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175일2021/04/15


- 오늘 읽은 책


1. 질서 너머 - 조던 피터슨 - 웅진지식하우스, 김한영 역

264p ~ 304p - 41p


2. 인간이란 무엇인가 - 데이비드 흄 - 동서문화사, 김성숙 역

87p ~ 90p - 4p


3. Winnie -the- Pooh - A.A.Milne - EGMONT

38p ~ 49p - 12p





-175일차, 법칙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법칙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이번 챕터는 실제 몇가지 상담치료 사례를 중심으로, 상담 과정 중 내담자에게 벌어진 일들을 내외적으로 고루 묘사해, 과거의 기억을 살펴보고 재구성하는 행위가 심리적으로,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흥미롭게 풀어낸 파트이다. 어릴적 끔찍한 기억에 사로잡힌 내담자.. 어른들을 천사로 믿고 자라더니 악의와 마주치자 일상이 망가진 내담자.. 이해하지 못하는 적의에 사고까지 마비되버린 내담자.. 이런 경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담자들의 상황이 흥미로운 만큼, 각각의 치료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다. 심리치료에 대해 문외한인 만큼, 선입견, 편견도 있지만, 반대로 신비하게 바라보고 과장시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실제 사례라는 점에서 더 흥미있게 읽은 것 같다.

각각의 사례에서 시도된 치료는 상담치료, 최면치료,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그 과정과 경과가 참 놀라웠다. 상담치료는 사려깊은 대화를 통해, 최면치료는 최면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목도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문제를 분해하고 신중하게 다루어 현재의 고통에 대한 원인을 파악한다. 행위 혹은 약물로 증상을 제거하는 식의 처방을 하지 않고 오로지 정신적 접근으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측면 또한 새삼 흥미로웠다. 다시 치료과정을 설명하자면,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기억 혹은 관념을 인과적으로 재구성해 심리적 증세를 해소하고, 외부적인 고통을 자연히 소멸시키는 원리인데, 이 원리를 실증적으로 체계화시켜 만든 글쓰기 프로그램이 세번째 치료법으로 등장했다.

 글쓰기 프로그램은 기억이 닿는 데까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주요 사건들을 뽑아 시대순으로 글 써보기를 요구한다. 이 사례의 경우, 내담자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사소통 능력과 사고가 마비된 상태였는데, 피터슨이 천천히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며 프로그램을 실행한 결과, 글을 제대로 표현할수록, 시대를 지나올 수록, 내담자 스스로 점점 더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의사소통 및 사고능력 또한 명료한 수준까지 회복되었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 나 또한 독서 마라톤을 달리면서 독서 일기를 써보고, 이런저런 글쓰기 경험들이 실제 사고에도, 도구로써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으니, 정신을 글로 표현해내는 행위가 다시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생각해볼만하다.

 우리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글쓰기가 그 기준확립의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지는 않을까?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글쓰기 전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가능성들이 문장이 되어 초라한 현실로 나타난다. 꾸역꾸역 글을 적어가고, 온갖 수정과 편집을 거쳐 읽을 만한 글이 되면, 운이 좋아 가끔 칭찬도 받는다. "모든 것으로 남으려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느니 실제로 어떤 것이 되는 편이 훨씬 낫다" 는 피터슨의 말 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남을 빠에 초라한 현실을 발전시키는 것이 낫다는 점을 요즘 체감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피터슨은 이러한 행위가 일종의 창조임을 이야기한다. 정해지지 않은 무한한 미래의 무한한 갈래를 단 하나의 현실로 좁히는 능력, 그것이 우리 인간의 능력임을 이야기한다.

  피터슨은 단지 감정을 토해내는 수준으로는 치료효과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을 스스로 다루어낼 수 있도록, 즉 고통과 그 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과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다시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게 되는데, 질서 너머 각 챕터마다 법칙의 훌륭한 예시와 목표로써 성경 구절이 인용된다. 이번에는 창세기가 인용되며,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는데 '말씀'을 사용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공허를 뜻하는 단어가 히브리어에, 그 히브리어가 다시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신의 이름과 관련되어있다는 소소한 설명이 재밌기도 했지만, 말씀의 의도는 사랑과 용기와 진리가 결합된 무언가여야 한다는 지적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구하고자 하면 얻을 것이다 라는 성경 구절 속에 담긴 진짜 의미는, 구하려는 것이 사랑, 용기, 진리가 결합된 일종의 선한 무언가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곰곰히 상담치료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내담자에게는 오직 사랑만이, 오직 용기만이, 오직 진리만을 필요로 하지않았다. 세가지 모두가 결합된 무언가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한가지를 더하자면 인내를 더하고 싶다.

 새삼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만 강조하고, 용기만 강조하고, 진리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널렸다. 무척 낭만적이라 듣기도 좋다. 하지만 괴테는 낭만적인것이란 병적인 것이라 지적했다. 누가 그 세가지를 결합해 이야기해주는 적이 있던가? 잘해야 두가지다.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할때, 정말로 과거를 돌이켜보고 고통을 마주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 혹은 나처럼 독서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정성껏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마치 신처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려 할 때, 그 의도는 오로지 사랑, 오로지 용기, 오로지 진리만을 추구하기보다, 통합되어 초월적인 무언가를 추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로또를 사도 신이며 부처님이며 알라며 천지신명이니 하는 온갖 초월자들에게 구걸한다. 그런 짓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을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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