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이야기들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모든 단편들에서 다소 상식을 벗어나고, 종잡을 수 없는 환상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니까 약간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실제로 슐츠도 폴란드계 유대인이었고, 카프카의 작품을 폴란드어로 번역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단편들은 ‘나’인 프란츠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그 중 ‘아버지’와 하녀인 ‘아델라’가 핵심을 이룬다. 이 아버지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특이하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굉장히 강압적이고 신적인 존재이지만, 슐츠의 ‘아버지’는 나약하고 현실적이며, 하녀인 아델라에게 빌빌 기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다. 가끔은 벌레나 짐승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면서 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시에 발명가이자 예술가이고, 우매한 군중들에게 경고하는 선지자이기도 하다. 철학자로서 선과 악을 탐구하며, ‘마네킹’ 연작에서는 점원과 아델라에게 철학 강의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 주변사람들은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아도 굳건하게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또 슐츠는 원래 화가로서 처음 이름을 날렸던 작가라고 한다. 본래 미술학도에서 작가로 된 마야코프스키나 체스터튼처럼 풍경 묘사와 색채감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슐츠는 작품 속 화자인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내려갔다. 이렇다 할 플롯이나, 줄거리 없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그림 같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 책이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곤 하였다. 어린 아이는 동물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그에게 밤은 마법의 시간이고, 높은 담과 길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미로처럼 펼쳐진다. 이런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인 ‘계피색 가게들’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나는 하늘의 광채로 밝혀진 겨울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별로 가득한 하늘이 너무나 넓게 너무나 멀리 펼쳐져 있어서 겨울밤 한 달을 충분히 뒤덮을 만한 밤의 모든 현상들, 모험, 사건과 축제를 감싸는 은빛과 색색의 천구로 가득한 몇 개의 하늘들로 갈라져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그런 맑은 밤이었다. 그런 밤에 어린 소년을 급하고 주요한 심부름을 시키러 내보내는 것은 대단히 멍청한 짓인데, 왜냐하면 반쯤 어두운 속에서 거리는 늘어나고 혼란스럽게 얽혀들기 때문이다. 도시 깊은 곳에서 반사된 거리들, 똑같이 생긴 가짜 거리들, 속임수 서리들이 열린다. 상상력은 마법에 걸리고 잘못 이끌려, 익수해 보이는 지역의 허구적인 지도, 거리가 원래 이름대로 제자리에 있지만 밤의 지칠 줄 모르는 생산성으로 새롭게 허구적으로 배치된 지도를 만들어 낸다." - 계피색 가게들


 

 

유대교적이고, 종교적 상징과 미로처럼 얽히는 세계, 몽환적인 분위기, 희극적이지만 한편으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슐츠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덕분에 읽기가 꽤 힘든 편이다. 현실의 모습을 물감으로 녹여, 수채화를 그리듯 투명하고 아름답게 묘사해내지만, 정작 스토리는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점도 없지는 않다. 가끔 어떤 단편들은 거의 분위기 묘사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것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단편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이고, 어디까지나 작가 ‘초기’의 작품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구리다는 것은 아니다. 슐츠 또한 폴란드 문학의 거장 중 한 명이기에 초기의 작품이라지만 무척 훌륭하다.  폴란드 문학 아카데미에서 황금 아케데미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는 단편들을 발표하고, 폴란드의 유명한 문인들과 비평가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장편 ‘메시아’를 구상 중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편을 써 내리기도 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의 고향이 점령 된지 얼마 안 되어, 게슈타포의 총에 살해되고 말았다. 결국 초기작인 두 권의 단편집을 끝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덕분에 슐츠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는 들 틈도 없이 일찍 죽어버렸고,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작가로 남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슐츠 단편 원작의 애니메이션도 있다. 제목은 악어 거리. 상당히 음침하고 기괴한 느낌;


"그것은 상공업 지구인데, 냉정하게 실용적이라는 특성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당대의 정신, 경제의 구조는 우리 도시도 비켜 가지 않았고, 그리하여 도시 외곽에 뿌리를 내리고 기생하는 구역으로 자라났다.

구도시에서 의례적인 엄숙함을 특징으로 하는 반쯤 비밀스러운 밤의 무역이 지배적이었을 때, 새로운 구역에서는 현대적이고 냉정한 형태의 상업적인 시도가 즉각 번성했다. 도시의 오래되고 무너져 가는 중심부에 접목된 가짜 아메리카니즘은 여기서 가식적으로 천박하고 풍성하지만 공허한 무채색 식물이 되어 싹을 틔웠다. 그곳에서는 겉모양이 기괴한, 금 간 석고의 괴물 같은 벽토로 뒤덮인 싸구려 날림 집들을 볼 수 있었다.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그 교외의 집들에는 날림으로 지은 정문들이 접목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가까이서 볼 때만 화려한 도심의 가련한 모방이라는 것을 드러냈다.(...)악어 거리는 현대성과 도심의 타락에 우리 도시가 손을 들었다는 증거였다. 분명히, 우리는 허물어져 가는 작년 신문에서 오려낸 그림 조각들을 잘라 붙인 종이 모형 외에는 더 좋은 것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 악어거리




내가 읽은 판본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브루노 슐츠 작품집이다. 과거에 길 출판사에서 나왔던 계피색 가게들과 모래시계 요양원의 합본인데, 사실 슐츠 작품이 이 두 권뿐이라 전집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8월, 계피색 가게들, 악어 거리, 위대한 계절의 밤, 모래시계 요양원, 연금 생활자, 아버지의 마지막 탈출 이정도.



거의 뭐 찬양 일색을 쓴 것 같지만, 사실 읽기 ㄹㅇ루다가 힘들다. 사실 그렇게 재밌지만도 않다. 내가 책에서 받은 '인상'만으로 독후감 쓰는 건 좀 피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 글은 피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별로 재미민 없었거든 ㅎㅎㅎㅎㅎㅎ 만약 장편 메시아가 정상적으로 완성 됐다면, 카프카 장편 뺨치게 읽기 힘든 책이었을 거다. 하지만 쓸쓸하고 몽롱한 분위기와 화가출신 작가의 회화적인 묘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