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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글들은 아무래도 조금 꺼려진다. 꼭 역사가 긴 장르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이미 예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글들이 나왔고, 그 글들 중 시대의 심판을 잠시라도 거치며 필터링된 것들이 아닌, 최근 나온 것들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취사선택한 것들은 아무래도 전자보다 별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2020년의 것들 중 좋은 것보다는 1900년대의 긴 세월에서 뽑은 좋은 것들이 더 좋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나온 SFnal 두 권을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더 좋은 거야 그렇다 치고, 어쨌든 정말 최신 SF가 어떤 모습인지, 개중 재밌는 것들이 있을지 알고 싶었던 탓이다. 이 기획이 흥하면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책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타산적인 기대도 한몫 차지했고. 그렇게 받은 두 권 중 일단 1권인 SF 애호가들을 위한 비교적 가벼운 SF 단편 모음집을 먼저 읽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꽤 괜찮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할 말도 좀 많다.
일단 요즘 우리한테도 익숙한 이름들은 SFnal 수록작에서도 매력적으로 등장했다. 켄 리우의 <추모와 기도>는 작가 본인의 전공에 좀 더 가까운 컴퓨터 세상의 트롤링/분탕 문제를 다루는 글인데, 테드 창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처럼 일련의 인터뷰들로 어떻게 추모를 위한 동영상이 인터넷의 밈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를 증강현실을 바탕으로 한 근미래의 세계관에서 설득력 있고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켄 리우의 글들이 감성적이지만 SF적인 매력은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이 단편으로 그 판단을 취소할 수 있었다.) 테드 창의 <2059년에도 부유층 자녀들이 여전히 유리한 이유>는 매우 짧지만 미국의 능력주의 신화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확실하게 짚는다.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일종의 가상적 비약을 통한 논설문으로 읽어도 될 법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렉 이건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앤디 위어의 <마션>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재밌게 읽을 달 탈출기다. 작중에서 핵심 소재로 사용되는 스카이훅이라는 공중에서 회전하는 수송용 테더 장치에 대해 미리 찾아보고 읽으면 조금 더 주인공의 탈출 상황이 상상이 쉽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 외에는 주로 유쾌한 코미디 소설들이 시선을 끌었다. 폰다 리의 <딥페이크 여자 친구 만들었더니 부모님이 나 결혼하는 줄 알더라 (28세 남)>과 같은 인터넷 '썰' 형식의 소설이나, 토비아스 S. 버켈의 <은하 관광 산업 지구> 같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초반부를 연상시키는 블랙코미디스러운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나머지는 전체적으로 무난무난하게 괜찮았는데, 개중 특히 좋았던 것을 꼽자면 S. L. 황의 <내 마지막 기억 삼아>와 소피아 레이의 <문에 얽힌 비밀 이야기>를 추천한다. 전자는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연상시키고, 후자는 상당히 보르헤스스러운 단편이다. 사실 그래서 딱히 SF적으로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글 자체는 좋았으니 굳이 그런 이유로 추천을 마다하지는 않겠다.
반면, 읽으면서 도저히 더 보고 싶지 않아 넘겼던 글들도 있었다. 치넬로 온왈루의 <망자가 했던 말>은 너무나 전형적인 아프로센트리즘 페미니즘 소설 느낌이 났다. 감성에 치중한 글이겠지만, 일단 나는 읽으며 특별히 감성적인 측면이 없었다. 캐롤라인 M. 요킴의 <사랑의 고고연대학>처럼 감성 밖에 없는 글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최소한 이쪽은 너무 흔하디 흔한 느낌의 타임트래블 이야기지만 그래도 어쨌든 뻔한 감성이라도 살지 않는가. 반다나 싱의 <재회>는 전체적으로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와인드업 걸>의 하위호환처럼 느껴졌다. 최근 들어 유행이라는 기후 변화에 대한 SF라지만, 뭐랄까, 전체적으로 이 식물 시스템, 가이아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이 공허하게 느껴졌고 작중 인물들이 계속 설교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2/3 쯤 분량에서 넘겼다. 엘리자베스 베어의 <푹신한 가장자리>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심지어 더 골치 아팠다. 왜 기후 변화에 대한 문제점 지적 및 해결 방안을 그대로 범죄자 수용 문제로 바꿔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 전혀 설득력 있지 않은데 말이다.
물론 개중 최악이었던 건 엘리스 솔라 김의 <이번 주를 기다리며>였다. 1/3만 보고 넘겨서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 그러니 그냥 내가 왜 이 글을 넘겼는지만 대충 이야기하고 말겠다. 왜 이렇게 남자를 혐오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가득할까? 여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인터넷에 그런 남자들의 정보를 유포하는 이야기를 하자 자기는 그 명단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위장한다는 남자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 등등...... 글은 다양할 필요가 있다고 믿지만 그 다양한 글들을 내가 전부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글은 이런 글들도 좋아할 사람이 읽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쓸데없이 날 서 있는 글이라면 최소한 다른 큼지막한 매력이 있으니 이 선집에 수록되었으리라 믿으며 마저 읽으려다가, 특정 한 대사에서 멈추고 글을 넘겼다.
"내 생일." 보니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내 생일날이야. 이번 달의 첫째 날. 토끼, 토끼." "한달의 첫째 날에 말하면 그달 운이 좋아진다는 '토끼, 토끼'는 아침에 해야 되는 거잖아, 눈뜨자마자." 이 마지막 대사가 정말로 꼭 대사로 표현되어야 했을까? 그, 보통 이런 식의 설명은 지문으로 빠지거나, 하다 못해 저것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가공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글 전체에서 중요한 내용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 부분을 본 순간 아, 이 사람은 글을 못 쓰는 게 맞구나, 싶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어쨌든 반쯤은 기대를 만족시키고, 반쯤은 안 좋은 기대까지 충족시킨 단편집이었다. 두 번째 책 SFnal for SF FINAL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구체적으로는 피터 와츠의 단편을 기대하고 있다.
오 나도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