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한 번 읽어볼 만함. 삼국지와는 다른 매력이 있음. 인간, 처세술, 인생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줌.
토요일 밤에 울적하기도 해서 『대망』 이야기 해봅니다. 톤이 좀 사적이니 너무 길면 한줄요약만 보시고 넘기세요 ㅋㅋㅋㅋ
나는 12년 2월에 육군에 입대했다. 12년 11월이 되니 전역이 1년 남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동안 버틴 게 기특하기도 했지만 남은 시간들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버티는거 남은 시간들을 나름 의미있게 보내며 버티면 더 좋지 않을까?
전우들과의 친목, 자격증 공부, 운동 등.. 뭐 여러가지 있겠으나 소설을 좋아했던 나는 좋은 평가를 들었던『대망』 이라는 소설을 읽고 싶었다.
나가면 어느 기회에 그렇게 긴 소설을 보겠나.
당시 동서문화사 판으로 12권. 전역할 때까지 1달에 1권씩만 읽으면 전역할 때 다 읽는다. 물론 1권에 700페이지. 좀 빡시긴 해도,
대하 소설은 긴 대신 밀도가 얕기 때문에 공백기가 길어도 다시 이어서 읽을 수 있고, 챕터가 짧게 나뉘어져 있기도 하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라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인내'의 상징 아닌가! 내 군생활도 끝없는 인내의 연속이고..한 번 가보자.
어머니에게 우편으로 받아들었는데 좀 무서웠다. 그래도 시작했다.
도쿠가와의 친어머니인 오다이, 아버지인 마츠다이라 히로타다의 밀당과 그들의 고뇌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오 좀 재밌는데?
야만적이면서 처량한 일본 전국시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아실 분들 아실테지만 도쿠가와는 어려서 아버지(마츠다이라 히로타다)를 빨리 여의고 적은 가신 몇 명들과 함께 여기저기 의탁하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다른 전국3영걸에 비하면 그는 그다지 비범하지 않다.
불같은 오다 노부나가는 창의적이면서 급진적이고, 남의 의표를 찌르는 데에 능숙하다. "새가 울지 않으면 베어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리하고 민첩하며 사람다루는 솜씨가 기가 막힌 것으로 묘사된다. 그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의 편이 된다.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든다."
노부나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게릴라 침투로 큰 세를 가졌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고, 전술의 도입과 개조를 통해 조총의 약점을 메꾸어 전쟁의 판도를 바꾸며
그 강력했던 다케다 가문의 기병대마저 박살내버리는 능력을 보여준다. (영화 <카게무샤> 참고)
도요토미는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거지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관백자리에 까지 오르는 대단한 놈이다. 눈치가 빨라 윗사람에게는 신임을 받고 능력을 잘 알아보고
아랫사람은 자기편으로 만든다. 야망도 크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에 비해서 도쿠가와를 보면.. 그냥 부모없는 평범한 떠돌이일 뿐이다. 창의적이지도 않고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머 나름 출신 가문 정도만 있는 좆밥일 뿐이었고, 일단 노부나가에 의탁하여 전국시대를 헤쳐나간다.
도쿠가와도 가진 것이 있긴 했다. 그의 가신들, '사람'이었다(요즘엔 '라인'이라고 하는). 그의 출신지인 미카와 산골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강하고 우직하고 충성스럽다.
장비 여포 머 이런 애들보다도 초인적으로 묘사되는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 충직한 '토리이 모토타다', 주군에게 충언하고 채찍질하길 망설이지 않는 귀신 '사쿠자에몬',
너무도 간사하여 동료들에게는 눈총을 받지만 시류를 정확히 읽어내는 '혼다 마사노부(도쿠가와의 제갈량)'
당연히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도 가신들이 있긴 했으나 이들만큼 굳건하진 못했다. 노부나가는 그의 가신에 의해 허망하게 죽었고, 히데요시의 '칠본창'은 와해된다.
도쿠가와의 가신들은 대부분 끝까지 간다.
두번째, 그는 정말 잘 처세했다. 히데요시처럼 민첩하지 못했으나 잘 살아남았다. 싸울 때는 과감히 싸우되 숙일 때는 숙였다.
무리하지 않고 노부나가에게 충성심을 보이기도 했고, 히데요시와 전면전을 벌여 우세했으나 명분이 사라지자 히데요시에게도 숙인다.
몇 차례 위기도 있었다. 다케다 가문과의 전쟁에서는 정말 죽을 뻔하여 바지에 똥을 싸고 도망치기도 하고, 충성을 시험하려는 노부나가에 의해 아내와 맏아들을 잃는다.
그를 견제하려는 히데요시에 의해 당시에는 진흙탕일 뿐이었던 '에도'로 근거지를 옮겨야만 했다. 눈이 뒤집혔던 그의 가신들과 달리 그는 차분함을 유지한다.
나중에 에도 재건을 핑계로 능글맞게 임진왜란에서 쓱 빠진다 ㅋㅋㅋㅋㅋ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서 그는 버티고 또 버틴다.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그는 일본 전국시대의 승자가 되어 '에도 막부' 시대를 연다.
뭐 이런 내용이고, 이 작품은
700페이지 12권이니 졸라 길다. 길다는 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뜻. 정말 많은 인물들의 POV로 구성된다. 도쿠가와는 당연하고, 도쿠가와 친어머니와 아버지, 도쿠가와에게는 최종보스인 미쓰나리, 노부나가, 히데요시, 다케다 신겐, 센노 리큐, 도쿠가와의 아들들, 도쿠가와의 가신들, 전국시대의 여성들, 이름없는 사람들, 가공의 인물, 분량이 많은 만큼 진짜 전국시대 인간의 종합선물세트다. 여러 인물들이 자신의 성격과 능력, 처지, 신념에 따라 전국시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독자들은 혼란스러운 시대로 들어가 여러 사람들과 실존적 고뇌를 함께한다. 운칠기삼이라고 '운'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도쿠가와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주었으니. 그런 사색은 '운명'이나 '팔자'까지도 이어졌다. 인간은 결국 복잡한 시대와 불확실성, '자기'라는 한계에 놓인 처량한 존재가 아닌지. 뭐 이야기 전개가 느려보일 수는 있으나 이렇듯 전국시대를 여러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고, 인간과 삶에 대해서 깊게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연스레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차분히 생각해보게 된다.
뭐 별 건 아닌데, 내가 인상깊게 읽은 챕터가 있다. 도쿠가와 가신들 중 한 명이(아마 픽션인물인 걸로 암) 반역을 일으키려는데, 그와 함께하려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거울 속에 비친 이 남자가, 과연 도쿠가와를 죽이고 천하인이 될 수 있는 남자일까? 솔직히 내 관상이 그런 상인가?' 시대의 무게와 객관적인 자기 능력과 분수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인데.. 이 챕터보며 당시 내 진로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 2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전역 후 그 때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내 능력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 얘기가 많은 만큼 처세와 인간 관계에 대한 지혜도 얻을 수 있다. 너구리같은 도쿠가와의 처세, 결국 파국으로 이른 노부나가와 미쓰히데 / 히데요시와 센노 리큐, 도쿠가와의 애정을 받고 큰 권력을 가졌으나 녹봉을 많이 받지 않아 뒤탈이 없었던 혼다 마사노부의 처세술, 지나치게 순수했던 미쓰나리의 솔직함이 불러온 결과 등등..
시대는 변하고, 사람은 그 시대를 이끌어나가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인데 잘 안 되는 것이지...
예를 들면 노부나가는 선구자적인 기질이 있었다. 그가 도입한 조총 전술에 다케다도 쳐발리고 후에 조선도 위기를 겪는다.
히데요시는 천하를 손에 쥐었으나 싸움으로 뭔가를 해결하는 전국시대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몰락한다. 국내에서는 싸울거리가 없으니 조선으로 가니 인도로 가니..
결국 이순신한테 쳐발리고ㅋㅋ 슬슬 일이 꼬여간다.
반면 '작품 속' 도쿠가와는 전국시대 이후를 고려하며 준비한다. 평화의 시대가 열릴텐데,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가. 어떤 인물이 필요할 것인가. 내 가신 중 그에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급변하는 시대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어떤 시대가 열릴지 정말 알 수가 없으니.
자기가 공부한 것, 살아왔던 방식을 언젠가는 버려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런 비판이 있다. 도쿠가와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점. 맞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너구리 영감'으로 일컬어지는 도쿠가와가 무슨 신불이고 절대선이고.. 뭐 이렇게 묘사된다. 그리고 삼국지연의 같은 경우 날 것의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다소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교훈을 주려는 느낌이 강하다. 뭔가 주제를 전달하려고 인위적으로 짜여진 느낌이 '약간' 있다. 찾아보니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는 당시 절망에 빠진 일본의 젊은 세대를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뭐 그러니 이해는 간다. 변호하자면, 그런 점으로 인해 오히려 독서를 통해 얻는 점이 굉장히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교양소설 느낌도 나고.. 메시지나 주제가 명확하니까. 도쿠가와를 미화한 것은 맞으나 3영걸 중에 인기가 부족했던 도쿠가와를 새롭게 해석하여 그 시대 젊은이들의 희망으로 만들려했던 작가의 시도는 대단하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관점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작가니까. 그리고 결국 전국시대의 승자는 도쿠가와다.
그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물론 비판적인 독서는 필요하다.
덧붙이면, 전국시대 역사소설인 만큼 전쟁씬도 당연히 있다. 픽션이 약간 가미되어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그 시기 일본 특유의 전투방식도 볼 수 있고.
나는 도쿠가와의 시련과 인내를 맘에 두며 군생활을 해나갔다. 1달에 1권씩 무조건 해치웠다. 이 책을 읽다 중대원들과 나를 보니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느 정도의 인간인지도 점점 알게 되고.. 인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달콤씁쓸했다.
11월 전역일,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서 대망12권의 마지막 챕터를 읽었다. 그렇게 내 군생활과 긴 독서는 마침표를 찍었다.
시간이 엄청 남거나, 군대나 감옥갈 일이 있거나, 20대 초반이라면 강추한다.
쓸 말이 참 많았는데.. 혹시 더 있으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유훈 갑니다 (당연히 위작 논란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감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 부자유를 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부족함이 없다. 마음에 욕망이 일거든 곤궁할 적을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함의 기반이며, 분노는 적이라 여겨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몸에 화가 미친다. 자신을 책할지언정 남을 책하지 말라. 부족함이 지나침보다 낫다.
대망 전체시리즈는 50권정도라고 들었는데 3웅 각각 12권인가요?
삼국지와는 차이가 있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현대에 쓰여진 소설인데
잘 읽고 갑니다. 감옥갈일에서 피식 했다가 최근에 감옥에서 대망 읽었던사람 생각나서 소오름
아조씨 멋져요
독후감 재밌다 읽고싶어졌음!
59.6 // 동서문화사에서 아마 여러 대하소설들의 제목을 대망으로 고쳐 출판한 것으로 압니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망1편으로 제목이 바뀌어 출판, 총 12권이고, 이 안에 전국시대 3영걸 이야기가 모두 나옵니다. 솔 출판사에서는 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번역했습니다. 다른 대망 시리즈는 잘 모르니.. 인터넷 서점 참조해보시길~
몇년전 읽었을 당시 어마어마한 분량에 짓눌려 해치우듯 읽는 바람에 글쓴이 만큼의 많은 생각과 깨우침은 얻지 못했네요. 후반부가 지루했던 기억밖에는 ㅋㅋ 집에 꽂혀있는데 날잡고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아 글고 전국 시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추천함. 전 5권짜리 소설이고 세키가하라 전투 전개 과정을 따라가는 소설인데 대망이나 삼국지 처럼 긴 호흡이 아니라 전개도 빠르고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다양한데다가 작가의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한 뒷이야기도 군데 군데 첨가하여 읽어 내려가는 맛이 있음
대망 진짜 재밌음.. 초~중반이 재밌었는듯 나중에 세키가하라나 늙어서 후계구도나 안정화 이부분은 늘어지더라 .
진짜 본문에 많이 동감함, 전후 패전에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나온점, 또 엄밀하게 역사동호인들처럼 까고보면 사실에 오류도 많겠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 들여서 읽은거 후회안함. 일뽕으로 몰릴까봐 좀 그런대 한국대하소설은 지금시점서는 읽은시간 아까운거 좀 됨 갠적을 ㅗㅋ
글 잘읽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도전해봐야지~ 대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