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왜진
[일반] 히틀러 전기에서 비트겐슈타인이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데
익명(175.208)
2021-04-17 04:10
추천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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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저술한 일종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는 동창 비트겐슈타인을 비하하는 부분이 나온다. “레알슐레에서 나는 유대인 소년을 한 명 만났다. 우리는 모두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 이유는 경솔한 그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급생들이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위세에 눌려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지, 아니면 히틀러의 주장대로 그가 경솔했기 때문에 따돌렸는지 진실은 알 수 없으나 히틀러가 비트겐슈타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단 한 번도 히틀러와의 소년시절 추억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비트겐슈타인에게 히틀러는 별 존재감이 없는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콤플렉스는 그런 것이다. 콤플렉스를 느끼는 그 상황을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콤플렉스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키워나가는 비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콤플렉스일 테니까.
우선 비트겐슈타인 가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시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카네기나 로스차일드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철강 재벌이었다. 유대인 가문이긴 했지만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부와 권세는 대단했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재력은 당시 빈 예술계 전체를 먹여 살리다시피 할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의 후원 없이 빈의 예술은 존재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비트겐슈타인은 명석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이런 금수저 비트겐슈타인의 호사를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며 종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던 소년이 있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의 적(敵)으로 설정하기 위해 많은 논리를 동원했다. 다들 알다시피 가장 중요한 게 유태인이 독일의 부를 독차지했다는 비난이었다. 그 다음 논리가 재미있다. 히틀러는 난데없이 유대인들이 예술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을 염두에 둔 분노였다.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는 부를 쌓은 유태인들이 다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한 집안은 비트겐슈타인 집안이 거의 유일했다. 한 가문에 대한 적의가 유대인 탄압의 논리가 된 것이다. 히틀러의 한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는 한 지역을 점령하고 나면 가장 먼저 박물관과 미술관을 접수해 그곳에 있는 유물과 작품들을 약탈했다. 히틀러는 ‘히틀러 박물관’을 세워 그 약탈품들을 보관했다. 히틀러 박물관은 다름 아닌 린츠
린츠에 있었다.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이 함께 다녔던 레알슐레가 있던 바로 그 도시다. 소름이 돋는다. 왜 하필 베를린도 뮌헨도 함부르크도 아닌 린츠였을까. ‘린츠의 한(恨)’이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히틀러는 굳이 린츠에 제철소를 세워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공장을 흡수해버리기까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