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작가의 타계에 큰 충격을 받은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은 이산하 시인(사진)이다.
그는 13일 페이스북에 박 작가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처음 ‘죽음의 한 연구’를 읽은 뒤 과장하면 ‘감전돼 충격사할 뻔했다’고 밝혔다. 그의 글 전문을 싣는다.
***************
고교 2학년 때 옛날 ‘사상계’ 잡지 속의 ‘아겔다마’라는 독특한 소설을 보았다. 성경을 패러디하며 주인공 유다를 예수의 배신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새롭게 해석한 박상륭의 등단작이었다. 그 뒤 보수동 헌책방 골목으로 달려가 단편집 ‘열명길’을 사서 보았다.
1980년 한국문학사 편집부에 다니는 친구 누나로부터 ‘금서’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한국문학사에서 나온 박상륭의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였다. 조금 과장해 다 읽고 감전돼 충격사할 뻔했다. 한국문학사 창고에 잠자던 수백 권의 책을 가져와 경희대 국문과 학회실에 쌓아놓고 ‘세계 유일무이한 소설’이라며 학생들에게 팔았다. 당시 한국문학사 주간이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자기 친구 책을 많이 알리고 팔아줘서 고맙다며 나한테 밥과 술을 샀다.
그 무렵 가끔 만나던 친구 기형도에게 소설책을 선물하고 뜨거운 토론도 벌였다. 그 보답으로 기형도 시인(1985년 등단)은 1987년 내가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우호적인 기사도 쓰고 또 안양교도소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한 질도 넣어주었다.
1982년 내가 ‘시운동’으로 등단할 때의 작품이 연작시 ‘존재의 놀이’였다. 단편소설 분량인 약 100매의 그 연작시 서두가 소설 ‘죽음의 한 연구’ 서두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또 등단 때 내 본명을 버리고 ‘이 륭’이라는 필명을 썼다.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가 기사에서 추측한대로 박상륭의 ‘륭’자를 빌려온 게 맞다. 시에서도 박상륭의 소설 같은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자임한 치기어린 객기였다.
(젊은 시절 문우들. 왼쪽부터 박태순 이문구 박상륭 김수명 김현)
1999년 박상륭 선생(사진)이 캐나다 밴쿠버의 병원영안실 시체청소부로 있다가 귀국해 광화문의 한 아파트에 살았다. 어느 날 박선생이 찾는다는 연락이 와 갔는데 그게 첫 대면이었다. 거실 벽에는 박선생이 1969년 캐나다로 이민 가던 날, 공항에서 배웅했던 문학평론가 김현, 소설가 이문구와 박태순, 현대문학 김수명(김수영 시인 여동생) 편집장 등이 함께 찍은 사진과 김현이 그려 준 수묵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박선생은 “1982년 동인지 ‘시운동’에 발표한 당신의 등단작 ‘존재의 놀이’ 복사본을 김현(문학평론가)이가 캐나다로 보내줘서 읽었는데 만나서 한잔하며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난 당시 문학동네 편집주간인 이문재 시인과 그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술을 마셨다. 주로 박상륭 선생은 정종이었고 난 소주와 맥주였다. 1주일씩 통음하기도 했다. 신화와 종교, 철학, 우주, 신과 인간, 선과 구도, 문학예술 등의 광활한 얘기들은 끝간데 없이 심오하고 도저했다.
별이 졌다.
내가 이름을 빌려 ‘이 륭’이라는 필명까지 만들며 경도됐던 별이 졌다.
진짜 ‘나의 별’이었다.
[이산하 시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