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장한 사람은 누구고 왜 이 말을 계속 쓰는 건지 궁금함.
불교나 다른 경전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어떤 의미에서 유용한지
현대사람이 이를 오남용 해서 쓰는건지 문법적으로 주어에 와서 주체이고
목적어에 와서 객체라고 나누기 시작했고 괜히 여기에 의미를 확대 시킨건지.
그렇게 사고하면 인간이 얻을수 있는 장점이 무엇이 있는지.
이 단어를 써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
처음 주장한 사람은 누구고 왜 이 말을 계속 쓰는 건지 궁금함.
불교나 다른 경전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어떤 의미에서 유용한지
현대사람이 이를 오남용 해서 쓰는건지 문법적으로 주어에 와서 주체이고
목적어에 와서 객체라고 나누기 시작했고 괜히 여기에 의미를 확대 시킨건지.
그렇게 사고하면 인간이 얻을수 있는 장점이 무엇이 있는지.
이 단어를 써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
내가 아는거 한정으론 데카르트가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그 뒤로 주체가 인식하는 객체와 객체 그 자체가 일치하는가??라는 문제로 근대철학이 전개된걸로 알고있음.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 읽엇어
데카르트가 인간의 존재근거를 신이 아닌 인간에 두면서 인간이 짊어져야할 짐에 많아짐. 대표적인게 윗댓에 적은 인식론의 문제.
동양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인식을 '직관'으로 설명한다는데 여긴 잘모름.. 굳이 주/객체를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것 같진않아(노자 사상에서)
불교는 아마.... 인간이 있어야 세계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여기서도 주/객체의 철저한 분리를 이야기하는건 아닌듯
존재 근거는 결국 be 동사 해석론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유럽식 사고 빼고 똑같이 등장한 다른 문화권이 있어?? 유럽 문화권 문법학이라고 주장하면 어떤식으로 되받아 칠수 있을까??
너무 질문이 빡셌구만 ㅋㅋㅋ 암튼 ㄳㄳ
개구리 ㅋㅋ 개웃기네
니체도 인식 개념이 유럽인들의 문법적 망상이라느니 그런 소릴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잘 한번 찾아봐라
아싸 니체가 이생각을 했다니 땡스 !!
나누는데에 이유가 따로 있는게 아니고 인간이 직관하기를 자기자신이 있고 자기자신이 아닌 것이 있으니 자연스레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된거 아닌가 - dc App
나랑 타자로 구분해도 되었을텐데. 굳이 객체라고 불렀던건 무슨 이유일까? 나와 나머지로 불렀어도 되는데 왜 단어를 바꿔치기했을까?
타자는 사람을 말하는 거니까 객체랑은 의미가 아예 다르지. '나'는 1인칭이니까 주체와 의미가 다르고 - dc App
1인칭? 그 말은 최초에 어디서 무슨 이유로 등장했어?? 문법 편하게 전달하려고 지어낸말 아님?? 주체 / 객체는 행위자(권력자) / 수행자(하인) 이걸 고상하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철학적 개념을 묻는거임 언어학적 개념을 묻는거임? - dc App
구분할 필요 없이 외계인이 질문한다고 가정했을때 뭐라고 반론 할수 있을지 궁금함. 아니면 결국 종교라고 외계인은 믿어 버릴꺼 같음.
외계인이 쳐다보면 과연 주체 / 객체라는 관념을 그대로 받아 들일지 인간만 가지고 있는 단어의 유행이라고 판정 내릴지 확실히 가를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궁금함.
인식론에서 인식을 하는 쪽이 있고 인식을 당하는 쪽이 있잖아. 인식을 하는 쪽을 주체라고 부르고 인식을 당하는 쪽을 객체라고 하는거야. 권력자고 하인이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왜 나눴느냐 누가 그걸 주장했느냐 뭐라고 반론하느냐 그런것이 아니라 인식이 있는 한 주체가 있고 객체가 있는거야. - dc App
생명이 있는 한 생물이 있고 무생물이 있는 거랑 똑같은거야. 누가 생물과 무생물을 나눴느냐 누가 처음 주장했느냐를 얘기할 필요가 없는게, 생물은 생물이고 무생물은 무생물이니까. 물론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연구한 사람은 있겠지. 그런데 그 차이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건 아니라는거 - dc App
어렵다. 불교나 다른 문화권에도 저런 관념이 등장하나?? 둘로 나눠 쓴 흔적이 있나?? 인식을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다를꺼 같은데. 결과적으로 지배자가 인식하고 피지배자는 인식 당하는 말을 고상하게 표현하는 느낌인 걸. 통치학적 관점으로 보면 지배자의 인식과 같이 피지배자도 같이 인식할꺼라고 강요할 수 있고. 판사의 인식과 너는 같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문장을 내포하는 느낌임.
통치같은 정치적 개념이랑은 전혀 관련 없는거야.. 네가 사과를 봤어. 그럼 네가 주체인거고 사과가 객체인거야. 네가 음악을 들었어. 그럼 네가 주체인거고 음악이 객체인거야. 인간들 간의 권력관계를 말하는게 아니야. 황제도 인식의 주체고 노예도 인식의 주체야. 인식하는 쪽에 서 있으니까. - dc App
주체와 객체라는 관념이 없을 수가 없지 우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끊임없이 객체들을 인식하는데. 왜 불교에는 객체 주체 관념이 없다고 생각하는거야? 불교에도 오온과 18계가 있고 인식론적인 관념들이 그대로 다 있음. 물론 모든게 공하다고 말하지만 주체와 객체의 관념 자체가 없는건 전혀 아님 - dc App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진다는 거야. 보고 듣고 만지는 쪽을 주체라고 하고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쪽을 객체라고 하는거임. 주체가 우월하고 객체가 열등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인식을 강요하고 말고 그런게 아니야. 너가 주체고 너를 뺀건 다 객체야. 세상 전체가 다 객체야. - dc App
심지어는 네 손과 발, 얼굴과 내장도 객체로 간주할 수 있어. 네가 네 손과 발을 볼 수 있잖아. 내장도 결국엔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니까 객체지 물론 직접 꺼내볼일은 없겠지만.. - dc App - dc App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결국 게티어 문제까지 가고 인식이 정말 있는 건지 물어보겠는데? 인식한다 = 보고 판단해서 정당화 한다 라는 전제라면 결국 집합론적 논리적 결함 때문에 인식론은 아예 부정할수 있겠는걸? 인식은 나도 남도 같은 생각을 할꺼다 라는 전제하에 등장하는거 아닌가? 아 헷갈린다. 갈수록.. 인식을 증명할수 없다면 주체와 객체는 어떤 쓸모를 가지게 되지?
쉬운 문제를 참 복잡하게 생각하는 듯. 주체 객체 이야기를 하는데 게티어 문제나 인식론적 한계가 나올 이유도 전혀 없고. - dc App
니체에 따르면 근대 과학의 기본적인 인식틀로 자리잡은 이러한 주체/객체의 순환적 체계는 ‘통속화된 형이상학’인 ‘문법’의 체계를 실재의 세계로 간주하는 언어적 관습에 불과하며, 그런 언어적 관습을 과학적 인식의 기본범주라고 믿는 논리학자들의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 속에 그런 사유체계의 원형이 들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일상적 언어관습에서 가령 ‘번개가 친다’(es blitzt)는 식의 표현은 그 자체로는 어떤 대상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단순한 문법상의 주어(es)를 특정한 자연현상의 유일무이한 원인이자 주체인 것처럼 가정하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의 명제는 어떤 사건 혹은 행위에는 반드시 그 행위의 원인 또는 주체가 불변의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요청ꠏꠏꠏ“행위에 행위자를 부가하는 문법적인 관습”(II, 616)ꠏꠏꠏ의 결과인 동시에 역으로 어떤 ‘사건’(Geschehen)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마치 특정한 행위자의 단일한 의지에 의해 유발된 하나의 ‘행위’(Tun)인 것처럼 해석하려는ꠏꠏꠏ‘사건’을 실체적 ‘존재’(Sein)로 확증하려는ꠏꠏꠏ이중의 허구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게 내가 의심을 품었던 부분이었음 ㅎㅎ 위에 친구가 알려줘서
걍 뇌에 지식만 갖다 박았지, 지 혼자 뭘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새끼같네
자기가 뭔말하는지도 모르는거아닐까
니체에 따르면 근대 과학의 기본적인 인식틀로 자리잡은 이러한 주체/객체의 순환적 체계는 ‘통속화된 형이상학’인 ‘문법’의 체계를 실재의 세계로 간주하는 언어적 관습에 불과하며, 그런 언어적 관습을 과학적 인식의 기본범주라고 믿는 논리학자들의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 속에 그런 사유체계의 원형이 들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일상적 언어관습에서 가령 ‘번개가 친다’(es blitzt)는 식의 표현은 그 자체로는 어떤 대상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단순한 문법상의 주어(es)를 특정한 자연현상의 유일무이한 원인이자 주체인 것처럼 가정하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의 명제는 어떤 사건 혹은 행위에는 반드시 그 행위의 원인 또는 주체가 불변의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요청ꠏꠏꠏ“행위에 행위자를 부가하는 문법적인 관습”(II, 616)ꠏꠏꠏ의 결과인 동시에 역으로 어떤 ‘사건’(Geschehen)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마치 특정한 행위자의 단일한 의지에 의해 유발된 하나의 ‘행위’(Tun)인 것처럼 해석하려는ꠏꠏꠏ‘사건’을 실체적 ‘존재’(Sein)로 확증하려는ꠏꠏꠏ이중의 허구화 과정을 보여준다.
넌 대수학에서 복소수 개념에서 쿼토니안 까지 더 확장 안하고 멈췄는지 고민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냥 당연하다고 느끼는듯. 엄밀성을 추구하다보면 질문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질문만 존나 쳐하는거 보고 한 말인데. 암튼 축하한다.
질문이 멈추고 판단에만 머물게 되면 편견도 같이 생긴다더라 ㅎㅎ 암튼 레퍼런스 찾았으니 좋구만 ㄳㄳ 이게 집단지성이지.
혹시 니체 저말 어떤 책에서 찾으셨음?
「니체의 언어 비판과 근대 인식」, 『문예미학』 6(1999), pp. 61-85. 임홍배
굳. 니체 저말 내 기억으론 <아침놀>에서 칸트의 인식론 비판하면서 했던 말같음. 칸트의 철학은 가주어가 있는 언어에서는 성립이 안된다?? 그런 식이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