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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혼자서 쓸 수 없다고 말을 들었다.

소설이나 수필과는 다르기 때문이라길래, 무엇이 다를까 싶어 보았다.

그리고 알겠다. 천재고 나발이고 장르적 차이가 크다.


공연을 목표로 하는 탓인지, 장면과 이미지가 인물과 대사로만 나와있다.

한마디로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지문에 없으면 뭔소린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 인물의 심리는 독자 자신이 짐작하는 수 밖에 없다. 

소설과 달리 자신의 심리나 시각을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수 밖에 없기 대문이다.


그리고 소설과 희곡의 큰 차이점은, 독자가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대본이 있는 시점에서 뭔 소리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보통 독자들은 대본을 읽지않는다.

연극을 볼 뿐이다. 그리고 연극은 독자가 원한다고 10초 전의 장면을 다시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극작가는 되도록 난해한 표현을 피하고 한번에 알수있도록 대사나 장면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부조리극 같이 이 분류에서 벗어나는 작품들도 많다. 그저 일반론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불 좀 꺼주세요]는 이만희 옹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오픈런(상영기간 없이 무기한 공연)을 한 흥행작이기도 하다.

불륜남녀, 국회의원과 미술선생의 옛 이야기를 다루는 데, 몇가지 독특한 방식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삼원구조이다.

삼원구조란, 시간을 무대에 파편화하여 나타낸 것을 일컫는다.

현재에 있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 주인공은 무대 위에 있으나 회상과 함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음 예시는 대본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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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 내게 있어서 최병철인 신같이 우뚝 서 있는 존재죠. 

여인 : 빚을 많이 졌다면서요?

사내 : 예.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졌지요.

여분 : 쯧쯧쯧 바보 같기는. 적당히 잊어버릴 일이지.

사내 : 내일은 그 자식 무덤을 찾아갈까 합니다.

여분 : 나도 같이 가자 응? 

여인 : 남도 어느 섬이라고 그랬죠?

사내 : 예. 목포에서 두 시간 쯤 배타고 가면 장산도가 있지요.

여분 : 동행하면 안돼?

여인 : 혼자 가게요?

사내 : 예.


사내 일어나 무대 뒷 편을 서성인다. 화분 받침용 벽돌을 만지작 거리다가 앞에다 툭 던진다. 사내의 연상장면. 

세 남자, 어디선가 각 달려온 듯 헉헉 숨가쁜 모습. 셋이 색 안경에 모자를 푹 눌러썼다. 

남분이 최병철역)을, 남다가  김달호역을 맡는다. 여인은 그림을 바꿔단다. 

여분은 독서를 하든 뭘 하든


병철 : 창영아.

사내 : 응?

병철 : 달호야.

달호 : 응?

병철 : 여기서 흩어지자. 나머진 내가 책임지겠어. 이 최병철이 혼자서. 

사내 : 안돼. 이 일은…

병철 : (사내에게 주먹을 날려 쓰러뜨린 뒤) 왠 말이 많어. 너희들은 제까닥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무섭다고 다른 데로 톡끼지 말고. 그럼 다 같이 걸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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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시처럼, 현재와 과거가 무대위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재밌는 점은 남다, 남분이라는 배역들, 그러니까 주연의 분신들이 회상의 부분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이 분신들은 주연들의 속마음을 대놓고 말하기도 하는 데, 일반적인 희곡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다.

아래는 대본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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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 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

사내 : 원하는 건 없소(입술을 포갠다)

여인 : (몇 번은 수용하다가)이러지 마세요.

여분 : 마치 날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싫어. 그럴리야 없겠지만.

남분 : 입 냄새가 안 나는 군. 내 마누란 구취가 너무 심해.

사내 : 이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아요?

여분 : 열녀문인가?

사내 : 분갈이오.

여인 : 분갈이?

사내 : 집에 화분은 작은데 몸체가 커서 뿌리가 밖으로 삐죽삐죽 나온 군자란이 있소. 애처로와 못 봐주겠습니다.

남분 : 볼 때마다 분갈이를 해줘야지 했는데---

여인 : 내가 그 군자란처럼 보이나부죠?

여분 : 아, 나도 봤어. 지렁이들이 엉켜 붙은 것 같은.


사내 : 당신도 분갈이가 필요하오.

여분 : 이런 분갈인가요?

남분 : 맞아

여분 : 파괴-변화-정리라는 그 쪽의 지론처럼?

여인 : 난 파괴될지는 몰라도 변화는 어려울 거예요.

사내 : 걱정말아요. 새장에 갇힌 새도 풀어주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훨훨 하늘을 나를 수 있으니까.

남분 : 새장에 갇힌 새! 너무 흔한 말이야. 삼빡한 말이 없었을까?


여분 : 아이 얄미워. 이제 와서 분갈이라니. 그 긴긴 세월동안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어땠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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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징은 주연들의 갈등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에도 상대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해 헛발질하는 주연의 꼴은 다분히 희극적이다.

이러한 갈등이 결말부에서 봉합될때, 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대본에서 삼원구조로 돌아갈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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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 시내에 3층짜리 아담한 건물을 짓고 있지요. 내달이면 들어갈 수 있을겁니다. 물론 등기는 박 정숙씨 앞으로고요.

여분 : 역시…그랬었구나.

여인 : 강 선생님.

사내 : 아까 그 시 좀 다시 들려주겠소?


극이 삼원 구조로 진행된다. 사내와 여인이 시를 통해 대화할 때 여인은 달호와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사내는 결혼전의 부인과의 대화를 연상한다. 

사내는 켜지지 않는 라이타를 탁탁 자꾸만 켜고 있다. 여인, 천천히 시를 읊는다.


여인 : 당신은 가방을 메고 몇 번이고 집을 향해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고.

달호 : (남다가 맡는다. 옷을 입으며) 정숙씨 마 옷을 입으시소. 미안케됐심더.

여분 : (알 몸인 채 무표정하다) 어서 나가 주세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달호 : 창영이는 여기에 없심니더. 이 속초 바닥에서 고기잡이한다는 건 순 거짓뿌렁입니다.

여분 : 알고 있어요. 나가 주세요.

달호 : 옷 입으시소.

여분 : 실컷 보시죠. 그렇게 원하셨다면

남분 : (소파에 누워 담베를 피우다가  복떡 일어나 앉으며) 야  이병신년아. 꿈 꾸지 말어. 이 강 창영이는 백수건달이야.

부인 : (여다가 맡는다. 속 옷 차림으로 그 옆에 앉아 울먹이고 있다) 건달이라도 좋다는데 왠 말이 많어.

남분 : 야 야! 난 임마 공사판 잡부야. 뭐 꿍친 거라도 있는 줄 아냐? 붕알 두 쪽밖에  없다고.

부인 : 그런 건 바래지도 않어. 난 끝까지 쫓아다닐꺼야. 무덤 끝까지.

남분 : 마음대로 해라 이 밤통아. 내가 널 요만큼이라도 좋아할 줄 아냐?

부인 : 기어코 좋아하게 만들 자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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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도주한 곳에서 첫사랑과 시를 읊는 장면과 

여인의, 남자를 찾아왔다가 그의 소꿉친구에게 강간당하는 과거와

정신지체인 동생과 살던 남자가 부잣집 딸에게 고백받는 남자의 회상이 합쳐지면서 청자에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강렬함만이 아니라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주제에 대해선 나중에 다루고 싶다. 아직 내게 확신이 없어서...


총평

불 좀 꺼주세요는 다른 희곡과는 달리 주연들의 속마음을 분신들로 직접 나타낸다.

삼원구조로 시간를 파편화 시켜서 보여준다.

울 나라 희곡도 특이한 건 디게 많은듯.


다음에 다시 한 번 읽고 생각을 정리한뒤에 글 좀 써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