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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본 표지 엄청 멋있다. 나는 국역본 펭귄과 솔로 읽었다.
성, 그곳은 결코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다.
나는 카프카의 단편들에서 성 안에 사는 인물들을 보았다. 광활한 야생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다가, 인류문명으로 잡혀와 교육받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한 원숭이. 끝임없이 자기만의 성인 굴을 파 들어가는 한 짐승. 그리고 전형적인 성의 노동자였지만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성 밖으로 쫓겨나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흉측한 벌레. 이 성 안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원숭이는 야생을 그리워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멀리 왔음에 낙담한다. 굴을 파는 짐승은 누군가 자신의 굴로 다가오는 듯한 환청을 들으며 불안에 떤다. 흉측한 벌레는 성으로부터 퇴출되었으니 존재의 의미를 부정당하고 결국 아버지 손에 죽어버린다. 성에 들어간다는 행위는 자기 발로 이런 세상에 뛰어들겠다는 소리다. 미친 짓이지.
하지만 우리의 카(K)는 그 미친 짓을 감행한다. 독문과 다니던 사람이 K는 ‘카’라고 읽으면 된다고 한다. 한영키 누르기 힘드니까 앞으로 카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성의 억압과 통제는 너무나 강력해서 성에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린다. 카는 자기 자신이 측량사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카를 조롱할 뿐 믿지 않는다. 카를 측량사라고 믿게 되는 건, 성에서 카가 측량사라고 ‘정해준’ 이후부터이다. 성의 전화를 받고나서야 모든 사람들이 카를 측량사라고 인정하고 180도 다르게 대접해준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도 그를 알아보고 측량사님이 아니시냐고 물을 정도다. 또 카가 나중에 따라 온다고 말했던 조수 두 명도 카가 알고 있던 옛 조수가 아닌 성에서 정해준 거 같은 초면의 두 남성이다. 카는 자기 자신이 주장하고 선택했다고 착각하지만, 천만에 말씀. 사실 모든 건 성이 정해주는 거다.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든, 성에서 인정해주지 않으면 다 개소리가 되는 거다. 하지만 카는 자신만의 착각에 빠진 채 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무한 뻘짓을 시작한다.
카의 뻘짓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가까워 보이던 성을 향해 걸어가지만 가면 갈수록 가까워지기는 커녕 오히려 멀어져가서 이거 큰일이다 싶어 겨우 찾아 들어간 집에선 외지인이라 쫒겨나고, 설매를 얻어타 도착한 여관엔 조수란 이름의 트롤 두 마리 덕에 진땀을 빼는 가 하면, 클람에게 정식으로 채용됬다는 편지도 받았으나 나중에 가니 이게 무슨 행정상 착오라고 하질 않나, 미안한대로 학교 교직원으로 일해란 말에 OK 했다가 쪽팔리는 일만 당하고, 조수랑 도중에 만나 사귀던 프리다랑 된탕 싸우고 헤어진 뒤 아쉬운 대로 알고 지내던 바르나바스 집에 따라 들어갔다가 부당한 처우를 받고있는 아말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위로하며 정을 쌓고 있는데, 프리다가 이걸 보고 좀 아니꼬았는지 카를 불러다 된탕 싸우고 ㄹㅇ루다가 삐져서 헤어져버리고, 그런데 또 바르나바스가 누가 부른다고 어디 호텔로 좀 찾아가봐라 하면서 23장까지 다다르게 된다. 사실 중간에 다룰만한 내용도 많지만, 내가 흥미 있는 부분도 아니고 사실 이해도 안 돼서 대충 넘어가겠다.
“그러니까, 난 아주 강력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지요. 프리드리히와 마을 사이에서. 난 성에서 일하는 그의 비서와 마을 비서들을 연결시켜주며 대개는 마을에 있는데 늘 그렇진 않지만 어느 순간에라도 성으로 올라갈 태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안 돼요.”
“난 이 문제를 계속 지켜볼 작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전문 인력을 이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일이 결코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 당신에게도 속상한 일이겠지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늘 기다렸고 정말 목마르게 기다린, 늘 합리적으로 생각해 도저히 만날 수 없다고 여긴 민원인이 거기 앉아있어요.”
무한 뻘짓이 이어지다 23장에 이르면, 카는 프리드리히의 비서 뷔르겔을 만난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로, 다른 방의 문과 혼동해 열어 재껴 들어가서 이 중요한 인물을 만났던 것이다. 뷔르겔은 성의 비서와 마을의 비서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인물이다. 카는 클람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뷔르겔에 비하면 클람은 쨉도 안 될 정도다. 뷔르겔에게 잘 부탁했더라면, 성에 직접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 성엔 당신 같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며 뷔르겔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근데 카는 이 천재일우의 순간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아니 이 미친 새끼는 성에 못 들어가서 안달아 난 주제에 왜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쳐 조는 걸까? 그건 카가 이미 성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진짜 정답은 다른 곳에 있음을 어렴풋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사랑! 달콤한 내 사랑!” 그녀는 이렇게 속삭였으나, K의 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에 정신을 잃은 듯 벌렁 드러누운 채 두 팔을 쫙 벌렸다. 그녀의 행복한 사랑으로 시간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았고, 그녀는 노래를 한다기보다는 탄식하듯 소 가곡을 불렀다. 그러다가K가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마치 어린애처럼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나오세요, 이 밑에 있다가 숨이 막혀 죽겠어요!”
두 사람은 서로 껴안았고, 그녀의 자그마한 몸은 K의 손에서 불타고 있었다. 두 남녀는 두서너 걸음 되는 거리를 정신없이 굴렀다. K는 계속 정신을 차려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둘은 클람의 방문에 쿵 하고 부딪힌 다음, 맥주와 그 밖의 오물이 흥건한 바닥에 누웠다. 거기서 두 사람의 호흡과 심장의 고동이 하나가 된 채 몇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줄곧 K는 길을 헤매고 있거나, 또는 자기보다 앞서 아직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먼 타향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공기조차 고향의 공기 성분과는 아주 다른 타향이었다. 그곳에서는 너무 낯설어 숨 막혀 죽을 지경이면서도 그곳의 어처구니없는 유혹에 빠져 계속 가면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클람의 방에서 무심히 명령하듯 낮은 목소리로 프리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적어도 처음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기분 좋게 어렴풋이 의식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3장의 한 장면이자, 개인적으로 성의 하이라이트요, 가장 황홀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카가 진실로 추구해야할 것은 성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카는 프리다와 함께 음식물 찌꺼기와 가래침으로 흥건한 바닥을 맨몸으로 구르고 클람이 자고 있는 방문에까지 몸을 부딪혀가면서 나눴던 그 황홀했던 사랑의 경험, 프리다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 느끼던 행복감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법 앞에서’라는 단편을 기억한다. 법 앞의 문과 문지기, 그곳에는 기골이 장대한 문지기가 지키고 서있다. 어찌어찌 문지기의 경고를 어기고 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면 그곳에 더 장대한 문지기와 문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골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단언컨대 그 안에 행복이란 없다. 답은 문을 떠나는 것이다. 이제 이 이야기에서 시골사람을 카로 문과 문지기를 성과 관리로 바꿔 생각해보자. 성에는 소르티니 같은 잔인한 관리가 지키고 있으며, 성 안에는 먼저 들어와 다른 사람들이 새로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대는 문지기 아닌 문지기들이 가득하고, 이미 안정적인 위치의 사람들은 지네들끼리 남들을 내려다보며 깔깔 거리고 조롱하고 있다. 그리고 아말리아 같이 성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어느새 사회에서 매장당해 버린다. 이와 같이 성에 뚫고 들어가 반항하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렇다면 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포기한 채, 프리다를 가슴에 안고 성을 떠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카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는 뷔르겔 앞에서 조는 것이다. 성에 들아가면 끝장이 나는 거다. 사랑하는 프리다와는 영원히 결별이며, 카도 아말리아를 상처입히는 속물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다. 카는 이미 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죽음과 같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이 피곤과 졸음으로 뷔르겔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용기가 부족해 성을 아예 떠나버리지는 못하지만, 성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멀어지기 위해. 구원의 실마리를 약간이나마 남겨놓기 위해. 너무 억지스러운 해석이었나? 그럼 그냥 이렇게 생각하자. 여기서 안 졸았으면 소설 완결이다. 그러니까 졸았다. ㅎㅎ 아무튼,
내가 아는 한 카프카 캐릭터 중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건 ‘선고’의 게오르크뿐이다. 결말에 게오르크가 강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이유로 이를 비극으로 여기는 건 큰 착각이라 생각한다. 게오르크는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반항했던 인물이다. ‘말도 지지리 안 듣는 호로자식 같으니라고! 그럴꺼면 차라라 나가 뒈져 버리거라!’ 라고 외치는 아버지에게 쌍뻐큐를 갈겨버리고 아버지가 명대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상남자다. 이 멋진 게오르크는 아버지의 부조리한 통제에 결코 굴하지 않았고, 차라리 물속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고 지켜나간 것이다. 게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자유로워져 “부모님, 저는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라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여유까지 갖게 된다. 카프카는 이 이야기를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밤을 지새워가며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읽으며 펑펑 울었다는 썰이 있다. 이는 카프카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게오르크는 선택이야말로 카프카가 바랐던 선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난 성의 카도 클람으로 대표되는 아버지, 성에게 쌍뻐큐를 날리며, 프리다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가길 바란다.
너무 뻔하고 유치하지 않냐고? 과연 그럴까? 사랑과 행복을 위해 부모 가족 사이를 전부 잘라버리고 떠나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버려둔 채 흔쾌히 떠나갈 수 있을까? 도망쳐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사실 나는 그러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카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치열하게만 살아왔기 때문에 사랑으로 느껴지는 활홍경에 낯선 느낌을 받으며 질식할 것 같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클람의 방해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을 기분 좋다고 여긴다. 이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행동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처음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라는 문장에 더 집중했다. 카는 분명 사랑의 낯섦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 안에 있을 땐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오로지 행복한 기운에 쌓여있었다는 것도 느꼈다. 그래서 카는 “적어도 처음에는” 즉 “사랑의 황홀경 안에 있을 때는”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현실로 돌아온 카는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 둘은 끝장이야.” 이라고 외친다. 카도 어렴풋이 성을 떠나가야 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엔 너무 힘든 일이다.
“프리다!” K는 그녀의 귀에 대고 말하며 클람이 부른다고 전해 주었다.
프리다는 타고난 순종심으로 벌떡 일어나려다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내고는 기지개를 켜고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안 가겠어요. 절대 그에게 안 가겠어요.”
K는 이에 반대하여 클람에게 가라고 다그치려 하면서 그녀의 블라우스 매무새를 고쳐주기 시작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프리다는 K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힘이라도 생긴 듯, 주먹을 불끈 쥐고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외쳤다.
“저는 측량사 곁에 있어요! 측량사 곁에 있단 말이에요!”
(...)
그는 밤새도록 여기 맥주가 흥건한 곳에 누워 뒹굴었는데, 지금은 그 냄새에 머리가 멍해질 정도였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 둘은 끝장이야.” K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나만 끝장났어요. 그래도 당신은 제 것이 되었어요. 안심하세요.”
프리다는 원래 연인이었던 클람의 문을 두드리며 “저는 측량사 곁에 있어요!” 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이제 끝장났지만, K 당신을 얻었으니 되었다.” 라고 말하며 사랑의 도피를 준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카는 결심을 굳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성으로 들어갈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성으로 가기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프리다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만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점점 멀리 돌아간다.
사실 내 바램은 너무 현실성이 없으니, 이 소설이 끝난다면 다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평생 뻘짓만 하고 프리다와의 거리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채 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혹은 결국에 성으로 들어가지만, 그에 따라 프라다와는 다시는 이어질 수 없는 차이가 생겨나는 것. 물론 가장 그럴싸한 결말은 이 두 개가 합쳐져서, 평생 뻘짓으로 프리다와의 거리는 벌어질대로 벌어지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바로 그 순간 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가되는 것이겠다. 하지만, 어떤 식의 결말이 됐건 카는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 하... 아니 근데 이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카가 도대체 뭐를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끔찍한 대우를 받아야 하느냔 말이다. 적어도 한 줌의 희망은 남겨줘야 할 거 아닌가? 나는 이딴 결말 마음에 안 든다 이거다. 그래서 결국 소설은 무한히 이어질 카의 뻘짓을 암시하고 미완으로 끝난다. 이놈은 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뻘짓만 계속 이어지겠지만, 아직 이야기가 끝나진 않았으므로 프리다와 함께 행복한 삶을 찾아 도망갈 거란 간절하고 헛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거다. 난 이게 ‘성’이 미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른 장편들도 크게 다른진 않을 것이다.
중간에 건너 뛴 이야기가 너무 많다. 사실 내가 이거 읽은 지 엄청 오래 됐는데, 오늘 문뜩 성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대충 한 번 훑고 써봤다.
사실 정독했어도 이거랑 별 다를 거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성도 한 세 번은 읽은 거 같은데 도당체 뭔 소린지 알아 먹을 수가 있어야지 ㅎㅎㅎㅎ 재미도 없고 ㅎㅎㅎㅎㅎ
몇년전 성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독후감을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오늘까지 왔다. 드디어 써 갈기게 돼서 후련하기도 하면서 너무 대충 쓴 거 같아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네
굉장히 부실하고 억지스럽고 반론의 여지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반론은 받지 않겠다! 그냥 내 망상 속에서 썩어가겠다!
왜냐면 물머기는 이해한 게 없어서 대답할 수 없어요 >ㅅ<;;
k를 카라고 읽는구나.... 결국 카프카의 소설은 그 자신을 담은거였나... 호크룩스 실화냐
저어는 책을 읽을 때 작품을 작가의 인생과 연관 짓는 걸 좋아해요. 특히 카프카는 이런 방식으로 읽기 좋은 작가죠 ㅎㅎㅎㅎ 그래서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도.
카프카는 변신 하나밖에 안읽어봤지만 언제나 부채감처럼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는 작가인데... 재미도 없으면서 세 번이나 읽으셨으면 그나름의 매력이 있는 모양이죠? 저도 언젠가 읽을 날이 오겠죠... ㅎㅎㅎ;
율리시스에 이어 성이라니... 님은 뭘해도 될듯
개추개추개추 bbb - dc App
다시 봐도 너모 좋은 리뷰인거같어 땡큐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