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p. 
병이 난 건 처음이었다. 결국은 하나의 교훈으로 남았지만 그다지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병간호를 해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늦게까지 남아서 나와 함께 체스를 두며 놀아주었다. 엄마와 나누던 독백마저도 소홀히 한 셈이었다. 에르미니아 고모는 내게 턴테이블과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라면서 노란색 흔들의자를 선물해주었다. 마달레나는 점심식사를 방으로 가져다주었고 체온을 재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내 이마에 키스를 해댔다. 


"아프니까 좋은데." 저녁 무렵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지. 근데 사람들은 금방 지치거든. 동정심은 물고기랑 같다니까. 셋째 날에는 꼭 상해버린단 말이지." 



111p.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는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나이에는 그랬다. 단지 시간이 흐른 뒤에, 말들의 향기와 색깔이 바래고, 무엇보다도 아픔이 잊혔을 때 가끔씩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죠.


 저는 사실 이탈리아 문학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가장 최근이래봤자 얼마 전에 돌아가신 움베르토 에코,


 집에 있는 우주만화의 저자 칼비노


 그렇게 한참 쭉 올라가면 단테와 보카치오가 있습니다. 끝.


 이탈리아 문학에 대해 아는 정도가 이 정도라서, 사실 모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즉,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느낌만으로 이 소설을 집었지요. 예, 제 선택은 꽤 괜찮았습니다. 이 소설은 무척 좋은 소설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요. 집안, 학벌, 재능, 이것저것.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첫사랑과 결혼해서 돈 걱정 자식 걱정 없이 백년해로를 할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님 말구요.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못난 부분을 그냥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건 무척 중요한 겁니다. 자신의 못난 부분 때문에 생긴 자격지심이 다른 부분마저 뒤틀어버리고 상대와 자신에게 상처를 줍니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며 자학의 정서를 남과 공유하지요.


 이걸 우리는 찌질하다고 표현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레베카는 '정말'못생겼습니다만, 찌질하진 않습니다.


 다만 다른 또래들보다 빨리 조숙해졌을 뿐입니다.


 도리어 선남선녀인 부모님을 걱정하는 사려깊은 딸이지요.


 레베카는 자신의 외모를 고친다거나 남자를 만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어떤 성취를, 자존감을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지만, 그 역시 성공을 향한 사다리로 보지 않고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요.


 소설에서는 이런 상황과 그걸 감당하는 과정만 보여줍니다.


 뾰족한 문장과 단어로 이루어진 바늘로 정신차리라며 독자를 찌르거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훈계조로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이 아니지요.


 때문에 이 소설은 서술하는 문장과 함께 무척 우아하고 웅숭깊습니다.



 아마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건, 외면 보다는 내면을, 사람의 됨됨이를 보라는 뻔한 진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혜롭게 견디는 성장.


 그리고 '못생긴 여자'에게도 제 나름의 삶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이상,


 '못생긴 여자' 감상문입니다.



 덧. 이 소설에 나오는 근친상간 코드는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적당히 들어간 독특한 향신료와 같은 풍미여서,


 소설의 맛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바람의 그림자'도 마찬가지였는데,


 카톨릭 문화권 소설의 전통인가요?





147p.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난 그렇게 많이 늙지 않았어." 나를 돌아보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아직 한참 어려서 그런 거야. 게다가 마달레나가 나를 노인네라고 부르니까.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긴 하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지는 마라. 세상에는 모든 걸 남김없이 알고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투성이야. 아내는 남편이 바람피웠는지 궁금해하잖아. 그런데 그걸 또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한가? 절대로 아니거든. 게다가 연인들은 옛날 애인에 대해서까지 캐묻잖아. 천박한 짓이지! 사람이 매일,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행동하거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거야. 성경 말씀 중에 옳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길거리 모퉁이마다 새로운 삶이 기다린다는 말씀이야. 인생이 끝났다는 말은 절대로 믿지 마, 절대로. 명심해두거라." 






 재작년에 봤는데 나만 아는 좋은 소설 리뷰 써보라길래 생각나서 써봤음


 읽고 알라딘에 팔았는데 괜히 팔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