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학 후 졸업을 준비하며

필수 교양이었던 고전문학의 이해를 수강했다.


각국의 최고 고전 문학 6개를 교수님이 소개하고

한 작품당 5-6명씩 달라붙어서 내용을 소개하고 

짧은 토론을 하는 평범한 수업이었다.


나는 <죄와 벌>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졸업반이기에 조장도, 프리라이더도 할 생각 없이

그냥 1인분만 하자. 사고만 내지 말자. F만 받지 말자고 생각하는데

조장을 맡은 여자애가 꽤나 독불장군이었다.


자기가 보는 마이너한 잡지가 있는데 

거기에 마침 죄와 벌이 실렸다고 하니 참고해 보잔다.

그래서 동의함. 


다음 주에 가져왔는데 내용이 좀 이상했다.

- 죄와 벌은 모더니즘 작품이다

-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를 증오했다.

- 노파를 살해한 이유는 순전한 '무'이다. 이유가 없다.


응? 

책껍질만 봐도 [리얼리즘]이라고 나와 있는데?

로쟈가 엄마를 증오했어?

살해의 이유가 없어? 초인사상 머시기 이런 게 아니고?


독붕이로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응구잇! 따져물었다.

- 모더니즘으로 발표를 할 수는 있다. 근데 근거가 뭐냐?

- 어느 구절이 어머니를 증오했다고 해석이 되는지?

- 분명한 역사적 사회적 사상적 배경이 있는데 '무'?


여자애는 울기 시작했다. 

시발, 사람 울려서 뭐할려고. 

좋게 좋게 가자. F만 아니면 되지. 


... 아무튼 발표는 모더니즘으로 결론 나고

나는 입 닥치고 그냥 따라가는 걸로 결정내렸다.


발표날, 프레젠테이션 2페이지에 조장 여자애가 발표를 시작한다.

'...모더니즘의 대표작인 죄와 벌은...'

'잠깐' 교수님이 손을 들어 발표를 멈추었고

우리조는 30분 내내 모더니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대답해내야만 했다. 고학년인 내게 먼저 물어보시길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파워하게 박아버렸다. 

스스로를 속이기 싫었다. 


그 이후 여자 조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걸 눈치챈 교수님은

25분간 여자애를 심문했고 

우리조는 D를 받았다.

나는 무사히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