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이 백일몽으로 만났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속기로 받아적어 출판한 책 '기적수업'으로 조금씩 내가 변하고 있는 조짐을 느꼈다

  

예수를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라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모르겠다 독자로서의 탐독인데도 종교성향을 띤 글을 개제하면 속기하거나 나를 광신도로 오해할 요지가 크기 때문에 나는 종교가 없다고 일러두고 싶다



예수님이 실존한 자였는지 노자처럼 가상의 인물이었는지, 성경이 수기로 적은 것인지 소설인 것인지는 나는 알지 못하며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그것을 증언하고자 함은 그의 말에서 결함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것은 최종적으로 나를 교정하도록 도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자 그래서 어떻게 신적 도움을 받느냐, 라 물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적었다고 주장하는 헬렌의 말마따나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 한 가지는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을 심판하여 오직 좋은 것만 간직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을 요구한다.



여기서 인간은 '사람 자신이 스스로를 만들어내지 않았으므로 자기 자신은 여기서 제외함'을 전제로 하며, 이는 늘상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심판의 목적은 그를 벌하기 위함이 아니며, 분리된 자아로부터 오는 결핍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데 있다.



신은 자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고자 하시며 모든 만물도 그러하다. 그러니 인간 또한 최종적으로는 인간 자신이 만든 창조물 중 그릇된 것과는 의절하며 가장 가치있는 좋은 것만 선별하여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마음속에 내제된 두려움은 사라지며 오직 충만함이 자리잡게 된다. 그것이 죄사함이다.



그릇된 현실을 창조하는 자유의지의 원리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인간은 스스로 두려움을 창조해 놓고서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그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진리의 성령이 사람에게 가치없는 일들을 통제하는 통로를 막는다. 네가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부터 탈피하고 행동을 교정하고자 함은 너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너의 두려움은 그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낮은 위치보다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실제로 행해져야 할 중요한 일들의 사명처럼 마음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만든다. 그러한 두려움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절감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 실재에 적합하지 못한 위치로 본말전도함으로써 마음상태의 수준혼동을 경험하게 된다.



너는 자신의 행동에만 책임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오로지 너의 생각의 범위 안에서 두려움을 통제하는 한에서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오로지 너의 생각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 성령은 네가 창조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수준혼동을 조정하지 않으며, 나만이 혼동에 관한한 교정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성령에게 믿고 의지하라, 고 하였으나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은 나의 통제 밖의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용인될 수 있는 듯 보이나, 그를 믿고 의지하기 위한 인간에게 있어서의 단 한 가지의 책임은 스스로 두려움을 통제하여야 한다는 것 뿐이며, 그것인즉 두려움의 형태는 내가 창조하였다는 방증이 되는 것이다



나의 뜻의 문제를 환경과 행동의 문제로 치부하고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 교정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녕 나는 마음 수준 외에는 안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하고 싶다고 청할 때 너의 두려움이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회피하는 것과 같다. 그 대신에 너는 그 두려움을 야기한 상태에 대해 도와달라고 청해야 한다. 두려움을 야기한 상태는 항상 뜻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분리된 마음 상태를 수반한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바로 말해, 행하고자 하는 뜻이 실제로서는 네가 하는 행동과 갈등할 때마다 나타나는 긴장과 불안의 표시이다



첫째, 너는 동시에 어떤 상반된 일을 행하겠다고 뜻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갈등하는 행동을 낳는다. 어떠한 선택으로 다른 뜻이 부정되면 다른 무언가를 하길 원하는 뜻의 일부로부터 견딜 수 없는 감정을 초래한다



둘째, 너는 당위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뜻과 행동의 일관성을 낳지만, 자아 안의 엄청난 긴장을 일으키게 된다. 잘못의 행위를 바꿀 수는 있으나 이 역시 두려움을 없애지는 못한다



이 유형의 경우, 모두 뜻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 뜻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됨으로써 강제받는 듯한 느낌을 일으키며, 필시 우울과 불안을 경험한다



너의 뜻이 갈라짐에 따라, 너의 행위는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너의 마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교정은 간단하다. 성령은 네가 뜻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뜻을 세우기 전에 먼저 너의 뜻이 성령의 뜻과 일치하는지 물어라. 그것은 '마음의 확신'으로 응답할 것이며, 마음이 그렇다고 확신하는 한, 두려움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 한 분께 의지하라." 라는 말씀은 바로 여기서 뜻한 바와 같다. 하느님의 뜻이 너 자신의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너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성령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뜻하는 것에 갈등할 때는 항상 두려움이 초래되며, 이를 해결할 방안은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닌 더 높은 뜻을 통해서만 교정할 수 있다



무신론자여도 마찬가지다. 무신론자여도 예수가 너희 자신보다 높은 뜻을 가진 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으므로 나의 뜻이 정녕 그와 일치하는 뜻인지 확신할 수 있다면 그 뜻에 있어 수반될 긴장은 모두 해소될 것이다



본문 중 말씀을 축약한 글입니다.
아멘ㅡ.



※이곳에 글 올린 것이 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