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1fa11d028314d3faebecfec25ed6aa779bc7957f3086bed98a9e7bfc4f0c95b23c23580a3635b790c650a2fbaed4f42ddc7c23068ad9ea262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세상의 끝에서 살아 돌아온 실제인물의 이야기는 그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정신의학자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충분히 끌릴만한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단순한 소재 빨의 책이었다면 그저 한철, 한때에 소비될 따름이다. 하지만 이 책<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독자들이 찾고 있으며, 잊을만하면 다시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다. 몇년 전부터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나는 다시 인터넷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고 얼마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무엇이 이토록 이 책을 오랜동안 우리 곁에 살아남게 했는지를.


시선의 방향

빅터 프랭클은 책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난 비인간적인 행위, 즉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데려가 대량학살을 한 행위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나치의 폭력성이나 잔인함은 거의 느낄 수가 없다. 빅터 플랭크의 눈은 온전히 수감자를 향해있다. 수감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빅터 프랭클은 그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들어왔던 -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 끔찍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작은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 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일상이 평범한 수감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하는 질문에 답하려고 쓴 것이다. (p.23)


그의 시선 속 수감자들의 행동은 희한하게도 충격적이지가 않다. 오히려 수용소 썰을 풀다가 농담을 던지는 빅터 프랭클의 담담한 어조가 충격적이다. 그가 수용소를 들어간 직후, 모든 옷과 짐들을 빼았기고 샤워를 할 때의 일화를 보자.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 벗겨진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서로를 재미있게 해 주려고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어쨌든 샤워기에서 정말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P.40)


지금이라도 당장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샤워를 즐겼던 경험을 농담삼아 얘기하고 있다니! 빅터 플랭크는 분노가 아니라 희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악함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의지에 대한 낙관적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임을 우리에게 넌지시 주지시킨다. 수용소 썰이(1부) 끝나 갈때 즈음 인간의 태도와 정신은 물리적 공간과 시스템, 제도, 체제 따위를 초월할 수 있다는 뻔하지만 준엄한 결론에도 도달한게 된다.


처음받아 보는 질문


책을 읽어나가면서 물음이 생겼고,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어떤 사람은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는가? 왜 누군가는 살아가는 의미를 잃고 자살을 하고 마는가? 왜 동일한 환경 속에서 극단적인 결과값이 산출되는가? 피터 프랭클은 질문에 대한 답을 중간중간 하지만 영 설득력이 없는듯했다. 삶의 의미에 대한 플랭크의 이야기들은 고리타분해 보이기 까지 했다. 그의 답에 오히려 의구심이 커졌다. 책이 쓰여진지가 반세기를 훨씬 넘었으니 그동안 심리학에서 얻은 과학적 성취들은 빅터 프랭클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 책은 왜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전혀 주지 못하는 것 아닐까? 책의 효용에 대해 나의 의구심은 전혀 풀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다음 문장을 접하기 전까지는.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p.124)


책을 따라가면서 생성된 질문과 의구심은 다시 질문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삶은 너에게 어떤 질문을 했고 너는 질문에 어떤 답을 했느냐고.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책으로 부터 단 한번도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서를 할때 내 마음의 지점은 문자를 받아들이는 극히 수동적인 지점 혹은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자세로 텍스트를 읽는 극히 능동적인 상태 두 지점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였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판단을 하고 리뷰를 썼을 뿐 여태 질문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은지 2주가 지나고 글을 쓰는 지금도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고. 2주만에 답이 나왔다면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았을 터.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책을 폈다가 생각치도 못한 난관에 처한 기분이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