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 중에 하나는


중학교 땐가 초등학교 때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을 읽다가 문득


"만약 책이란 것이 없었다면 인생 경험도 없는 나는 이럴 때 그저 울상만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책에 적힌 것들에 의지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책에 동화되어 그것을 신뢰하고 여기에 내 생활을 접목시킨다.

그리고 다른 책을 읽으면 이번엔 새로운 책에 맞춰 나는 180도 변해버린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쳐 나의 것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이 교활한 재능은 내 유일한 특기이다.

정말이지 이 교활한 속임수에는 나도 두손들었다.

매일매일 실수를 거듭하면서 남 앞에서 창피를 당하다 보면 조금은 어른스러워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이런 실수조차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 

다른 사람 앞에서 불쌍한 척 연기하는 것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지금 이 대사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중략 "

이 페이지는 지금도 따로 적어 놓은 거고


이 대목을 발견하고서


아, 뭐지 하면서 머리가 띵 울렸다.


다자이는 죽었지만 내 앞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독자와 작자가 소통하는 게 이런 건가 싶어서


책을 읽고 공감이라는 걸 깊게 해본 게 이게 처음이었다.


그 뒤로 짤막하게 단편이나 끄적이고 있지만


언젠가 큼지막한 거 하나 쓰고 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