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거지? 하고 생각해봤는데
원래 글이란게 그런건가 싶기도하네
쨋든 예를 하나 들어보겟슴.
ava 아와는 극복하는 것, 넘어선다는 의미임.
iccā 잇짜-는 갈망, 원하는 것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임.
이 둘이 합쳐져서 avecca 아웩짜가 되는데, 갈망을 극복한다는 것을 뜻함.
avecca+pasāda 아웩짜에 믿음, 따름을 뜻하는 빠사-다가 붙으면
aveccappasāda 아웩짭빠사-다라는 합성어가 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함에서 오는 깨질 수 없는 믿음이라는 뜻임.
아니 왜 갈망의 극복에서 갑자기 가르침의 이해가 튀어나오는 거임? 싶을 수 있는데
자신이 가르침을 따르면서 그 생활 속에서 스스로 그것이 진리임을 확인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갈망의 극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갈망의 극복과 가르침의 이해는 하나로 묶인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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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웩짭빠사-다의 대표적인 예시는
ariyakānta sila 아리야깐따 실라가 있음.
소따빤나의 깨질 수 없는 도덕적 행위를 뜻하는 단어임.
소따빤나는 이제 성자의 첫 번째 단계인데
부처님의 정법. 담마를 이해함으로서 얻게 되는 과위임.
일단 소따빤나가 되면, 그는 앞으로 절대 4악처(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에 떨어지지 않게 됨.
화약이 있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것처럼
이전의 악행으로 인한 업의 씨앗은 그것이 촉발될 만한 알맞은 조건성을 충족시켰을 때 과보로 돌아옴.
소따빤나는 바른 법에 대한 이해로써,
스스로 악처에 떨어지게 될 만한 업을 더 이상 짓지 않으며,
과거에 지은 악업이 촉발될 만한 조건성을 충족시키는 행위 역시 하지 않음.
아리야깐따 실라는 바로 이것을 말함.
단어를 풀어보겠음
ariyakānta sila는
ariya 아리야. 성스러운, 성자의, 성자. 등등의 뜻
sila 실라. 보통 계戒로 번역하는데, 여기서는 도덕적인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행위를 말함.
kānta 깐따.
깐따는 다시 ka와 anta로 나뉨. ka는 떠나다, anta는 극단.
그래서 아리야깐따 실라는
극단을 떠남으로써 얻게 되는 성스러운 행위라는 뜻임.
그게 곧 소따빤나의 깨질 수 없는 행위인 거지.
극단을 떠났기 때문에 결코 깨지지 않는 것임.
놀라운 건, 이게 지금의 한 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영구적인 변화라는 점임.
악처에 떨어질 만한 악업을 짓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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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불교의 가르침이 빠알리어와 조화를 이루는 게 신기했음
부처님을 처음도 잘 설하시고 중간도 잘 설하시고 끝도 잘 설하시는 분이라는 게 체감이 되네..
책이야기: 니까야랑 청정도론 읽고 정리하려고 쓴 글임.
ㅋㅋ 역대급
그냥 조어방식이 그런거아님? 그리스어랑 비슷한거같은데
그리스어는 잘 몰름.. 근데 이런 조어방식은 너무 재밌네 계속 배우게됨..
그리고 부처쯤 되면 부처가 쓴대로 단어 뜻이 바뀔법도 하고
실제로 빠알리 단어의 뜻이 세간적 의미와 출세간적인 의미로 나뉨. 부처님께서 특정 맥락으로 말씀하셨을 때 세간적 의미로 읽으면 안 되고 출세간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