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작가 소개
1. 드니 디드로의 생애
그는 1713년에 태어났다. 그는 랑그르의 칼 장수 아들이었다. 랑그르와 파리의 예수회(會) 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마친 후, 파리대학교에서 인문학·철학 등을 고학으로 전공했다. 1745년경부터 철학적인 저서를 쓰기 시작했다. 회의사상(懷疑思想)에서 출발했으나 샤프츠베리의 영향을 받아 계시(啓示)를 인정하는 이신론(理神論)으로 옮겼으며,
공부에 전념하고, 지식욕과 글쓰는 정열에 불타 있던 그는 취직하기를 거부하고 문학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는 가난했으며, 어느 여직공 소녀와 결혼했다. 그는 개인 교수를 하고 서점 일을 해야 했는데, 32세에 거의 극빈 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을 때, 〈백과 전서〉(Encyclopédie)의 편집 지도를 맡게 된다. 그것은 그에 있어 구원이자 동시에 자기의 사상을 퍼뜨리고자 한 간절한 소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였으므로 그는 이 일에 평생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집필자들의 노력을 조정하고 외부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신중함을 기했는지 모른다. 철학과 역사에 관한 몇 가지 사항들과 응용 과학에 관한 모든 항목들은 그 자신이 맡았었다. 그는 그것들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공장들을 구경하고, 모든 기술들이며 모든 기계들의 작동을 연구했다. 이 27년간에 걸친 벅찬 노동은 그의 튼튼한 육체를 망가트렸다.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사상에 취하여, 자기의 몸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자기의 여력을, 찬란한 회화며, 수많은 편지며, 훗날 그의 유고(遺稿) 속에서 발견된 그 소품들 속에 마냥 쏟았기 때문에, 〈백과 전서 간행 후 4년, 대혁명 전 5년에, 디드로는 죽었다(1784년).
2. 드니 디드로의 작품 특징
그의 철학저서로는 철학 저서로 철학 저서로 《달랑베르의 꿈 Le Rêve de d’Alembert》, 《부갱빌 여행기 보유(補遺) Supplément au Voyage de Bougainville》등이 있으며, 소설은 《수녀 La Religieuse》, 《라모의 조카 Le Neveu de Rameau》, 《운명론자 자크》등이 있다.
희곡 및 연극론, 전람회 비평으로 《살롱》, 《회화론》, 《배우에 관한 역설》등이 있다.
디드로는 자연의 우월성을 주장했는데 그의 모든 사상은 하나의 중심적인 사상의 둘레를 돌고 있다. 그것이 앞서 말한 자연의 우월성인데, 이를 그는 루소 이전에 주장했다. 그에 있어 자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맨 먼저 무신론이었다. 하느님은 자연 속에 있지 않다. 세계는 하나의 광대한 당구대이고, 거기서는 무수한 공들이 굴러다니고, 서로 교차하고, 서로 부딪치고, 필요한 움직임들의 착잡한 그물을 이루고 있는데, 이 움직임들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따라서 디드로는 기독교 도덕에 공격을 가한다. 왜냐 하면 기독교 도덕은 자연을 속박하고 자연적인 기능에서 유래하는 정당한 쾌락들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결, 정숙, 절제, 겸손, 위엄, 성실, 이런 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고, 사회가 생각해 낸 편견이요 구속이다. 참다운 미덕은 선행(善行)이라는 한 마디에 그친다.
끝으로 자연이란 더 이상 디드로에 있어서는, 17세기가 만사 제쳐놓고 연구하던 저 내면적인 자연, 데카르트가 그 존재를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고 그 인식이 외부적인 자연의 인식보다도 더 쉽다고 믿고 있었던 저 내면적인 자연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Il. <수녀 La Religieuse> 작품소개
1. 인물소개
쉬잔 쉬모넹: 어머니의 사생아로 아버지의 눈치, 어머니의 속죄 때문에 강제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자유를 갈구하며 수녀원을 빠져나오려 하지만 되려 심각해진다.
크루아마르 후작: 쉬잔 쉬모넹이 도움을 요청한 인물.
변호사 마누리: 쉬잔 쉬모넹의 서원식 취소를 듣고 감명받아 그녀를 도우며 소송을 제기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생트 마리 수녀원장: 쉬잔 쉬모넹이 처음 수녀원에 들어와 서원식을 취소하려 하지만 강요함.
롱샹 전임 수녀원장: 쉬잔 쉬모넹의 ‘엄마’같은 존재. 그녀를 매우 아끼고 보듬어줌.
롱샹 후임 수녀원장: 매우 악독하고 편협한 인물. 전임 수녀원장의 총아들을 매우 싫어하며 쉬잔 쉬모넹을 반죽음까지 내몸.
위르실르 수녀: 롱샹수녀원에서 오로지 그녀만 쉬잔 쉬모넹을 보살펴주는 인물.
아르파종 수녀원장: 조울증을 가진 인물. 쉬잔 쉬모넹을 꾐해 동성애를 즐김. 마지막에는 파국에 치닫음.
2. 줄거리
주인공 쉬잔 쉬모넹은 셋째중 삼녀로, 부모가 장녀와 차녀를 결혼시키면서 그녀를 시집보낼 지참금이 없자 그녀를 수녀원에 강제로 보낸다. 잠시 동안의 머묾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올바르게 생활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기다리지만 돌아오는건 계속 수녀원에 머무르라는 강요뿐이었다.
어둡고 침침한 속박의 장소인 수녀원보단 자유를 갈구했던 그녀는 결국 서원식을 취소하게 되고 변호사 마누리씨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게된다. 어머니는 딸을 불러들여 훈계하며 다시 그녀는 롱샹수녀원으로 옮기게된다. 거기서 어머니 같은 존재인 모니 수녀원장을 만나게된다. 그녀의 보살핌으로 수녀로써 계속 수녀원에서의 삶을 이어나가지만 모니수녀원장은 결국 죽는다. 후임으로 생트 카트린 수녀가 왔는데 그녀는 전임자의 총아인 쉬잔 쉬모넹을 매우 모질게 대한다. 그녀가 소송을 걸었다는 것을 알자 그녀를 더욱더 모질게 대한다.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거의 고문에 가까운 괴롭힘을 선사한다. 이것에 분노한 부주교는 그녀를 아르파종 수녀원으로 보낸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아르파종 수녀원장은 그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동성애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된다. 이 것을 고해신부에게 고해하면서 결국 사이는 틀어지고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에 그녀는 수녀원을 탈출하여 파리 시내에 어느 세탁소에서 일을하며 크루아마르 후작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서한을 보내면서 이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III. 작품 분석
1. <수녀>에서 느끼는 디드로의 철학과 생각
앞서 말한 디드로의 작품특징에는 무신론적 경향이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자였던 그는 원래 아버지의 강요로 성직자가 되기위한 랑그르의 예수회 소속학교에 보내졌다. 이는 마치 쉬잔 쉬모넹이 부모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것과 비슷하다. 그의 삶은 쉬잔 쉬모넹과 별반 다르지않았다.
쉬잔 쉬모넹이 여러 수녀원에서 겪었던 그런 부조리들을 이 작품에 서술함으로써 디드로는 종교를, 교회를 공격했다. 수녀원은 들어오는건 마음대로 되지만 나가는건 안되는 부조리 그 자체였다. 쉬잔 시모넹은 이 편지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가혹한 박해를 그리고 있는데 그녀가 신앙심이 깊고 순진한 어린 소녀에 불과하며 그녀가 수녀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결코 무종교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 소명을 받지 못하였다는 순수한 종교적 이유라는 점이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큰 호소력을 부여한다.
각각 개인들의 악행이 아닌 수녀원이라는 비인간적 권력의 부조리라고 이 작품은 말한다. 이것을 무기로 계몽주의자 디드로의 속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깊게 알게된다. 또한 디드로는 변호사 마누리씨의 변론을 통해 자기의 주장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선정을 베푸는 국가라면 정반대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어렵고 나오는 것은 쉬워야 마땅할 것 입니다. 게다가 실제로는 정당한 것임에도 형식상 조그만 하자만 있어도 무효로 처리되는 법적 절차가 비일비재한 터에 유독 종교적 서원만은 그러한 엄격한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수녀원이 국가의 형성에 그렇게 필요불가결한 요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도사와 수녀를 만드셨습니까? 교회는 수도사와 수녀원 없이 존립할 수 없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미친 처녀들을 아내로 두고자 하시겠습니까? 인류는 또한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습니까? 인류의 번창에 장애가 되는 이 제도를 축소할 필요는 없을까요? 수녀원에서 날마다 하는 기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동전 한 푼만한 값어치라도 있는 것일까요? 사람을 사회적 동물로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담 속에 가두는것은 허용하실까요? 불안정하고 약한 존재인 우리가 한순간의 선택인 서원의 구속에 묶이는것을 옳다고 인정하실까요? ………….한번 품은 증오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곳, 침묵 속에서 정염이 독버섯처럼 은밀하게 자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잔인성과 호기심의 온상이 어디입니까? 우리는 이 은신처의 실정을 알지 못합니다. 결코 알지 못합니다.”
이 <수녀>라는 작품에서 마누리씨가 쉬잔 쉬모넹을 변론하는 모습은 마치 디드로가 현현한듯한 모습을 비춘다. 국가란?, 법의 공평성, 카톨릭의 부조리한 종교권력, 루소의 사상, 인간 본성등을 총 망라한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과 자유에 대한 그녀의 갈망은 나의 가슴을 끓게 한다.
2. 이 작품에서 보는 다른 작품.
이 작품 <수녀>의 초반, 생트마리 수녀원장이 쉬잔 쉬모넹을 수녀원에 계속 있게하기 위하여 설득하는 장면은 마치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될까? 그렇지만 어디 가서 내가 권했다고는 하지 마라. 꼭 비밀을 지켜야 해. 나는 조금이라도 비난받을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디 한 번 따져 볼까? 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뭐지? 수녀가 되는 것? 그럼 그렇게 하렴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 않아? 앞으로 2년 동안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뿐이니까. 사람의 운명이란 모르는 것이고, 또 2년이란 기간은 짧은 세월이 아니야. 그러니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잖아…”
<설득>에서 레이디 러셀은 여주인공 앤에게 재산은 없지만 촉망받는 앤트워스 대령을 포기하라고 설득한다. 그 결정은 자기자신 앤이 하는 것 이지만 가장 의지하는 러셀의 설득이 아니었으면 일찍히 더 행복한 결말을 맞을수 있었을 것 이다. 쉬잔 쉬모넹도 그렇다. 그저 옆의 있는 사람의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설득)에 빠져 악의 늪에 빠진 것은 그녀 자신의 결정의 결과지만서도, 정말 가슴아프고 애처롭다.
작품 중반에서 생트 카트린 수녀원장이 쉬잔 쉬모넹을 죽음 직전까지 괴롭힘을 할 때 카프카의 <소송>이 생각나게 된다.
“하느님께 영혼을 맡기지 않으려 하니 할 수 없지. 너희들이 할 일을 알고 있지? 지체없이 행하도록 해라…”“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수녀님들, 오래 고통 받지 않고 죽도록 해 주세요…” 저는 목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사형을 받는 사람은 사형이 집행되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떄 저는 사형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카프카의 <소송>에서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만 결국 소용없이 끝나고 만다. 위협적인 소송절차의 압력에 직면한 k에게 과연 죄가 있는것인가. 그리고 <수녀>에서 쉬잔 쉬모넹은 자기 변호조차 못하고 그저 권력의 압력에 직면한 순수한 인물이다. 이 장면은 <소송>에서 보듯 순수한 인간이 권력앞에서 얼마나 한없이 작은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머니와 쉬잔 쉬모넹의 관계에서도 보자면 쉬잔은 어머니의 사생아다. 최근 이에 대해 비슷한 느낌의 소설인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보자.
주홍글자의 헤스터 프린의 딸 펄은 사생아임에도 불구하고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 이 작품 <수녀>에서의 어머니의 사생아인 쉬잔은 수녀원 이라는 곳에서 고난의 삶을 보낸다. 이 얼마나 다른 운명인가.
“같은 사실이 신의 시험일 수 도 있고, 악마의 유혹일 수 도 있다.” -쉬잔 쉬모넹
같은 사생아 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란 존재가 신의 시험을 받는가 아니면 악마의 유혹에 끌리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부조리하다.
잡탕쓰레기 내 블로그에서 퍼왔다. 작품 재밌다 읽어봐라.
레포트 썼던거 올린느낌인데
ㄴ ㅇㅇ 좀 수정함
이거 나도 여기서 추천받고 손댔는데 참 좋게 읽었던 책인데, 읽으면서 쉬잔 시모넹에게 느끼는 그 강렬한 이입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참 궁금하단 말이야. 정말 감동적이고 애달픈데 뭐가 특출난건지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