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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을 처음 받아들고 펼쳤을 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실제 작품 안에서 나온 문장들을 독갤에서 짤로 접했고, 사람들의 리뷰를 먼저 읽은 다음 책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짤로 올라왔던 건 다른 단편이었다는 걸 알긴 했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런지, 평소라면 마음 속으로 흥분하며 쳐다봤을 작가들의 사인도 뭔가 으스스하게 보였다. 그래도, 독갤의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까려면 읽어 보고 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초반부에 내 이목을 집어끌던 건 왠지 작위적인 단어 사용이었다. '신분', '4인의 정상 가족', '특권'. 하나같이 어디서 많이 본 단어들이었다. 내가 신경을 너무 곤두세워서 저런 것들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구나 하고 넘기긴 했지만 역시 찝찝한 마음은 남아 있었다. 곧이어 소설의 주요 모티프인 '젊은 여성과 나이든 남성'을 상징하는 연구소의 '그'와 그의 21살의 연인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 구도로 인해 옛 기억이 떠오르고, 과거 회상을 하게 된다. 과거 회상에서 '젊은 여성'의 역할을 맡은 '연수'는 능력이 있고 주인공 같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에게 끌리는 '나이든 남성'의 역할을 맡은 장 피에르는 지적이고 훤칠한 외모에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면'을 쓴 '20살을 탐하는 퇴행자'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남성들이 이끌리는 연수를 동경하고 부러워하지만 그 이끌림의 실체는 추악한 욕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장 피에르의 가면이 벗겨지고 '나'는 연수에 대한 동경을 거두며 과거 회상에서 돌아온다. 그 후 연구소로 '그'를 만나러 온'그'의 연인에게 충고를 해주려다 실패하며 소설이 끝난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처음의 선입견을 벗어낼 수 있었는데,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페미니즘으로만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에 동경과 후회의 이야기를, 그 이전에 주목받지 못하는 자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었다. 이 모티프들은 이 잔잔한 소설에 흥미를 남겨 주고, 나도 꽤 공감할 수 있었던 소재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동경해 보고, 그 동경으로 인한 후회도 겪어 봤기 때문이다. 결국엔 페미니즘이라는 고약한 향신료가 작품의 깔끔한 맛을 헤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작품에 페미니즘이 들어간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장 피에르의 추악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 까지만 했어도 납득 가능한 선이었을 것이다. 다만 거기서 욕심이 한 걸음을 더 나가게 한 것 같다. 작위적인 단어 사용도 단어 자체의 사용이라는 면보다 작품성을 헤친다는 면에서 더 비판하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깔끔한 맛'을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유머랍시고 넣어 놓은 말들은 그냥 쓸데없는 문장들로밖에 안 보인다. 여러 념글의 주장처럼, 어떠한 혐오나 광기를 미적으로 승화시킨다면 그건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전혀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작품 안의 혐오감이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오싹함을 준다. 「이방인」같은 작품은 이런 오싹함을 미적 희열로 승화시켜 오히려 즐기게 해 주지만 그런 작품들 반열에 이 소설을 끼워주기는 싫다. 작가는 험버트를 빌어먹을이라고 표현하며 나보코프의 미학을 비판하고 있지만, 나는 페미니즘의 미학보다 나보코프의 미학의 손을 들어주겠다.
어떠한 혐오나 광기를 미적으로 승화한다면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 - 이방인 같은 작품은 오싹한 혐오감을 미적 희열로 승화시켜 주기에 오히려 즐기게 해준다
이 소설은 전혀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혐오감을 들이민다 - 자기와 상관없는 사회문제를 들이미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석될 수 있어서 공격 받을 여지가 굉장히 많아 보임
그렇군요.. 솔직히 장 피에르 이야기 외의 페미적 요소들은 사회문제라기보다는 그냥 혐오의 파편을 대하는 느낌으로 읽어서 저런 감상이 나왔는데 지금 보니까 충분히 이렇게 읽힐 수 있겠네요.. 조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