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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사가 붙은 글을 잘 즐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나 소설 같은 것들. 돌이켜보면 학생 때부터 쭉 그래왔지. 말로만 하기 뭐해서 찾아보니 고등학교 생지부에 올린 32권의 책 중 소설은 1권이더라. 시는 말할 것도 없고.

2. 변명을 하자면 가상의 이야기보단 지식을 접하고 싶었다. 일반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래 봐야 시대상 정도니까. 그래서 얼마 전엔 '사회생물학 대논쟁'(고딩 때 존나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같은 거나 읽다가 영상통화 온 친구에게 '극한의 컨셉충이다'하는 소리나 들었징.

3. 잘 짜여진 시나 소설은 공감능력을 길러준다는데 그런 건 에세이로 해결 가능했다. 아니면 상담 사례집 봤지. 굳이 귀찮게 소설을 볼 이유가 어디있겠나.

4. 생각해보면 글이 아니어도 그렇다. 영화도 1년에 두ㆍ세편 보면 많이 본 거고 드라마도 안본다. 애니메이션은 한 사이클 돌려본 게 나루토 밖에 없다.(원피스는 하늘섬까지만 봤지) 웹툰 정도는 본다마는.

5. 서사를 배제한 삶을 살면서 큰 문제는 못 느꼈지만 아무래도 글이 밋밋해지고 묘사가 조악해지는 건 피할 수 없드라. 문체도 많이 단선적이고. 이건 뭐 특이한 단어 쓰고 문장 좀 도치하거나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더라.

6. 그래서 전역하기 전 몇달 전부턴 소설이나 에세이 같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병행해서 읽었다. 조지 오웰의 1984나 동물농장, 이국종의 골든 아워, 김용의 소오강호, 학생 때 재밌게 봤던 윤흥길의 장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심지어 포반 애들이 추천해준 '던전 디펜스'란 책도 읽었는데 항마력 딸려 접었다.

7. 요새는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를 읽고 있다. 70%쯤 읽었는데, 대충 문서 조작의 천재가 유럽 돌아다니면서 사회 갈등 조장 및 허위 사실 유포하는 내용이다. 극도로 보신주의적이고 합리화도 잘하는데다 공감능력 또한 없다시피하니 '우리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며 신나게 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도 뭐하다. 어딘가 모르게 나라면 뭐 크게 달랐을까 싶어서.

8. 주인공의 삶은 근ㆍ현대 과도기의 유럽 전반을 아우른다. 격동의 시기에 으레 퍼지곤 하는 갈등을 부추기며 산다. 우리나라 버전으로 빗대자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제에 협력하며 살던 주인공이 독립 후 반공정서를 부추기며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종북주의자들을 선동해 군정의 당위를 내세우는데도 기여하다가 민정이양 후에는 지역감정과 남녀갈등, 진보-보수의 갈등을 조장하며 슈퍼챗 뽑아먹다 말년에 본인이 진정으로 원했던 공산주의자 타도를 위해 조선족게이트를 만드는 이야기' 쯤 되겠다. 와씨. 그럴듯한데.

9. 쨌든, 내면에 갖가지 혐오와 편견을 갖고, 중상과 비방, 위조를 무기삼아 살아가는 주인공을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런 주인공'이라 말한다. 그를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순 있을지언정, 그의 행적에 동의할 수 없으니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근데 한편으로는 에코 옹이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 석학으로 고상한 학문의 세계를 노닌 부작용일까.. 이 정도로 가장 혐오스런 주인공을 자처하다니.

10. 던전 디펜스 주인공도 충분히 혐오스럽든데ㅋㄱㄱㄱㄱㄱㄱㄱㄱㅋ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ㅋㄱ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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