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원고지도 비어 있고
  화병도 비어 있어요.
  하루 종일 노닐다 간
  햇살도
  벌써 가고 없어요.

  거울 속에는
  내 얼굴만 있군요.
  근데 얼굴은 없고
  생각만 이리저리
  굴러 다녀요.

  약이 떨어진 볼펜은
  권태롭고
  약속해주지 않은 채
  하루는 가고 있어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억제되어 박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까요.

  벌써 불을 끌
  시간이군요.

  가만,

  드디어 계단에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누군가 나를 채워주려
  오나봐요.

  그러나 역시 아무도
  안 와요.
  나는 물만 마셔요.
  차라리
  그리움이 그리움을
  삭발하고
  거울 앞에 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