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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소설들은 볼 때마다 재밌다. 서사가 자극적이고 사건들의 진행 속도가 빠르며, 문장은 마치 기사처럼 짧막짧막하게 토막나 있지만 자연스러워 순식간에 몰입해 빠르게 읽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맥티그>를 이렇게 다 읽고 나면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자연주의 소설들이 기본적으로 전제로 두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이미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과,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추하게 쇠락하게 된다는 점이 합쳐지며, 내가 어느새 싫어하게 된 이 인물들은 애초에 문제를 품고서 태어난 이들이며 개선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났기에 이들을 혐오하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면죄부를 부여받은 기분이 되는 탓이다.



<맥티그>의 주인공인 맥티그와 그의 아내 트리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작중 초중반에 드러나는 면모를 보며 맥티그나 트리나를 싫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맥티그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과는 별개로, 저자는 맥티그의 출신으로 인한 필연적인 성격을 자주 논하며 그의 인격적 파멸을 자주 암시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트리나 역시 상당히 까탈스럽고 극성인 부모의 인생 노선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을 보여주듯, 점차 인색하게 탐욕스러운 인물로 변해가며 남편이나 부모에게 돈 한 푼 주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모습이 결혼 이후로 점차 드러난다. <맥티그>는 분명 탐욕을 주제로 돌고 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핵심은 탐욕 그 자체가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이런 탐욕에 이끌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타고났다는 소리다.



프랭크 노리스가 <맥티그>를 쓰던 시기의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심심할 때마다 도덕적 파탄을 울부짖게 되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자연주의 문학을 쓴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테니. 그러나 아무래도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서 보기에는 두 가지가 거슬릴 수밖에 없다. 하나는 도덕적인 문제인데, 위에서 말했듯 단순히 유전적인 문제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는 요지에 공감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는 점이다. 능력주의조차 일종의 신화라고 비판당하는 시대에, 태생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내 생각에는 아인 랜드의 글을 좋아한다는 고백보다도 훨씬 더 극렬 네오콘스러워 보일 테다. 게다가 맥티그가 트리나를 강압적으로 이끌며 사귀게 되고, 트리나 역시 맥티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서 서술하는 여성의 본능적인 순종성 이야기까지 있으니 더욱 머리가 아프다.



다른 하나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와는 조금 다른, 글 자체에 대한 문제다. 아무래도 이 자연주의의 도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봤을 때, <맥티그>에서 인물이 변화할 때마다 서술에서 능글맞게 이야기하는 태생이라는 근거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속적인 시각에서 보아도,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하는 생각이 저절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어느새 내가 좋아하던 인물들은 페이지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와 이름 외에는 공유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 인물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다. 트리나의 인색함이 좋은 예시다. 아무래도, 맥티그의 성격 변화는 그의 평상시 행동의 극단적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트리나의 변화에 대한 암시는 맥티그와 교제하던 초반부에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복권에 당첨되고,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어느새, 부모를 닮아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품고 있는 <맥티그>에서, 정작 작중 인물들의 극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 마커스는 딱히 유전적인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놓쳤을지도 모르지만.) 마커스는 참 불쾌하지만, 독자가 <맥티그>를 읽으며 유일하게 현실적인 차원에서 완전히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속 좁은 심정과 질투심,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시작된 갈등과 배신 등은 유전이라는 이 신비한 실에 조종되지 않은 채 그 자체의 동력을 갖고서 움직인다. 아마 이 점이 <맥티그>를 읽으며 상단의 문제들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는 않도록 만든 것 같다. 유전은 그저, 이미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한 인물들이 그 끝에서 어떤 식으로 변모하게 되는가를 정하는 주형 역할을 할 뿐이고, 이 내리막길 자체는 그것과 별개로 시작되는 것이니까.



어쨌든, 읽고 나서 영 속이 개운하지 못하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아 소박하게나마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면, 마커스가 그 둘을 질투하지 않고 처음처럼 그들을 대했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마지막까지 탐욕에 이끌려 결국 세 명이 전부 파멸하게 되는 결말까지 더해져서 더더욱. 읽는 동안 몸이 아팠던 탓에 심약해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P.S.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이 1924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탐욕>을 찍었었다. 그 축약본을 보고 소설과 비교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내용 상 영화까지 보고 나면 기분이 더욱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계속 보류하게 된다.