이라하기엔 생생하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인 클리셰는 어떤 의미일까? 쓰쿠루에게 하이다는 어떤 인물일까? 묘하게도 하이다는 책의 중반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쓰쿠루라는철도역에 잠시 정착했다가 떠나버리는 열차처럼.
때문에 쓰쿠루는 고독한 인물이다. 이 고독함은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다. 읽으면서 꽤 쓰쿠루에게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타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살아온 쓰쿠루는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털어낼 상대로 사라를 만났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런 사라를 텅 빈 그릇인 자신이 책임지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갈등한다. 철도역에 잠시 정착했다가 떠나버리는 하이다 같지는 않을지. 이야기 마지막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초연한 상태로 사라를 만나러 간다. 그녀의 선택을 받으면 청혼을 하고,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또 한번 죽음의 문턱을 경험할수도 있고, 이번엔 쉽게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자신이 결국에는 사라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회피하지 않는다. 비로소 색채가 없었던 쓰쿠루에게 더 이상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는 색채가 뚜렷한삶의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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