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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를 둘러보면 '3백산업' 얘기는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온다.
제분, 제당, 방직이 해당되는 이 산업은 미국의 자금원조, 기술적 원조 등으로 나타나는 '종속성'과
판매 및 원료독점, 생산설비확장 등의 '독점적 요소'와 기술개발, 흡수 및 합병, 경영방식 혁신 등의 '산업자본적 특성'으로 나타나는 '상대적 자율성(=자본주의적 성숙성)'의 모순적 통일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영세 자영농 또는 소작농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던 당시 한국은 해당 산업의 공급에 걸맞는 소비력을 갖추지 못했다.
'독점적 요소' 즉, 담합을 통해 공급량과 가격을 기업들은 조절하려 했으나 1959년부터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급과잉이 일어났고, 공산품과 쌀 가격마저 동시 폭등해 일개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웠다.
민중은 무능하고 썩어버린 정부를 뒤엎는다. 노동자들은 임금향상을 요구했고, 시민들은 정부와의 밀월관계로 축재한 기업가들을 처벌하길 바랐다.
한편 기업가들은 이 시기 미국의 원조도 줄어들어 원조에서 나오던 원료를 담합입찰로 가져갈 수 있던 관행을 수행하기 힘들게 돼 완전히 사면초가에 들어섰다.
그런 기업가들에게 1년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군부의 쿠데타는 민중의 요구를 강압적으로 억눌렀으며 군부정권의 수출장려 정책은 국내 공급과잉과 미국 원조의 감소로 불가피하게 유상차관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가들의 탈출구가 됐다.
이는 기업들이 종래의 원료독점, 판매독점 행태에서 시장확대(=수출확대), 생산성 향상 행태로 전환되게 되면서 한국경제 내에 '산업자본적 특성'이 이전의 미미했던 것에서 완전히 싹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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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