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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린이라 유명한걸 많이 안읽어봐서 이걸 인제 읽음. 두서없거나 다 아는 이야기여도 기록용으로 남기는거니까 양해해주기 바람.

이 소설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있는데, 중심인물인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면서 나타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음. 요리를 잘하고 먹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아내이자 딸이었던 영혜는 어느 날부터인가 피와 고기에 관련된 악몽에 시달리고, 이는 정신이상적 증세로 이어져 고기 자체에 대해 생리적인 혐오감을 품게 됨.

첫번째 파트인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영혜의 남편임. 나이들어서 적당한 사람하고 결혼한 케이슨데, 멀쩡했던 아내가 갑자기 장어를 버리질 않나 굶질 않나 염병이 나니까 시댁한테 SOS를 침. 그런데 가부장제와 권위의식으로 똘똘뭉친 K-장인이 이걸 용납하느냐? 베트콩 때려잡던 손으로 딸한테 싸닥션을 날림. 전통적 가족관계 앞에서 개인의 선택은 일탈에 불과하다는거임. 결국 영혜는 과도한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가족들 보는 앞에서 과도로 자해하고 병원에 수감되고, 남편과는 이혼함.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인간상을 읽었는데, 하나는 '일반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임.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는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이념을 표출하려는 사람을 말함. 영혜가 미쳐가지고 하는 꼬라지를 보면 브레지어를 안찬다던가, 남들 보는 앞에서 젖가슴을 햇빛에 쬐이는 등 거의 행위예술이나 다름없음. 가슴이 몸에서 거의 유일하게 죽음이 아닌 삶과 관련한 부분이다보니 영혜의 생명존중사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읽히는데, 책 제목이 채식주의자이다보니 겉보기에는 사회참여소설처럼 읽히지만 실은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면서 사회와 갈등을 겪는 뭐 그런게 주제임.

영혜는 일반인이었다 예술가로 각성한 반면 남편은 일반인이었고, 영혜의 예술가적 똘끼를 감당하지 못할 걸 알고 손절함. 그런데 두번째 파트 '몽고반점'에서는 영혜 언니의 남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인간은 예술가에다 직업도 예술을 함.
근데 이 파트가 골때리는게 장르가 NTR임. 영혜 언니는 잘 웃고 성격도 좋은 반면 영혜는 말수도 없고 언니보다 덜 매력적인 걸로 나오는데 이 남편이란 작자가 예술가라 그런지 영혜의 불안정한 기질에 더 끌림. 근데 문제는 그냥 끌리는 정도가 아니라 쥬-지가 반응했다는거임. 특히 몽고반점에 끌림.
직업이 예술가니까 작품촬영을 한답시고 영혜를 꼬드긴다음, 알몸에다 꽃을 그려넣고 영상을 찍음. 쥬-지의 힘인지 결과물은 후배인 J가 놀랄 정도임.
왜 그리스 미술같은거 보면 인간의 몸이 제일 아름답다고해서 누드화랑 누드조각상 ㅈㄴ 많잖아. 그것처럼 이 남편도 처음에는 영혜의 몸을 예술작품 취급해서 건드리질 않음. 그런데 발1기가 가라앉길 않으니 야-스를 찍어야하긴하겠는데, 자기 몸은 나이가 나이다보니 보기 흉해서 대신 젊은 후배 J를 데려와서 촬영을 했지만 J는 삽입을 거부하고 나감.

여기까지는 괜찮았을지 모르겠는데, 결국 영혜랑 언니 남편이랑 해버림.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와 밀접했던건지 영혜가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몸에 그림을 그려오면 해주겠다고 함. 남편이란 놈은 꼴에 좋답시고 야밤에 자기 몸뚱이에 그림그려줄 사람을 찾아가는데 그게 또 결혼한 전여친임.
아무튼 결국 둘이 한판 하고, 그걸 본 아내가 둘을 정신병원에 신고함. 그런데 아까 예술가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이념을 표출하려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남편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여기서 목숨을 끊었어야하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함.

여기서 전여친이 그림을 그려주면서 이렇게 말함. 알몸보고 오랜만에 흥분했는데 그림그린거 보니까 추하다 이런 식으로. 찾아보니까 소설이 탐미적이라는 평이 있던데, 실제로 뒤지게 탐미적이지만 예술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을 긍정하지는 않음. 작품의 주체가 일반인이거든.

마찬가지로 세번째 파트의 주인공은 영혜의 언니임. 부모님이고 남편이고 뭐고 다 영혜를 손절치니까 언니가 병원비 대가면서 영혜를 정신병원에 넣고있는데, 고흐 동생처럼 예술가 조력자 포지션인거 같음. 차이점이 있다면 영혜 남편과 마찬가지로 영혜의 광기를 두려워해서라는거지.
언니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혜는 음식물 자체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름. 물구나무까지 서는거 보니까 굶어죽어서 나무라도 될 심산임. 언니 남편이 넘지못했던 죽음의 벽을 넘어서려는건데, 사정을 모르는 병원 의사들이랑 언니는 고생할수밖에. 결국 어깨뼈에다 관을 삽입해서 수액을 투입하는 시도도 실패해서, 큰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소설이 끝남.
이처럼 이 소설은 채식을 해야한다는 사회참여소설이 아니라 삶을 파괴시키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을 녹여낸 그런 작품이라는게 내 결론임.

과연 영혜가 무슨 꿈을 꾸었길래 이지경이 된걸까? 책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가 지천에 널려있고 누가 누굴 죽이고 막 섬뜩한 이미지로 묘사가 됨. 어떤 생명이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희생한다는 전재가 깔려있는데, 이런 개념을 절대적인 폭력으로 치환한 것이지 싶음.
실재로 이런 생각때문에 인도의 자이나교는 옷도 안입고 밥도 손으로 퍼먹음. 단식하다 죽으면 생명을 최대한 해치지 않았다고해서 최고로 쳐주는데 영혜의 생각이 이런거 같음.

어쨌든 이 꿈을 꾸고 나서 영혜의 삶이 모래성 무너지듯 망가진건 맞지만 이게 악몽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동서양 막론하고 꿈은 계시나 영감의 근원이잖아? 그런데 특이하게도 영혜는 계시를 무시하거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파괴시키기에 이름. 그래서 이름을 예술가라고 붙인건데, 이름을 붙이고보니 영혜가 꿨다는 꿈이 백일몽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백일몽이란 단어가 한낮에 꾸는 꿈이지만 예술가들에게 닥치는 계시와 같은 영감? 그런 뜻이기도 하거든.(정확한건 아님.)
여하튼 이 소설을 영혜가 행위예술가로 전직(?)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는 게 내 뇌피셜임. 독후감같은걸 잘 안써봐서 존나 길게만 썼지 뭔소린지는 못알아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