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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는 사소설과 메타픽션의 영역 양쪽에 걸쳐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오에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의 가족관과 고향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축소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축소시킨 듯한 비바리움을 만든다. 그와 동시에 이 소설은 소설의 창작 그자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적인 영역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메타픽션 특유의 의도적 틀 부수기 같은 요소는 드러나지 않는데, 엄밀히 따지면 사소설 자체가 메타픽션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 의미없는 분류 같기도 하다.
1. 줄거리
소설에서는 다양한 대립관계가 나온다. 오에는 지체장애가 있는 맏아들 히카리와 틀어지고, 과거에는 어머니-여동생 연합에 의해 구성하던 익사 소설이 무너지면서 오에 개인의 기억과 꿈에만 의지한 불완전한 익사소설을 써낸다. 이로 인해 가족과 의절 직전까지 간다. 그와 동시에 우나이코가 기획한 <죽은 개 던지기> 연극에서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이용하여 관객과 배우의 경계를 없애 개인의 주장을 말하는 것으로 배우와 관객(혹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대립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우나이코는 청소년기에 자신을 강간했던 큰아버지와 대립하게 된다. 천황살해를 주도하다가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겪은 오에의 아버지와 오에 또한 대립하고 있으며, 오에와 마찬가지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자 오에의 아버지의 제자인 다이오 또한 방향성의 차이로 대립하게 된다.
작중의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우나이코는 <죽은 개 던지기>라는 연극방식을 이용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낭독한다. 거기서 우나이코는 소세키의 마음이 정말 시대론을 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건넨다. 개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시대론을 주장한단 말인가. 라고 말하는 우나이코의 질문 속에 ‘그것은 남성적인 시각이 아닌가?’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 배우는 그걸 이해못하는 건 네가 여자이기 때문이지 <p.193> 라고 대답하며 죽은 개 인형의 세례를 받는다.
(죽은 개 던지기 연극은 개인이 어떤 발언을 하면 관객들은 그에 대한 의견 표시로 죽은 개 인형을 던진다.)
이 지점에서 히카리-오에-아버지의 수직적인 관계에만 머물고 있던 소설은 외부의 세계로 확장하게 된다. 더 이상 익사 소설과 연극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우나이코는 마음의 낭독에 이어서 ‘메이스케 어머니’ 전승의 연극을 부활시키기로 한다. 메이스케 어머니는 이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연극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환생한 메이스케(어린 메이스케)의 살해와 메이스케 어머니가 강간당하고 문짝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삭제되었다. 우나이코는 이 부분을 살리고, 거기에 더해 큰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경험까지 연기하겠다고 말한다.
우나이코를 강간한 큰아버지는 문부과학성의 관리이자 일본 교육행정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서 그를 공격하는 것은 일본의 교육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막기 위해 두 명의 중년여성 교사는 우나이코에 접촉하여 연극해서 ‘강간 장면’을 지우라고 말한다. 연극에는 중,고등학생도 올 예정이다. 당신은 그 장면을 어린 학생들에게도 보여줄 셈이냐. 그런 것은 여인들의 곡소리로 충분하지 않느냐.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여성은 강간, 이라는 단어는 폭력적이니 rape라고 변형해서 말하는데, 우나이코는 이를 비아냥거리면서 미국에서 강간당한 소녀가 참 좋아하겠다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웃겼던 장면이다.
또한 오에는 해당 연극을 준비하는 와중에 아버지의 익사가 장교들의 ‘농담’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에의 어머니는 1부에서 불문과 진착을 앞둔 오에를 두고 거기 나와서 뭐 먹고 살래? 라고 비아냥거리는 친척에 반박하여 “이 아이는 커서 소설가가 될거에요.” 라고 말한다. 이는 일종의 농담이지만, 오에는 그 농담을 실현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에의 아버지 또한 장교들의 농담을 실현하여 익사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 어떻게 정치적 교육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천황살해까지 기획했는지 알게 된다.
황금가지에서 전승되는 이야기 중에는 국가의 쇠멸을 막기 위해 왕을 죽인다 <p.313> 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의 시대가 이어지는 것을 암시하며, 황금가지의 3부 The dying god이라는 소제목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나이코는 마음의 시대론을 언급하면서 ‘순사’라는 단어를 유독 의식한다. 마음의 선생이 구시대인 자신이 죽는 것으로 새 시대로 나아간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시 일본인에게는 죽음, 혹은 살해를 통해 새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황금가지 속에 있는 신화적 장치를 이용하여 비춰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다시피 일본은 오랫동안 천황을 신과 동일시했으며, 이는 우나이코가 낭독한 마음에서도 드러나는 요소이다.)
이러한 대립들은 3부에 가서 가시화되는데, 우나이코를 강간한 큰아버지가 등장하고 다이오는 그와 협력하여 히카리와 오에, 그리고 우나이코를 납치한다. 여기서 큰아버지는 우나이코를 다시 한 번 강간하고, 다이오는 그를 총살함으로서 오에의 아버지가 실패했던 궐기의 축소판을 재현하게 된다.
2.
오에 겐자부로의 익사 소설은 어디가 창작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그 지점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의 이력을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처음부터 창작이라고 여길 확률이 높고, 반대로 작가의 이력을 어중간하게 알고 있는 독자라면 대부분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이처럼 익사에서 움직이고 대화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지루하고 정적인 삶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우나이코라는 여성의 등장은 오에의 중기 끝부분에서 갑작스럽게 변화된 여성서사에 초점을 둔다. 전후세대의 작가로서 고통과 슬픔이 자기 문학의 오랜 테마였다고 고백한 그가 뒤늦게 여성의 비애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로부터 후기 소설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소설은 만엔원년의 풋볼 이후로 꾸준히 보여주던 자기검열(이라기 보다는, 오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부 작품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자기검열)을 통해 오에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뇌를 보여준다. 자신의 고향에 내려오던 전승과 신화시대의 관념을 접목시켜 근현대의 일본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온다. 이처럼 오에의 문학들은 만엔원년의 풋볼 이후로 단순한 자기복제 이상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여기서 문득 하루키가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는 오에 겐자부로의 발자취를 성실하게 따라온 독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 담긴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양한 대립과 상징이 교차하면서 동시에 오에는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표출된 일본의 근현대를 한 작품에 뭉쳐넣으려고 한다. 그에 반해서, 사소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탓에 격정적인 대립이나 드라마틱한 장면을 통해 독자를 휘어잡는, 감각적인 재미 또한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니까, 더럽게 재미가 없다.
오에의 후기문학은 오에 겐자부로라는 인물과 그의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현대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중기문학은 현대문학 단편집에 실린 몇 편과 치료탑행성이 전부라서 한국 독자로서는 이 연계를 따라갈 수 없다.
(절판된 고려원 전집을 다 구해서 읽거나 원서를 읽는 변태가 있다면 모를까)
과연 이런 소설을 좋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에 겐자부로는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통해 소설이 자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외부로 확장되는 보편성을 이루고자 하지만 그 보편성은 넓게 퍼져봐야 일본인, 그리고 일어일문학과 전공자, 일빠 수준에서만 머무는 게 아닐까? 오에와 히카리의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이 소설은 자폐적인 사소설의 장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현실에 기반한다고 한들 독자가 히카리의 재활치료나 그의 개인적인 습관, 그리고 여동생이 보내는 편지에서 과할 정도로 올케를 존경하는 듯한 의사표시 등의 낯부끄러운 개인사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광경이지만 그 현실이 소설에서도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어째서 그런 것까지 재현하려고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괘씸한 측면까지 있다.
히카리의 탄생 직후에 어느 시점까지 오에의 문학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그 이후에는 오히려 히카리의 존재가 오에의 문학'력을 갉아먹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나이코를 통해 표현되는 국가가 국민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순환, 그리고 다이오의 일본관리 살해로 끝나는 궐기의 재현은 서사적으로 보면 멋진 마무지리만 그 안에 내포된 주제의식은 좌파인 오에게 바라는 이상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거대한 딸딸이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나이코가 큰아버지의 강간으로 임신하고 큰어머니에 의해 낙태된 아이를 다시 낳는 것(소설 내에서는 암시만 되었지만, 소설에서의 암시는 사실상 확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은 메이스케 어머니 전승에 나타난 메이스케의 환생과 같은 구도이며 오에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네가 죽더라도 다시 널 낳겠다.’ 라는 결의의 표현이자 시대의 ‘계승’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징을 위해 우나이코의 강간을 재현하는 것 또한 남성인 오에의 폭력적인 시점에서 그려내는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에는 자기검열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자신의 내면에 고립된 인간이 보여주는 자기검열의 한계는 뚜렷하다고 봐야되지 않을까. 특익사의 프롤로그에서 오에가 ‘아름다운 애너밸 리, 싸늘하게 죽다.’의 도입부를 우려먹으면서 한 변명, ‘나처럼 나이먹은 사람에게 있어서 새로운 만남은 한정되어 있다.’처럼 노년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간관계 또한 한정되어 있을테니 오에의 자기검열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3.
결론적으로,
오에의 이 작품은 후기문학답게 개인의 내밀함과 일본 근현대사를 꿰뚫는다고는 하나, 그 표현 방식이 자기복제적이고 불필요한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머리로는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가슴으로는 사랑하기 힘든 작품이다.
오에박이 변태가 아니라면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문학동네든 나발이든 같잖은 후기문학은 집어치우고 중기 문학이나 많이 번역하라고ㅡㅡ
일단 문학동네는 내겠다고 한 만년양식집 번역부터 해주고ㅇㅇ
참고로 내가 읽었던 작품들 중에서 익사에 인용됐다고 여기는 것은 <만엔원년의 풋볼> <순수의 노래, 경험의 노래> <체인지링> <아름다운 애너밸 리, 싸늘하게 죽다> 정도인데 사실 안읽어본 것들 중에서도 엄청 인용됐을 거다. 인용됐어도 대부분은 티도 안나고. 하여튼 자가복제 존나 심함
결말은 킬프군단의 자가복제임
오에가 스포한 거로 보면 도 살짝 섞여 있음
소재 자체는 꽤 재밌어보이는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